카타르 ‘100척 트로피’ 욕심에 꼬여버린 韓 조선·해운 청사진
입력 2022.06.08 07:05
    카타르 LNG선 수주 반색했지만 원가 상승에 분위기 반전
    정부 지원 아래 수주 총력전…일감 급한 기업들 출혈 경쟁
    국내 조선·해운사 손해보고 카타르만 신내는 기형적 구조
    "냉철한 계산 못했다" "재협상 나서는 것이 낫다"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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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카타르 국영 석유사 카타르 페트롤리엄(QP)은 2020년 국내 조선 빅3와 100척 이상, 약 24조원(700억리얄) 규모 LNG운반선 슬롯 예약 계약을 맺었다. 당시 조선 업계는 반색했지만 올해 들어 후판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며 분위기가 급변했다. 기존 조건대로는 배를 지을수록 조선사가 손해를 볼 상황이고, 선가를 높이자니 해운사들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 내부 교통정리 없이 조선사와 해운사가 대규모 수주에만 목을 매 자충수를 둔 격이라는 평가다.

      올해 들어 우크라이나 사태 변수로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선박용 후판 가격은 작년 상반기 톤(t)당 10만원, 하반기 40만원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10만원 올랐다. 선박 건조 비용의 20%를 차지하는 후판 값이 2020년말 대비 2배가량 오르면서 조선사들의 실적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모두 1분기 영업적자를 냈다.

      ‘100척 낭보’를 알렸던 카타르 LNG운반선 프로젝트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계약 당시 가격은 척 당 1억9000만달러였는데 조선사가 손실을 보지 않으려면 선가를 20%가량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선가는 최종 협상을 거쳐 정하기로 했는데, 후판 등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모두 반영한다는 합의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협상 중인 선가는 2억달러 초반 수준으로 거론되지만 결론을 내기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선박을 만들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임에도 일부 조선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길 바라는 눈치다. 기업들은 그 전 수년간 일감 확보에 애를 먹으며 유동성 부족에 시달렸다. 경영진 입장에선 최종 사업 수익성보다는 임기 중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데 공을 더 들일 수밖에 없다. 당장은 손실이 나지만 선박 수리나, 기자재 교체 등 일감을 감안하면 아주 장기적으로는 손해가 아닐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는 분위기다.

      해운사는 해운사대로 부담이 크다. 조선사의 사업 수행 여부가 불안한 상황에선 제때 배를 건조할 수 있을지 걱정할 수밖에 없다. 조선사가 바라는 수준으로 선가가 오르면 정기용선계약(TC, Time Charter) 상 운임도 올려달라고 다시 협상을 해야 한다. 운임을 올려받아야 더 늘어난 선박금융을 안정적으로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수금환급보증(RG)을 받기도 어렵다.

      지금의 난맥상은 예측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 원자재 가격 상승 때문이지만 조선·해운 업계 출혈 경쟁이 불러온 면도 크다. 이전 정부에서는 해운업 재건과 조선업 구조조정에 공을 들였는데 카타르 수주 프로젝트도 정부와 공공기관, 국책은행이 총출동해서 지원했다. 보통 때처럼 5척, 10척씩 나오는 계약이라면 보다 면밀히 살폈을테지만 워낙 대형 사업이다 보니 관계자들의 셈이 흐트러졌을 것이란 지적이다.

      물론 조선사나 해운사들도 수익성을 따지며 카타르 프로젝트 수주 영업을 했다. 그때만 해도 일감 걱정에 고심하던 시기라 카타르 쪽에 목소리를 높이거나 더 많은 요구 조건을 제시하기 어려웠다. 한국 조선과 해운 모두 선박 건조와 LNG 운송 역량이 최고 수준인데도 저자세를 보인 셈이다. 특히 조선업의 경우 대우조선해양 M&A가 3년간 표류하며 교통정리가 쉽지 않았다. 국내 기업끼리 경쟁하다 상대방에 이용당한 것이란 박한 평가도 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워낙 대규모 사업이다 보니 정부나 국책은행 모두 지원해서 수주하는 데만 집중했다”며 “원자재 값이 올라서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만 당사자들이 계산을 냉철하게 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난처한 것은 산업은행이다. 대우조선해양 M&A를 주도했었고, 이번 카타르 프로젝트에선 대규모 금융 지원도 맡아야 한다. 대우조선해양 분식 회계 이후 손실 날 사업은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었는데, 이대로 사업이 차질을 빚게 두자니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배 값이 낮으면 조선사가, 용선료가 낮으면 해운사가 난처해진다. 산업은행 입장에선 조선사나 해운사에 선가와 운임을 올려 받아오라 압박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다. 시장 금리가 상승하며 조달 비용이 늘어나는 것도 부담이다.

      카타르와 우리 기업간 어느 정도의 조건 조정이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기업들 스스로 입찰에서 제시한 조건에 따라 합의했으니 이제 와서 카타르 쪽을 문제삼을 것도 없다. 다만 이대로는 사업의 실익이 없고, 안정성도 떨어지니 과감한 수를 던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선박금융 업계 전문가는 “계약대로 가는 것이니 카타르를 탓할 것은 아니지만 카타르 입장에서도 거래 상대방이 이익이 나야 장기 사업이 안정적이라는 것을 알 것”이라며 “산업은행이 거래를 진행시키려 노력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선 합의를 깨고 정상 가격에 다시 협의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