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집중하는 로펌들, '5분대기' 수임 경쟁에 내부 단속도 골머리
입력 2022.06.10 07:00
    회장님·기업 법무 일감 감소 속 중대재해 자문 부상
    기업들, 경영진 형사 위험 절연 위해 대형 로펌 찾아
    돈 되는 자문에 ’24시간 대응’ 간판 걸고 수임 경쟁
    불시 사고마다 장기 지방 출장…담당자 불만 관리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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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형 법무법인들은 올해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시행 후 관련 일감을 따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경영진 최고위층까지 위험이 번지는 것을 막으려는 기업들의 자문 수요가 반갑지만 걱정도 많다. 언제 사건이 벌어질 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대기를 해야 하고 일이 발생하면 현장으로 급히 달려가야 해 담당 변호사들의 고생이 많다. 법무법인 입장에선 돈이 될 사안이 아깝지만 구성원들의 반발이 나타날까 수임을 독려하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중대재해법은 산업 현장에서의 재해를 줄이겠다는 취지로 지난 1월 시행됐다.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기업 최고 경영진에 대해서도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기업들의 부담이 컸다. 작년부터 많은 대기업들이 최고안전책임자(CSO)나 최고위험관리책임자(CRO) 직급을 신설하고 위기관리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대형 법무법인들은 중대재해법 시행에 맞물려 대대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각 법인마다 변호사와 검찰 및 노동부 출신 전관들을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100명 이상 배치했다. 실제로 중대재해 1호 기업 삼표산업에 이어 여천NCC, 요진건설산업, 현대엘리베이터, HDC현대산업개발, 에쓰오일 등 대형 일감이 쏟아졌다.

      사실 중대재해법 관련 자문은 기존에 법무법인들이 공들인 컴플라이언스(규제준수) 자문과도 궤를 같이 한다. 규제를 얼마나 잘 지키고, 위험 관리 체계가 얼마나 잘 갖추어졌느냐를 살폈는데 그 영역이 산업 현장으로 넓어진 것이다. 재해 사건 발생 시 최대한 최고경영자(CEO)와 멀리 떨어진 선에서 위험을 끊어내는 것이 자문의 핵심이다.

      대형 기업은 중대재해법 관련 내부 시스템 구축 법률 자문료로 수십억원을 지출하는 경우도 있다. 사건이 터지면 그 때부터 ‘CEO 지키기’ 자문료가 또 발생하게 된다. 이처럼 돈이 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법무법인들의 수주 경쟁도 치열하다. 새 정부 들어 중대재해법 규제 완화 논의도 이뤄지지만 지금으로선 ‘강한 규제’에 기대 일감을 따내는 양상이다.

      한 대형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규제가 셀수록 돈을 많이 버는 법무법인 입장에선 대표이사도 처벌될 가능성이 있는 중대재해법 자문 같은 노다지가 없다”며 “다른 법무법인이 따낸 일감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오거나 더 싼 가격으로 유인해 자문을 빼앗아 갈 정도로 수임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대형 법무법인들은 올해 실적 유지에 비상이 걸렸다. 굵직한 대기업 오너 형사 사건 자문은 대부분 막을 내렸고, 올해 들어선 M&A 등 기업 법무 분야 일감도 주춤한 모습이다. 지난 수년간 마케팅에 공을 들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그 자체로는 돈이 되지 않는다.

      법무법인 경영진 입장에선 출혈 경쟁을 해서라도 새로운 먹거리인 중대재해법 자문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담당자들을 몰아 세우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대재해 사건 자문의 피로도가 크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는 언제 발생할지 알기 어렵다. 이전까지의 시스템 구축은 수개월에 걸쳐 이뤄졌다면, 중대재해 사건 수임은 수 시간 안에 결판이 난다. 

      담당자는 사건 발생 사실을 접한 즉시 회사 관계자와 연락을 취하며 현장으로 가야 한다. 현장에서 초기 대응법을 일러준 곳이 정식 자문사로 선임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1호 사건으로 분류된 삼표산업의 경우, 설 명절 연휴 때 사고가 터졌음에도 이미 웬만한 대형 로펌이 현장에 총출동해 수주전을 펴기도 했다. '5분대기', ‘24시간 대응’ 간판이 겉치레가 아니라는 평가다.

      재해는 대부분 대형 법무법인 소재지와 거리가 먼 지방에서 발생한다. 수임 불확실성을 안고 장거리 출장을 가야하고, 결론이 날 때까지 현장에서 대기해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기업 담당자가 경찰에 소환되면 변호사도 동행해 입회해야 한다. 고위 전관 출신 인사보다 현장에 나가는 빈도가 높은 젊은 파트너나 주니어 변호사의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법무법인 입장에서는 담당자들의 눈치도 봐야 하니 강하게 수주를 독려하기도 부담스럽다. 최근 발생한 대형 사고 현장에는 아예 담당자를 보내지 않은 곳도 있었다.

      다른 대형 법무법인 관계자는 “실무 담당자들은 사고가 터지면 지방으로 급히 내려가서 오랜 기간 대기해야 하는 등 삶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불만이 많다”며 “중대재해는 돈이 되지만 너무 수주를 독려했다가는 인력들이 이탈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일감을 다 노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