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텝과 함께한 회사채 안정 방안...한전 이어 산은發 시장왜곡 재현 우려도
입력 2022.07.19 07:00
    한은 기준금리 0.5%p 올린 날 채권 시장 지원안
    채권 매입 한도 늘리고 시한도 내년 3월로 연장
    "금리 상승기 官 주도 지원, 民 부담 가중" 지적도
    "채권 시장 왜곡 안 나타나도 실효성 역시 없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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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은행이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이상 인상)을 밟았고 금융당국은 회사채 시장 안정 방안을 다시 꺼냈다. 가파른 금리 인상기에는 정부발 지원책이 시장 금리를 더 밀어올리고 민간을 위축 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전력이 채권 시장을 흔들었던 것처럼 산업은행의 움직임이 연쇄적인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 왜곡이 나타나지 않는다 쳐도 실효성 역시 없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국은행은 지난 13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2.25%로 0.5%포인트 인상했다. 한국은행의 빅스텝 결정은 사상 처음이고, 기준금리 2.25%는 2014년 이후 8년 만이다. 고물가가 고착화하는 상황을 막겠다는 것인데, 앞으로도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날 금융위원회는 ‘회사채·기업어음(CP) 시장 안정을 위한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가동한 신용도 BBB 이하 기업의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 운영 시한을 오는 9월에서 내년 3월까지로 연장하기로 했다. 매입 가능 한도는 기존에 남은 3조6000억원에 2조4000억원을 더해 6조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최근 기업들이 자금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취지다.

      산업은행 등이 회사채를 다시 매입하려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올해 시장의 유동성이 마르면서 국책은행을 찾는 기업들이 늘었고, 국책은행의 자금 여유는 줄었다. 수신 기능이 강하지 않은 국책은행은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 채권 매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산금채 발행에 나서야 한다면 채권 시장의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있다.

    • 산업은행이 회사채·CP 매입에 필요한 돈은 다 해도 수조원이다. 보통 때면 시장에 무리가 갈 수준이 아니지만 지금처럼 투자 심리가 위축됐을 때는 시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가장 우량하고 안정적인 산금채로 투자금이 몰리면 가뜩이나 힘든 기업들의 채권 발행이 더 어려워진다. 발행이 거듭될수록 산금채 자체의 발행금리가 상승하고, 그 이하 신용등급 기업의 조달금리도 따라 오를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이 올해 한전채를 무더기로 쏟아내며 채권 시장을 왜곡시키고 발행 금리를 끌어올린 한국전력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이 회사채를 매입하면 당장은 자금 위기에 몰린 기업들엔 단비가 되고, 채권 투자 심리가 살아날 수 있다. 그러나 수조원으론 지금의 가파른 시장금리 상승, 경기침체 위기에 대응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비우량 채권에 물려 있던 투자자들이 채권 차환 발행 때 발을 뺄 기회만 주게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매입 시한도 있다 보니 ‘탈출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금리 상승기엔 이런 형태의 지원이 효과를 보기 어려운 면도 있다. 금리 하락기엔 시장 유동성이 풍부해지기 때문에 정부 쪽에서 살짝만 도와줘도 기업들에 빠르게 자금이 돌지만 상승기엔 그렇지 않다.

      민간을 돕기 위해 빚을 늘린 공공기관의 금리 부담은 커지고, 이는 다시 시장에도 영향을 미쳐 민간 기업의 회사채 발행 금리 상승을 불러오게 된다. 정부 쪽에서 도와주겠다고 나섰는데 결국은 모두의 빚만 늘리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민간 부문의 투자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 채권투자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 후의 채권 발행 지원 정책은 금리 하락기와 맞물리며 정부의 의도와 시장의 결과가 일치했지만 지금같은 금리 상승기엔 공공기관도 민간 시장도 별다른 실익 없이 금리 부담만 더 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며 “정책적 악성 물량 받아주기가 여기서 멈출지 아니면 이제 시작일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산업은행발 시장 충격은 없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산금채를 발행해 조달했다가 아직 쓰지 않은 자금이 있고, 지금까지 프로그램에 따라 매입된 회사채는 지난 2년간 유동성 풍년기를 거치며 상환되는 사례가 늘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채 매입 여력이 있으니 실제 산금채 발행이 급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지원 방안이 실효를 거둘 것이라는 기대는 많지 않다.

      다른 채권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매입한 채권이 상환되고 있고 지원하지 않고 남겨둔 자금도 많은 터라 산금채 발행이 소폭 늘 수는 있지만 시장에 충격을 주진 않을 것”이라며 “이번 지원 방안은 기존의 것을 연장한 데 그치고, 회사채 발행이 어렵긴 마찬가지인 우량 기업들은 지원 대상에 빠져 있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