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는 끝, 경기침체도 끝? 매크로 이슈 '풍차'에 멀미하는 코스피
입력 2022.07.20 07:00
    6월 이후 코스피 급등락일, 이전의 두 배 수준으로 늘어
    대외 변수 오락가락...외인자금 움직임에 증시 흔들려
    인플레에서 경기침체로, 회복 기대감에서 실적 우려로
    이달 말 미국 기준금리 '울트라스텝' 여부가 핵심 변수
    • 6월 이후 국내 코스피 지수가 전일 대비 1% 이상 급등락한 날의 비율은 53%로 전체 거래일의 절반이 넘었다. 지난 1년간 평균 비율이 32%였음을 고려하면, 지수가 급등락하는 날의 비율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코스닥도 마찬가지다. 운용 일선에서 '멀미가 난다'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국내 증시가 수급 기반을 잃고 외국인 수급에 좌우되는 취약한 환경이 되며 벌어진 일이라는 분석이다. 하루하루 일희일비하는 매크로 이슈의 방향에 따라 외국인의 수급이 바뀌고, 이것이 지수 급등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 달 새 외국인들은 물가급등(인플레이션)을 가격에 반영했다가, 경기침체(리세션)를 반영했다가, 이후 회복세까지 미리 주가에 반영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6월 말까지 코스피가 글로벌 증시 대비 약세를 보인 건 글로벌 달러 강세로 인한 환율 부담에 더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빅스텝(50bp) 우려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달 초 금통위에서 빅스텝이 현실화하며 일단 시장에서 재료가 소화됐다. 2.25%인 현재의 기준금리가 성장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최적의 금리인 중립 금리(2.5~3% 추정)에 가깝다는 평이 주류를 이루며, 채권시장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는 분위기다.

      문제는 대외변수였다. 6월 초까지 맹위를 떨치던 인플레이션 이슈는 어느새 흐지부지된 상황이다. 6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시장 예상치 8.8%보다 높은 9.1%를 기록했지만, 기름값 등 변동성이 큰 요인을 제외한 근원 CPI는 지난 3월 6.5%를 정점으로 3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 이후 최근까지 시장에 크게 영향을 준 요인은 경기침체 이슈였다. 세계 주요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돈줄이 잠기며 경기가 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득세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올해 1월 4.4%에서 4월 3.6%로 하향 조정됐는데, 이달 말에 발표될 새 전망치는 3%선 아래로 내려갈 것이란 전망이 급부상했다.

      국제 원자재 시세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세계 상품시장의 선행지표로 손꼽히는 구리 선물 가격은 6월 이후 30% 가까이 급락하며 2020년 11월 수준으로 돌아갔다. 지난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부셸당 1300달러 이상으로 치솟았던 국제 밀 가격 역시 최근 전쟁 이전인 800달러대로 돌아왔다.

      인플레이션의 주범으로 지목받던 국제 유가도 한때 배럴당 90달러대까지 급락했다. 미국 7월 첫째 주 자동차용 가솔린 수요가 1996년 이후 동기 대비 최악 수준인 하루 800만 배럴 선으로 내려가며 가격 상승으로 인한 수요 파괴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낮아진 유가와 휘발유 가격이 물가 지표에 반영될 3분기엔 드디어 물가 '피크아웃'(고점 후 하락)이 일어날 거란 전망이 힘을 받았다.

      그 사이 국내 증시엔 글로벌 매크로 이슈의 안 좋은 점만 반영됐다. 인플레이션 이슈 시기엔 기준금리 인상 부담으로 밸류에이션이 급락하더니, 경기침체 이슈 시기엔 글로벌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우려로 주가가 약세를 보였다. 이 시기 달러당 1200원대 초반이던 원달러환율은 1300원대 중반까지 치솟았고, 환 손실을 우려한 외국인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며 증시 수급이 무너졌다.

      이달 초 2270선까지 밀리며 연 저점을 새로 쓴 코스피 지수가 최근 2400선 문턱까지 회복세를 보인 건 코스피 주가순자산비율(PBR) 기준 0.9배 수준까지 내려간 가격 매력에 더해,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업황 회복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업체인 대만 TSMC가 지난 14일 시장 예상을 깨고 2분기 큰 폭의 매출 성장세를 기록한 데다, 하반기 업황 전망도 밝게 내다보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반도체 핵심 지수인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7월 중순 이후 저점에서 5%가량 상승했다.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외국인 매수세가 들어오며 지수도 모처럼 상승세를 보였다.

      그렇다고 모든 악재가 해소된 건 또 아니다. 증권가 전문가들은 '끝이 보이긴 하지만,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내놓고 있다. 국내 지수에 큰 영향을 주는 미국 나스닥 지수의 경우 세 차례에 걸친 1만2000선 회복 시도가 실패하며 다소 침체한 분위기다.

      당장 2분기 실적 시즌이 변수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15일 기준 미국 S&P500지수 내 실적 발표 완료 기업 중 어닝서프라이즈(예상 상회)를 기록한 기업 비율은 60%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는 과거 10년 평균 72%, 5년 평균 77% 대비 크게 낮은 수준이다. 미국의 산업생산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고 기업 재고 역시 늘어나고 있다. 미국 목표주가 하향 역시 본격화했다.

      오는 27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OMC)에 이목이 쏠리는 배경이다. 불확실성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기준금리가 시장 전망대로 자이언트스텝(75bp 인상)에 그치느냐, 울트라스텝(100bp)으로 나아가느냐가 향후 증시의 방향키를 쥔 핵심 변수로 꼽힌다. 일단 현시점에서는 자이언트스텝에 방점이 찍히지만, 6월 소매판매가 시장 전망 이상의 서프라이즈로 상승하는 등 가늠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KB증권은 이번 어닝시즌과 관련해 "매크로에선 부정적인 것들이 긍정적인 요인을 압도하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까진 그럴 것"이라면서도 "실적은 인플레 때문에 우려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