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사이 8만→4만...베어링PEA는 PI첨단소재 지분을 더 살까
입력 2022.06.21 07:00
    美 소비자 물가·금리 인상 충격파에 韓 증시도 휘청
    PI첨단소재 주가 하락세 지속…매각가가 시총 넘어
    계약 직후 유탄 맞은 베어링, 주식 추가 매집 기회?
    단가 낮추고 회수 극대화 효과…시장 반발은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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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베어링PEA가 경쟁을 뚫고 PI첨단소재 인수전에서 승리했지만 환호는 길지 않았다. 일주일 사이 각종 변수가 더해지며 주가가 인수 단가의 절반 아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고가 인수’ 꼬리표가 붙을 상황인데, 워낙 주가가 낮다보니 지분을 더 사들여 주당 인수가격을 낮출 기회로 삼지 않겠느냐는 시선도 있다.

      지난 7일 베어링PEA는 글랜우드PE로부터 PI첨단소재 지분 54.07%를 1조2750억원에 인수하기로 하는 계약을 맺었다. 주당 8만300원으로 계약일 종가 대비로는 60%가량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글랜우드PE는 1조원 이상을 바랐는데 거래 막판 프랑스 알케마와 경쟁이 치열해지며 가격이 올라갔다. 베어링PEA는 가격 외 고용보장 등 조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쟁쟁한 경쟁자들을 누르고 조단위 빅딜을 성사시킨 것은 좋았지만 최근 상황은 달갑지 않다. 계약을 하자마자 주가 하락의 된서리를 맞고 있다.

      지난 10일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됐다. 작년 같은 달 대비 8.6% 상승했는데 41년 만의 최대 상승폭이다. 물가 상승 기울기가 완만해질 것이란 예상이 깨지며 시장이 크게 출렁였다. 며칠 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기준금리를 한 번에 75bp(0.75%)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28년 만에 단행했다. 코스피는 19개월 만에 2500선 아래로 무너졌다.

      PI첨단소재는 이달 초만해도 주가가 5만원을 넘었다. M&A 계약일 이후 주가가 미끄러지기 시작해 일주일 만에 4만원 아래가 됐다. 주가가 주당 인수가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고, 지분 54% 값이 회사 시가 총액을 넘어섰다. 최근 주가 하락으로 애먹는 한샘과 비교되는 처지다. 거래를 서둘러 주가 폭락을 피한 글랜우드PE는 운이 따랐지만 베어링PEA는 그 반대인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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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어링PEA의 PI첨단소재 인수는 작년 결성한 85억달러(약 11조원) 규모 8호 펀드의 첫 투자로 알려졌다. 올해 스웨덴 발렌베리가 사모펀드(PEF) 운용사 EQT파트너스가 베어링PEA를 인수하는 중이라 역량을 보여야 하는데 처음부터 무색한 처지가 됐다. 베어링PEA는 인수자금 일부를 우리은행과 미래에셋증권에서 빌릴 계획인데 이래서는 차입 협상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베어링PEA도 주가 상황을 면밀히 살피며 방도를 찾는 분위기로 전해진다. 지금 시장에서 기대할 호재는 많지 않다. 각국의 유동성 긴축이 이어지면 주식 시장도 힘이 빠질 전망이라 당분간 주가 상승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주가가 워낙 낮은 만큼 지분을 더 사들이는 방안은 생각해볼 만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경영권 거래 자금 외에 추가 자금을 조달해야 하고 투자 전략과 구조를 다시 짜야할 수 있어 손쉬운 방안은 아니지만, 주식을 더 살 수 있다면 평균 투자 단가를 낮추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주식 매집 과정에서 주가가 오른다면 그 자체도 나쁠 것은 없다.

      PI첨단소재 지분율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지면 자진 상장폐지를 시도할 만하다. 베어링PEA 입장에선 주가 관리 부담은 덜고, 경영 간섭 없이 회수 극대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PI첨단소재는 2014년 이후 글로벌 폴리이미드(PI)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고, PI 바니시(액체 상태 PI) 등의 성장 전망도 밝다. 해외 네트워크가 강한 베어링PEA의 도움을 받아 유럽과 미국에서의 사업 확장 전략이 속도를 낼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물론 지분을 추가 매집하려면 검토해야 할 것들이 많다. 5% 이상 보유자는 때마다 매집 상황을 공시로 알려야 한다. 지분 추가 매입은 대주주가 좋은 회사라고 판단했다는 신호를 줄 수 있지만, 주가가 낮을 때 꼼수를 부린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PEF가 공개매수를 시도했다가 시장의 비판을 받거나 실패했던 사례도 고려해야 한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투자 주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지분을 찔끔찔끔 사들이는 것은 부담이 클 것”이라며 “상장폐지를 하겠다면 지분을 조금씩 사는 것보다 한 번에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