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가 다시 '갑'됐다...'메자닌' 등 안전 투자 선호 뚜렷
입력 2022.07.07 07:00
    SK에코플랜트·메쉬코리아 등 CB 투자 사례↑
    금리인상 기조속 안전성 찾는 투자자 증가
    자본시장 경색 속 '하방 막는' 조건 증가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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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자본시장에 자금 경색 기미가 보이며 투자자들이 부랴부랴 ‘안전장치’ 모색에 나서고 있다. 상환권이나 신주인수권 등 손실을 막아줄 만한 투자 방식을 선호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회사의 성장성이 꺾이는 등 최악의 경우에도 최소한의 수익 혹은 원금은 보장받을 수 있는 투자 조건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간 풍부한 유동성 기조 속에 피투자사들이 오히려 주도권을 쥐는 시장이 지속됐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다. 금리인상과 맞물려 보수적 투자 기조가 강화되자 투자자가 '갑'(甲)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6월 SK에코플랜트는 국내 태양광 모듈 제조 및 발전소 사업을 운영하는 탑선이 발행한 전환사채(CB) 약 871억원을 인수했다. 보통주 전환 시 지분율은 약 40% 이상을 확보하게 된다. 전환가액은 주당 2만원으로 책정됐다. 

      여행 테크 플랫폼 마이리얼트립은 지난 6월 말 BW(신주인수권부사채) 방식의 투자 유치를 완료했다. VIG파트너스의 크레딧 투자 부문인 VIG얼터너티브크레딧(VAC)는 이 회사가 발행한 약 500억원 규모의 BW를 인수했다. 배달 대행 서비스 ‘부릉’의 운영사 메쉬코리아 역시 최근 투자 유치 과정에서 CB 방식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금리인상 기조에 경기침체 및 자금경색 징조가 나타나자 나타난 현상들이다. 최근 2년여간 신규 투자는 대부분 보통주로 이뤄졌다. 이제는 원금보장 옵션이 달린 '메자닌'이 더 많이 눈에 띄고 있다. 투자자들이 보다 안전한 투자 방식을 선호해서다.

      통상 CB나 BW는 기본적인 성격은 대출이지만 전환권이나 신주인수권이 붙어 있어 투자자 입장에서는 다소 유리한 방식으로 꼽힌다. 특히 CB는 전환하기 전까지 소정의 이자를 받으며 원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데다, 주식으로 전환하면 기업가치 상승 시 주가 상승으로 인한 투자 수익을 얻을 수 있다. BW는 비상장사의 경우 분리형을 발행할 수 있어 채권을 상환받더라도 신주인수권(워런트)은 그대로 남는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CB를 발행했다가 투자자가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을 행사하면 자칫 원금을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 혹여라도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경우라도 투자자에 약속한 원금을 돌려줘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BW 역시 투자자가 워런트를 팔거나, 행사할 경우 최대주주의 지분 희석 염려를 배제하기 어렵다. 

      이처럼 투자자에 유리한 조건이 많아지는 까닭은 최근 급격히 얼어붙은 자본시장 상황을 반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자본시장에서는 초기 VC(벤처투자) 투자부터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 PE들의 소수지분 투자 시장까지 최근 자본시장에 자금줄이 마르고 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조 단위 유니콘(시가총액 1조원 이상)들의 추가 투자 유치 소식이 이어졌지만 올해부턴 상황이 다르다. 투자 유치를 위해 목표 기업가치를 낮추거나 아예 자금조달 일정을 미루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국내 최대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직방은 최근 약 1000억원 투자 유치 과정에서 Valuation(밸류에이션)을 기존 3조원에서 2조5000억원으로 낮춰 잡았다. 재무적투자자(FI) 모집이 쉽지 않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프리IPO를 추진하고 있는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 역시 당초 10조원~15조원 정도로 잡았던 목표 기업가치를 다소 낮췄다는 후문이다. IPO(기업공개)를 추진 중인 쏘카 역시 올해 초 SI(전략적투자자) 유치 당시 산정된 기업가치 수준으로 공모가 상단을 산정했다. 

      아예 IPO(기업공개)나 프리IPO 일정을 수년 뒤로 미루는 경우도 있다. 최근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내년 이후 IPO 일정을 다시 잡기로 가닥을 잡았다. 당초 올해나 내년 상장을 꾀할 계획도 세워두고 있었지만 얼어붙은 시장 상황에 상장 일정을 조율한 것이다. 토스 역시 내년으로 논의해왔던 상장 계획을 다소 미룬 것으로 전해진다. 

      가격 타협이 어렵거나 사업 성장을 위해 대규모 투자 유치가 불가피한 기업 입장에서는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고서라도 투자 유치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이 때문에 당분간 자본시장에서 투자자에 유리한 투자 방식이 더욱 많아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으로 제기된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통상 CB나 BW 방식은 투자 받는 회사들이 추후 (투자자에) 원금을 보장해야 하므로 부담스런 것이 사실”이라며 “현재와 같이 돈줄이 말라 ‘투자자 우위’ 시장이 되면 (CB나 BW와 같이) 하방을 막아주는 투자 방식의 선호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