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횡재했다"며 기업 마진 일부를 포기하라는 야당
입력 2022.06.22 17:08
    취재노트
    유류세 인하한 정부 의식하듯 "200원 이상 깎겠다"
    공급 묶여 구조적 상승세…文 부동산 정책 '판박이'
    정치권 생색내려 정유株, 은행株 따라가게 됐단 평
    SK이노·S-Oil은 상장사…국민 자산가치 하락은 계산 밖
    • 더불어민주당이 법을 개정해 정유업계 돈으로 기름값을 떨어뜨리겠다고 한다. 유가가 부담스러운 수준으로 오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누가 더 많이 깎아주느냐 경쟁하려고 모처럼 호황기를 맞은 정유업계 호주머니에 손을 대는 걸 두고 시장의 볼멘소리가 가득하다. 고통분담을 말하지만 생색은 정치인이 내고 부담은 정유업계가 지라는 태도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현재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을 두고 전임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비교하는 말이 돈다. 구조적으로 거의 같다. 공급을 묶어둔 채 수요가 회복하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그 덕에 돈 버는 사람으로부터 좀 돌려받자는 것까지 판박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정유업계 수익성을 '신'과 비교해 깎아내리고 횡재세를 걷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게 딱 지난 5년 한국의 부동산 정책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정제마진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수준으로 올랐다. 정치인 입장에선 정유업계가 못마땅할 수 있다.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정유업계 실적에 날개가 달렸지만 당장 공급을 늘리기 어렵다. 광구 개발부터 터미널, 운송용 선박, 정제 설비까지 인프라 확보에만 수년이 필요한데 탄소중립 시나리오 아래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이 사달을 국내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건 아니지만 정유업계 이윤을 문제 삼는 배경은 마찬가지로 불순하다. 

      21일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휘발유와 경유값을 200원 이상 떨어뜨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정유사 초과이익을 최소화하거나 기금 출연으로 회수하는 방안도 거론했다. 2000원 이상인 기름값을 최소한 1800원까지 낮추겠다는 건데, 야당으로서 고유가로 고통받는 현장으로 달려가 내놓은 대책이라 한다. 

      일단 초과이익을 어떻게 계산하는지, 이를 어떻게 최소화하겠다는 건지부터 불분명하다. 이윤에 손대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고통분담이란 얘기가 나온 이상 어떤 식으로든 정유업계 돈을 쓰겠다는 말이다. 시장에선 코스피 폭락 중 모처럼 힘을 쓰던 정유주가 은행주로 탈바꿈하게 됐다는 푸념이 나온다. 

      '리터당 200원 이상' 깎겠다는 대목에서 현 정부와 경쟁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발언 당시 원내대표와 동석한 민주당 부원내대표는 블로그에 "대기업 정유업계는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대처할 방도가 없다며 무능을 쉽게 고백한 대통령과 달리 '민생야당'으로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겠다"라고 적어놨다. 

      정부 유류세 인하 효과가 제한적이긴 하다. 유류세 인하 폭을 기존 30%에서 법정 한도인 37%로 확대했는데 휘발유 기준 리터당 57원 정도 떨어질 거란 전망이 나왔다. 숨통 트일 정도는 아니니 국회에서 유류세 인하 한도를 올려란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현재 국회는 공백 상태다. 원인 중 하나인 야당에서 정부보다 더 깎으려 노력하는 모습은 보여야 하니 숫자로 200원을 제시하되 부담은 정유업계더러 책임져라는 방식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 법 개정이 실제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대표적 시클리컬 업종인 정유사 이윤이 정치논리에 휘둘릴까 걱정이 상당하다. 

      지난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직후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 사태 땐 정유업계가 줄줄이 조 단위 적자를 내고 회사와 투자자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했다. 국가가 사기업인 정유업계 적자를 보전할 이유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호황기 실적에 국가가 손을 댈 명분도 없다. 세금을 안 낸 것도 아니고 법을 어긴 것도 아닌데 왜 정치권에서 그 돈을 탐내야 할 명분이 없다.

      그렇다고 이들이 의도적으로 이윤을 끌어올리고 있느냐 하면 그렇게 보기도 힘들다. 정제마진은 국제유가와 시장 시세에 따라 움직인다. 정유사마다 설비 고도화율이나 원유 확보 경로에 따라 최종 수익성에서 차이가 나타나지만 대체로 시장 상황에 수렴하는 실적을 내놓는다. 그렇게 남긴 이윤을 막 쓸 수 있는 시점도 아니다. 각국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 시계에 맞춰 신사업에 투자해야 할 재원인 까닭이다. 국내 정책 하에서도 정유산업은 사실상 좌초자산으로 분류된다. 

      SK이노베이션과 S-Oil은 상장사다. 국민이 상당수 주식을 나눠가지고 있다. 국민연금 등 기관이 보유한 간접 지분까지 일일이 따져보면 국민이 투자한 자산 일부란 얘기다. 국민이 어려움에 처할 정도로 돈을 벌었으니 이익 일부를 뺏어가겠다는 게 고통분담의 본질인데, 국민이 투자한 자산 가치가 하락하는 건 이들의 계산 밖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