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앤장·태평양 이어 광장도 초봉 1.5억 가세…율촌·세종도 따를까 고심
입력 2022.06.13 07:00|수정 2022.06.13 09:53
    인력 채용·유지 위해 작년부터 초봉 인상 릴레이
    늦게 움직인 태평양은 파격적 인상…1.5억대 진입
    '2위 경쟁' 광장 지난달 맞대응…율촌·세종도 고민
    파이 줄어든 파트너 불만…실적 입증 부담도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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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형 법무법인들의 연봉 자존심 대결이 이어지고 있다. 김앤장에 이어 태평양이 지난 3월 초임 변호사 연봉을 1억5000만원 이상으로 올렸고, 지난달엔 광장도 태평양과 같은 수준으로 맞췄다. 연봉이 채용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니 율촌과 세종도 경쟁사들의 뒤를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법무법인들의 초봉 인상 경쟁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란 우려도 있다. 연봉 인상에 따른 우위는 일시적인데 한번 올라간 임금은 낮추기 어려우니 두고두고 실적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배당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 파트너 변호사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도 과제로 떠올랐다.

      몇 해 전만 해도 대형 법무법인들은 신임 변호사를 채용하며 1억원 초반대 연봉을 제시했다. 이후 연봉은 매년 수백만원씩 올라 파트너 승진 직전에는 2억원 가까이가 됐다. 김앤장이 가장 후한 대우를 했고 나머지 법무법인 간엔 큰 차이가 없었다. 세전 월 10만~20만원 차이니 사실상 동일한 수준이었다.

      작년부터 법무법인들의 초봉 인상 경쟁이 심화했다. 일감은 늘었는데 변호사들은 벤처캐피탈(VC)이나 스타트업 시장으로 이탈하며 일손 확보가 급해졌다. 처우와 삶의 질에 민감한 신입 직원들의 눈높이도 충족시켜야 했다. 작년 초 대형 법무법인들의 초봉은 대체로 세전 월 1100만원 초반대였는데 이후 광장, 율촌, 세종이 인상에 나서며 월 1200만원 수준이 됐다.

      가장 늦게 움직인 태평양이 초봉을 파격적으로 높였다. 경쟁사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란 예상이 있었지만 지난 3월 한번에 월 1300만원 수준까지 올렸다. 연봉으로는 1억5000만원을 넘어 김앤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기존 초봉 대비 인상률은 약 15%로 작년 매출 성장률(10%)보다 높다. 작년 매출액 3857억원(특허·해외 매출 포함 시)을 기록한 태평양이 입지를 공고히 하려 과감한 선택을 했다는 평가다.

      당장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여름방학 기간 리쿠르팅에 나서야 하는 경쟁사들은 태평양의 행보가 신경쓰일 수밖에 없었다. 태평양과 치열하게 2인자 자리를 다투는 광장이 바로 대응에 나섰다. 지난달 말 경영진 논의를 거쳐 초봉 인상을 결정했다. 초봉부터 3년차 연봉까지 태평양과 똑같이 맞춘 것으로 전해졌다.

      태평양과 광장이 초봉을 1억5000만원대로 높이며 율촌과 세종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모두 월 1200만원 수준으로 올린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인상하려니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경쟁사에 밀린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대안을 논의 중인데 당장은 아니라도 결국은 태평양과 광장을 따를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올해는 초봉을 올리지 않은 김앤장도 타 법무법인과 격차를 벌리기 위해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법무법인들의 인건비 부담이 커졌다. 초봉뿐만 아니라 어쏘시에이트(이하 어쏘) 변호사들의 연차별 급여도 같이 올라가며 각 법무법인마다 수십억원의 고정 비용이 추가로 발생했다. 한 번 올린 보수는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해가 갈수록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형 법무법인들은 지금까지 서로 드러내놓고 합의하지는 않았지만 연봉을 급히 올리거나 법인간 격차가 커지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에 법인 간 연봉 차이가 거의 없었는데 태평양이 시장 분위기를 바꿨다. 경쟁사 사이에선 태평양이 도발적인 수를 던졌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근엔 유동성의 힘이 줄며 ‘안정적이고 덩치 큰’ 산업으로 인력이 몰리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적어도 올해 대규모 연봉 인상에 나설 이유는 없었다는 지적이다.

      한 대형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지금까지 변호사 이탈이 많았고 MZ 세대의 눈높이도 맞추려다 보니 연봉 인상이 불가피한 면이 있다”면서도 “한 곳이 연봉을 올리면 다른 곳도 비슷하게 맞추니 큰 의미가 없는데 굳이 파격적으로 올릴 필요가 있었나 싶다”고 말했다.

      법무법인들의 내부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어쏘 변호사들의 연봉과 파트너가 챙겨가는 연봉 및 배당은 결국 제로섬이다. 어쏘 변호사에 돈을 더 주면 파트너들이 가져갈 파이가 줄어들게 된다. 일부 법무법인에선 어쏘 말년차 변호사와 초기 파트너 변호사의 월급이 역전되며 불만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성원의 우려를 잠재우고 초봉 인상의 당위성도 입증하려면 그만한 실적을 내면 된다. 그러나 올해 법률자문 시장 상황은 썩 좋지 않다. 올해는 작년 수준의 실적을 내면 대성공이고, 역성장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1~2년차 변호사는 당장 수임이나 자문에 도움이 되는 전력도 아니다.

      다른 대형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올해 1분기까지는 작년부터 하던 일감이 있어 나쁘지 않다 쳐도 2분기부터가 더 문제다”라며 “올해 성과가 나지 않으면 법무법인 경영진이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