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시즌 통합 추진…부담 늘어나는 ‘토종 OTT 1위’ 웨이브
입력 2022.06.09 07:00
    손 잡는 CJ의 티빙과 KT의 시즌
    '토종 1위' 웨이브 입지 흔들려
    "성장 급한데"…투자 부담도
    시간 지날수록 '고밸류'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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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CJ ENM의 OTT(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 티빙(TVING)과 KT의 시즌(Seezn)이 통합을 추진하면서 국내 OTT 시장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티빙과 시즌이 연합하면 SK텔레콤과 지상파 3사가 연합한 ‘토종 1위’ 웨이브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평이다. 엔데믹과 함께 글로벌 OTT 시장 침체가 나타나며 ‘고밸류’ 부담이 높아지는 가운데 투자 부담과 성장전략을 두고 사업자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티빙과 시즌 통합과 관련된 CJ와 KT 측의 논의는 상당부분 진행된 상태로, 세부 조건 등이 결정되면 관련 계획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티빙-시즌 통합 이후엔 ‘토종 연합전선’에 웨이브가 들어올 것인가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국내 OTT들도 결국 ‘플랫폼’으로 갈 것인지, ‘콘텐츠 제공자(Contents Provider;CP)’로 갈 건지 선택을 해야하는데, CP로 가려면 제작 능력이 더 필요하니 자원을 합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티빙과 시즌의 통합은 어느 정도 예상된 바다. 앞서 3월 KT와 CJ ENM은 전략적 파트너십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콘텐츠 동맹’을 맺었다. 양사가 본격적인 콘텐츠 사업 시너지를 도모할 여러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CJ ENM이 KT스튜디오지니에 1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단순 협업을 넘어 양 그룹간의 이해관계가 반영됐고, 이에 티빙과 시즌 통합설도 제기됐다.

      토종 OTT들이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SKT가 웨이브를 ‘한국의 넷플릭스’로 키우겠다고 선언한 뒤 해외 투자유치 등에 나서자 나머지 사업자인 KT와 LG유플러스, CJ그룹이 연합해 OTT 통합을 추진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실제 KT 주도로 논의가 시작되긴 했지만 각 사업체가 주도권을 두고 양보가 쉽지 않아 진전되지 못한 바 있다. 2019년엔 박정호 SKT 사장이 CJ, JTBC와 협업을 장담하며 토종 OTT ‘대통합’ 분위기가 나타났지만 서로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OTT 시장 경쟁이 심화하면서 함께 몸집을 키우는 방안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티빙으로서는 국내 OTT 1위로 오르기 위해서는 시즌 등 우군 확보가 나쁘지 않다. 강호성 CJ ENM 대표가 지난해 6월 '티빙 국내 1위’ 목표를 선언한 바 있다. KT도 KT스튜디오지니 상장 가능성을 밝히는 등 콘텐츠 사업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 아직 존재감이 미미한 자체 역량을 확대해야 한다. 

      티빙과 시즌이 힘을 합치면 현재 ‘토종 1위’ 웨이브의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4월 기준 국내 OTT 시장의 압도적 사용자 1위는 넷플릭스(1153만명)고, 그 다음으로 웨이브(433만명), 티빙(386만명), 쿠팡플레이(302만명), 디즈니플러스(153만명), 시즌(144만명), 왓챠(112만명) 등의 순이다. 단순 합산 시 티빙과 시즌이 통합하면 월 사용자 기준 웨이브를 넘어서게 된다. 이미 티빙이 빠른 속도로 구독자를 늘리며 웨이브를 바짝 따라왔다.

      최근 글로벌에서 넷플릭스의 구독자가 감소하고 있고, 계정 공유를 제한할 움직임을 보이는 등 글로벌 OTT의 아성이 흐려지면서 국내 시장에서 토종 OTT들이 약진할 기회라고 보는 관측도 있다. 넷플릭스 대항마로 지난해 말 국내에 진출한 디즈니플러스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을 내는 등 글로벌 OTT들도 고전하고 있다. ‘파라마운트플러스’는 국내에 티빙을 통해 국내에 우회 진출을 하기로 했고, 당초 직진출을 계획하던 미국 워너브라더스의 OTT ‘HBO맥스’도 웨이브와 협업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합종연횡 움직임에는 토종 OTT들이 지난해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히면서 부담을 나누는 측면도 크다는 분석이다. 티빙도 2025년까지 5조원을 투입한다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단순 계산하면 한해 수천억원을 투자하겠단 셈이다보니 우군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지난해 3월 웨이브를 운영하는 콘텐츠웨이브도 2025년까지 총 1조원을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웨이브의 투자 계획도 자체적으로 소화하기엔 규모가 크다. 이에 웨이브는 외부투자 유치도 고려중이라고 밝혔는데 구체적인 진행 상황은 파악되지 않는다. 지난해 3월 웨이브의 최대주주인 SKT가 1000억원의 추가 유상증자를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로서는 자금에 여유가 있다는 입장이고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 보다는 상장이 먼저인 상황이라는 평이다. 

      웨이브는 2023년 준비에 나서 2024년 상장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인데, 현재 OTT 업계의 성장세가 꺾이면서 본격적인 상장 추진 시기까지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웨이브 측은 상장에 앞서 유료가입자 600만명, 매출 5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웨이브의 지난해 매출은 2301억원, 유료가입자는 MAU(월간사용자수)를 토대로 추정하면 약 400만명 수준이다. 

      모회사인 SK스퀘어의 경우 다른 자회사인 SK쉴더스, 원스토어가 상장을 철회했고 11번가도 상장 계획 실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 그룹에서 당장은 웨이브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는 분위기도 전해진다.

      시간이 지나면 눈높이가 올라가 ‘고밸류 부담’이 더해질 수 있다. 투자업계에서는 추가 자금 유치가 필요한 OTT 등 플랫폼들의 밸류가 계속 높아지니 다음 펀딩(funding)이 어렵다는 의견이다. 티빙은 투자유치를 거듭하며 지난해 1월 300억원 수준이었던 기업가치가 7월 3500억원, 올해 3월 2조원으로 빠르게 뛰었다. 또 다른 국내 OTT인 왓챠는 최근 프리IPO 나섰고, 5000억원 규모의 기업가치를 원한다고 알려졌으나 업계선 고밸류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엔데믹과 함께 OTT들이 조정을 받고 있긴 하지만 성장하려면 어쨌든 계속해서 돈을 써야하는 상황이라 웨이브 포함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을 것”이라며 “제작사들도 한 플랫폼과만 일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사업자 간 합종연횡이 나타나는데 CJ, KT, SKT 등 각 기업들 특징에 따라 전략이 나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