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혹한기' 대비하는 비상장 투자업계...'다음 회수는 10년 뒤'
입력 2022.07.18 07:00
    IMM인베 얼리스테이지 펀드 조성
    KB인베도 초기 투자 전담 조직 꾸려
    증권사 VC 부서 개점 휴업…미래 준비
    3~5년 후 내다보고 딜 소싱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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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최근 수년간 호황기를 누렸던 비상장 투자업계가 다가오는 ‘투자 혹한기’에 대비해 조금 더 이른 단계의 투자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급격히 침체된 증시 상황 속에서 당장의 투자금 회수(엑시트)를 기대하기 어려워진 만큼 ‘10년 후’를 바라보며 초기 투자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발 빠른 투자사들은 벌써부터 시리즈A 미만의 초기 기업 발굴을 위한 펀딩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트랙레코드(거래사례)가 부족한 신생 VC(벤처투자사)의 경우 이마저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하우스 네임밸류가 부족한 만큼 개별 딜을 통한 프로젝트 펀딩이 절실한데, 엑시트 기간이 길수록 투자자를 모집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결국 하우스 규모나 업력에 따른 ‘양극화 현상’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최근 IMM인베스트먼트(이하 IMM인베)는 설립 이래 최초로 초기 기업 투자에 특화된 펀드 ‘IMM 스타트업 벤처펀드 1호’ 조성을 마무리 지었다. 펀드 규모는 약 1000억원으로 당초 계획된 규모보다 다시 금액을 키운 것으로 전해진다. KB인베스트먼트(이하 KB인베) 역시 지난 3월 초기 기업 발굴을 전담하는 조직인 ‘KB파운더스클럽’을 새로 결성했다. 이지애 KB인베스트먼트 상무가 이끌고 있으며 최근 약 300억원 규모의 펀드 결성을 마무리 지었다. 

      그간 시리즈B 이상의 후기 투자 건에 집중해왔던 대형 VC 하우스들의 시선이 이전보다는 초기 단계로 옮겨가고 있는 모양새다. IMM인베는 그동안 특화 펀드로는 후기 단계에 투자하는 그로쓰 펀드만 운영해왔고, KB인베 역시 초기 기업에만 투자하는 조직을 결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 자금줄이 급격히 마르며 비상장 투자자들이 ‘투자 혹한기’에 대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스타트업들도 투자 유치가 어려워 기업가치(Valuation)를 낮추거나 결국 실패하는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한때 1~2년 안에 상장(IPO) 계획도 고려했던 스타트업들도 이를 포기하거나 프리IPO 시기를 뒤로 늦추는 회사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상장 투자자들이 10년 뒤 다시 투자 호황기가 올 때를 대비해 미리 초기 기업 선점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투자 이후 1~2년 안에 상장이나 매각을 통해 자금 회수를 노릴 수 있는 투자 건에 수요가 몰랐지만 이제는 프리IPO 사례가 씨가 마른 상황”이라며 “덩치가 큰 규모의 스타트업보다는 아주 초기 단계의 회사에 투자자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작년 말 시리즈D 투자유치에 나섰던 개인 오디오 방송 플랫폼 스푼라디오는 최근 자금 확보에 실패하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인원 감축에 나섰다. 누적 투자금액이 600억원에 이르는 설립 9년차 스타트업이지만 직원과 사무실 규모를 줄이며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명품 커머스 플랫폼으로 각광을 받아온 발란이나 트렌비도 올해 초부터 추가 투자 유치에 나섰지만 딜클로징(거래 종결)까지 시일이 지연되는 상태다. 

      프리IPO 투자가 막히니 상장 계획이 꼬이고, IPO 시장의 침체가 다시 프리IPO 시장의 위축을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여기에 전반적인 증시 침체로 인한 보수적 투자집행 기조도 투자 시장 위축에 기름을 부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증권사 내 IPO 부서에서도 예전과 달리 좀 더 초기 기업 위주로 ‘딜을 발굴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 벤처투자회사처럼 시리즈A 미만의 극초기 단계 기업 투자는 어렵더라도 3~5년 후 상장할 수 있는 기업들 위주로 발굴하는 데 초점을 맞추자는 취지다. 

      다만 일부 수익률에 민감한 증권사 내 투자부서는 좀 더 신중히 투자에 임하자는 기조를 보이는 곳도 있다. 엑시트 주기가 빠른 프리IPO 건이 희귀해지자 사실상 증권사 내 PI(자기자본투자) 부서는 ‘전면 휴업’ 상태라는 전언이다. 증시 상황이 좋지 못한 만큼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잠시 쉬어가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차라리 투자를 안 하는 것이 회사에 더 도움이 되는 방향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초기 기업 투자가 반드시 ‘정답’은 아니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아직 조직 셋팅이 미비한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투자자가 부담해야 하는 리스크는 커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특히 투자 업력이나 트랙레코드가 적은 신생 투자사일수록 초기 기업 투자는 ‘도박’이나 다름없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신생 운용사들은 하우스 이름값보다는 개별 딜의 장점을 부각해 이를 통한 프로젝트펀딩에 주로 의존하는데, 초기 기업 투자일수록 자금을 모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최근 초기 투자에 수요가 몰리기는 하지만 향후 수익 실현에 대한 리스크가 커지는 것은 사실이고 엑시트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라며 “다만 투자자 입장에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초기기업 투자에 집중하는 점도 없지 않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