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쏠 계획 없는 기관들…말라가는 유동성에 PEF 펀드레이징 시장 '찬바람'
입력 2022.07.07 07:00
    가입자 대출에 투자재원 마른 기관들
    쏟아지는 캐피탈콜도 부담
    높은 금리에 대체투자 매력도 ‘글쎄’
    블라인드 출자사업도 ‘잠잠’
    해외기관도 자금 묶는중…대형 운용사도 난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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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사모펀드(PEF) 결성에 큰 손 역할을 하던 국내 기관투가들 상당수는 대체투자 출자 사업에 상당히 신중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새정부 들어 정책금융기관들은 출자 사업 계획을 새롭게 짜고 있고, 연기금·공제회 출자 여력이 급격히 줄어 들고있다.

      저금리 시대, 시장의 유동성이 풍부하던 과거엔 기관들이 대체투자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유동성 파티의 끝에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금리로 인해 기관들의 대체 투자 실익은 예년보다 줄어든 반면 투자 자산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기관들의 돈 줄을 죄는 움직임은 PEF 운용사에 그 여파가 고스란히 전가된다. 지난해까지 펀드레이징을 마치고 블라인드펀드 결성해 전략적 운용이 가능한 곳들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새롭게 펀드레이징에 나선 운용사들은 난항이 예상된다는 평가다.

      공제회를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대체 투자 투자 재원은 크게 줄어들고 있단 평가를 받는다.

      코스피 2400선이 붕괴한 주식시장에선 수익을 내기 어렵게 됐다. 대부분 기관들의 가장 큰 포트폴리오인 채권 부문은 금리 상승으로 평가 손실이 나날이 늘고 있다. 기관들이 수익율을 방어하기에 급급한 상황에서 투자 재원이 넉넉하다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재원이 넉넉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연금과 공제회들은 수익자, 즉 가입자들을 위한 대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생활자금과 학자금 등 개별 기관마다 추진중인 사업 성격은 차이가 존재하지만, 시중은행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자금을 대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기준 금리 변화에 제도권 금융기관보다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평균 4.5%를 훌쩍 넘었고 저축은행을 비롯한 제 2금융권의 금리는 10%를 넘어선 곳도 다수다. 이에 비해 국내 연기금 공제회의 대여자금 금리는 낮게 형성돼 있어 최근들어 가입자들의 대출 문의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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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학연금·과학기술인공제회·교직원공제회 대여사업 안내(출처=개별 기관 홈페이지)

      국내 한 공제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대여사업을 하는 많은 기관들이 가입자 대여금이 크게 늘어나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원칙적으로 가입자의 이해관계를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하기 때문에 대여금을 크게 줄이긴 어렵고, 대신 투자재원을 조정하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연기금과 공제회들의 출자 사업은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다. 물론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책적인 변화에 따른 맞춤형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사실 과거의 출자 사업이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공제회들은 매년 또는 격년으로 블라인드펀드 출자사업을 진행해 왔다. 해당 사업들은 캐피탈콜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출자를 확약한 운용사들이 요청할 시 언제든 자금을 보내야한다. 지난 수 년간 코로나 사태로 다소 위축됐던 운용사들이, 올해 들어 활발한 투자활동을 시작하면서 기관투자가들에 캐피탈콜 요청이 늘어난 점도 기관들이 적극적으로 출자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요인이 된다.

      기관투자가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신규로 블라인드펀드 결성을 시도하는 운용사들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가 지난 현재까지 국민연금과 한국성장금융이 PEF 분야에서 각각 한 차례의 블라인드펀드 출자 사업을 진행했을 뿐 다른 기관들의 움직임은 미미하다. 이마저도 국민연금은 지난해에 비해 규모를 줄였고 성장금융은 2차 출자 사업 계획이 다소 뒤로 밀린 상태다.

      국내 한 대형 PEF 운용사 대표급 관계자는 "대형 기관의 컨테스트 계획도 명확하지 않고, 중소형 기관투자가는 물론 금융기관의 출자도 상당히 위축돼 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시장상황에서 펀드레이징에 나서는 것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조 단위의 대형 블라인드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PEF도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다. 국내 한 대형 운용사는 조 단위의 펀드 결성을 진하고 있는데 최종 투자금 모집 완료 일정은 내후년까지로 넉넉히 잡아둔 상태다. 기관투자가들이 돈을 풀지 않는 상황은 해외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크기를 막론하고 PEF 운용사들의 고민은 깊다는 평가다. 또한 스페셜시츄에이션, 크레딧펀드 등 다양한 투자방식을 활용하기 위한 대형 PEF의 자회사가 늘어나면서 향후 컨테스트의 경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주로 외국계 기관투자가로부터 자금을 받아 운용하는 PEF의 한 임원은 "금리의 가파른 상승과 대체투자 분야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해외기관투자가들도 출자를 다소 꺼리는 분위기는 국내와 마찬가지다"고 했다.

      그나마 블라인드펀드를 보유해 운용하는 PEF들은 상황이 나은편이다. 보유한 펀드의 투자 속도를 조절하며 내년 또는 내후년까지 버텨보겠단 전략도 세울 수 있다. 

      프로젝트펀드만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는 운용사들은 상황이 다르다. 특히 엑시트 성과가 없거나 미미한 신생 운용사들은 당분간 블라인드펀드 결성을 추진하긴 어려운 상황이고, 올해부턴 자본시장법의 개정으로 주요 출자자였던 일반 기업들의 자금을 받기도 어려워졌다. 50억~100억원 정도의 비교적 소규모로 출자하는 금융기관들도 대외 출자사업을 크게 줄였다.

      투자처를 확보하고 인수금융으로 자금을 조달해 딜을 성사시키는 것, 투자금을 무사히(?) 회수하는 것은 펀드레이징과는 또 다른 문제다.

      실제로 가파른 금리 상승은 자금을 빌려 M&A를 추진하는 PEF 운용사엔 상당한 부담이 된다. 현재는 자기자본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보하는 대기업 발 대형 M&A 거래를 제외하곤, 사모펀드가 1조원 이상의 자금을 빌려 2조원 대 이상의 초대형 M&A를 추진하긴 사실상 어려운 시장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비단 초대형 M&A가 아니더라도 평균 약 8%에 달하는 기준수익률을 넘기는데 5%가 넘는 차입금의 높은 금리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전세계적으로 유동성을 회수하고 있는 시점에서 과거 바이오, 플랫폼 기업들과 같은 소위 대박 투자 사례는 당분간 나타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상당히 높은 몸 값을 인정(?) 받았던 일부 유니콘 기업들의 거품은 서서히 걷힐 조짐이 나타난다. 즉 유동성에 기대 높은 밸류에이션에 올라탄 일부 VC 또는 PEF들의 투자금 회수 작업도 순탄치만은 않을 수 있단 의미다. 펀드레이징과 투자금 회수 등 어느하나 순탄치 않은 상황에서 각 운용사들의 세밀한 생존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