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혀지지 않는 매각자-인수후보 눈높이…대어급 M&A 완주 여부 안갯속
입력 2022.07.15 07:00
    하반기 대형 거래 많지만 원매자들은 머뭇
    시장은 급강하하는데 원매자 기대는 여전
    장기 불황 우려에 투자도 관리도 쉽지 않아
    "거래 주선 어렵고 종결 비중도 낮아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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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하반기 들어 대형 M&A가 속속 진행되고 있지만 성사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불과 몇 달 전까지 호황을 지켜봤던 매각자의 기대치는 낮아지지 않고, 언제까지 경기 부진이 이어질까 걱정하는 인수자들은 지갑을 여는 데 주저하고 있다. 자본시장이 워낙 가파르게 침체 분위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팔려는 곳과 사려는 곳이 시각차를 좁혀가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지적이다.

      이달 초 치러진 일진머티리얼즈 경영권 매각 예비입찰은 예상보다 한산했다. 수 십 곳에 초청장을 보냈지만 대형 사모펀드(PEF)와 대기업들이 대거 불참했다. 일진머티리얼즈 매각자는 지분 100% 가치로 6조원, 매각 대상 지분 가격으로 3조원 수준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매각 절차 초기 시가로는 50%, 최근 시가 대비로는 두 배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얹어진 금액이다.

      잠재 원매자들은 좋은 회사라면서도 몸값이 과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형 PEF들은 이미 몇 해전 KKR이 LS엠트론의 동박사업(현 SK넥실리스)으로 성과를 낸 영역에 높은 가격으로 뛰어들기 부담스러워했다. 최종 수요처인 완성차 업계의 부진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매각자 측은 내달 중 계약을 체결하길 바라는데, 몸값 이견이 클 경우 M&A가 표류할 수도 있다. 처음 매각을 고민했던 작년에 매각 작업을 시작했어야 하는 것 아니냔 시선도 있다.

      유니슨캐피탈도 이달 들어 구강 스캐너 전문기업 메디트 경영권 매각 절차에 돌입했다. 매각 대상은 유니슨캐피탈의 메디트 경영권 지분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소수지분 등 지분 100%다. 일진머티리얼즈를 넘어 하반기 M&A 최대어가 될 가능성이 크다. 2019년 메디트 매출은 721억원,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367억원이었는데 작년엔 각각 1905억원, 1056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도 실적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상반기 클래시스, 디오 등 의료 관련 업체 M&A가 후한 값에 이뤄지기도 했다.

      유니슨캐피탈의 기대치가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지적은 있다. 성장 산업이고, 실적도 잘 만들어두긴 했지만 아주 큰 시장은 아니고 대기업이 관심을 가질 대상인지도 의문이다. 글로벌 PEF들이 메디트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금액이다. 매각자 측은 처음엔 3조5000억원 수준을 원했지만 회사의 실적 개선세에 자신을 갖고 기준점을 4조원까지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SM엔터테인먼트 M&A는 차일 피일 미뤄지다 미궁에 빠졌다. 조건을 재는 사이 행동주의 펀드의 견제를 받아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야 했다. 코로나 확산세가 다시 심상치 않은 분위기고, 경기침체 국면에서 엔터 산업이 호황을 누리기 어렵다. 한참 올랐던 주가는 아직 박스권을 오가고 있지만 언제 힘이 빠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아직 원매자들은 SM에 매력을 느끼고는 있지만 거래가 성사되려면 금액이나 부대 조건에서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양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IMM인베스트먼트가 작년부터 검토에 들어간 환경기업 EMK 매각은 상당기간 표류했다. 환경 사업에 공을 들이던 대기업-재무적투자자(FI) 컨소시엄들이 인수전에 참여했지만 중소기업 적합 업종 침해 우려에 적극 나서지 못했다. 이후 다시 매각 절차를 진행해 최근 새 주인을 찾았다. 올해 경기 침체 속 ESG 테마에 힘이 빠졌고, 알짜 회사도 매각 대상에서 빠졌던 터라 처음 거론된 금액보다 낮은 수준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지난 11일 한화솔루션은 첨단소재부문의 일부사업을 부분적으로 유동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나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재공시했다. 작년 유수의 대기업들이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을 끌어가자 한화그룹도 이에 동참했던 것인데 성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시장 자금은 씨가 말랐고, 성장 산업으로 보기도 애매하다. 희망 몸값과 시장 평가 사이의 거리는 몇 달 전보다 크게 멀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소수지분에 비싸게 들어갈 수는 없고, 싸게 들어가도 언제 장이 반등해 회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대기업들이 쌈짓돈처럼 썼던 FI 자금이 이제는 희소해졌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모두가 퍼펙트스톰이 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상황이라 굳이 지금 대형 M&A나 소수지분 투자에 나설 이유가 없다”며 “검토하던 투자 건들은 모두 접었고 올해는 투자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롯데카드나 카카오모빌리티 M&A는 시장의 평판과도 싸워야 한다. 롯데카드는 기업가치 3조원이 거론되는데, ‘결국 카드사’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실제로는 그보다 낮은 가격을 수용할 의지도 있을 것이란 시선도 있다. 매각 시한도 어느 시점으로 못박지 않은 분위기다. 카카오모빌리티 M&A에선 노조 반발이 걸림돌이다. ‘택시대란’이 카카오모빌리티의 사업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도 예단하기 어렵다. 버거킹, 맘스터치 등 M&A에선 '조단위' 희망가격이 꼭 득이 되지 않는 분위기다.

      상황이 이러니 국내에서 M&A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환율과 드라이파우더의 힘으로 한국 시장을 살피는 외국계 PEF가 적극적일 뿐 대기업과 국내 PEF들의 행보는 조심스럽다. M&A 시장에 발을 담그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가파른 하락장에 국내 매각자의 눈높이는 더디게 떨어지니 성사 가능성을 높이 보기 어렵다. 인수자 입장에선 해외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최근 SD바이오센서는 미국 진단기업 메리디언을 약 2조원에, 고려아연은 미국 전자폐기물 전문업체 이그니오홀딩스를 4324억원에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 M&A 자문사 관계자는 “시장은 급격하게 식었는데 매각자의 눈높이는 몇 달 차이 후행적으로 따라오다보니 거래 주선이 쉽지 않다”며 “당장 진행 중인 거래 자문 건수가 급감한 것은 아니지만 거래 종결까지 완주하는 비율이 낮아질 가능성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