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기일수록 자산 분산ㆍ투자 선별ㆍ마진 축소 '기본'으로 돌아가야"
입력 2022.07.21 07:00
    [4大 국내 증권사 CRO 릴레이 인터뷰]
    금리상승에 증시침체 시그널까지...증권사 '겹악재' 직면
    금융 당국의 관리 칼날에 증권사 리스크관리 중요성 부각
    미래에셋·NH투증·KB증권·신한금투 리스크 관리 '한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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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편집자주 : 유동성이 말라붙고 매크로 환경이 비우호적으로 돌아가며 국내 주요 금융회사들의 경영 전략도 '성장'에서 '관리'로 급선회하고 있다. 각 사의 리스크 대비 현황은 이미 지난 1분기 실적의 명과 암을 갈랐고, 2분기엔 더 드라마틱한 격차를 만들어낼 전망이다. 특히 국내 금융사 중 가장 많은 위험상품을 다루는 증권사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인베스트조선은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국내 대표 4대 증권사의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를 만나 대응 전략을 들어봤다.]

      풍부한 유동성의 시대가 저물고 금리상승 기조가 지속되면서 경기침체에 따른 자금경색 리스크가 화두에 올랐다. 전세계적인 주식시장 위축, 금융자산의 평가손실 확대 리스크에 증권사의 건전성 관리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시점이다. 

      이미 각 증권사 별로 위험 징조는 가시화되고 있다. 급격한 금리상승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및 인수금융 부문의 미매각 물량이 쌓이고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각종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사태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다가오는 ‘위기 관리’ 시대를 맞아 각 증권사들 역시 각기 대비책을 세우기 위해 분주한 모양새다. 

      지난 6월, 이복현 신임 금융감독원장은 취임한 지 약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증권사 CEO(최고경영자)들을 한 데 불러 건전성 및 유동성 관리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단기 금융시장 경색에 따라 증권사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금리상승으로 인한 보유채권 손실, 주가연계증권(ELS) 등 파생상품 관리, 부동산PF 등 자산 부실화 등 역시 각별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부문으로 꼽혔다. 

      이 같은 금융 당국 기조에 증권사 내 리스크관리를 책임지는 임원들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위기에 대비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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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금리상승으로 증권업황에 드리운 먹구름…’시스템’ 재정비로 파고 넘는다

      국내 증권사들은 모두 금리상승에 따른 각종 지표 변화를 최근 리스크 관리의 주안점으로 꼽았다. 금리상승은 단기 자금조달이 필수인 증권사 영업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증시거래 위축으로 위탁매매 수익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채권 및 주식운용 부문 역시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상태다. 특히 가파른 금리상승은 채권 트레이딩에 직접적인 손실을 미친다. 결국 지난 1분기 증권사 영업수익은 약 5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1조5000억원 가량 감소했다. 

      이에 각 증권사의 리스크관리 부서에서는 금리상승 시기를 맞아 시스템 정비에 분주한 모습이다. 그간 국내 증권사들의 리스크관리 능력이 예전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발전했지만, 급격히 바뀌는 거시적 시장 상황을 반영해 좀 더 타이트한 관리에 힘쓰는 모양새다.

      김도식 NH투자증권 리스크관리본부 상무는 “금리의 가파른 상승으로 채권 트레이딩북과 관련한 손실이 예상되고 있어 하반기에도 변동성 확대를 감안해 리스크관리에 힘쓸 예정”이라며 “고유자금 투자규모나 고객 자금을 활용한 운용 모두 리스크 한도를 줄이고 제한적 범위에서만 신규 운용을 허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염홍선 KB증권 리스크관리본부 상무 역시 “증권사 내 업황 악화로 하반기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라며 “운용 부서들이 수익 창출에 대한 압박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럴 때일수록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 S&T(세일즈앤트레이딩) 부서 등 현업 부서에서 몸집을 줄이고, (신규보다는) 기존 투자를 회수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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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금융 당국이 주시하는 부동산PF...인수금융도 셀다운에 초점

      부동산PF와 인수금융 부문 역시 금리상승에 따라 각별한 모니터링이 요구되는 분야로 꼽힌다. 조달금리가 오르니 부동산PF사업의 수익성이 저하되고 리파이낸싱(자본재조정)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탓이다. 인수금융 부문 역시 가파르게 오르는 금리에 조달금리 상승의 부담을 안게 됐다. 최근 인수금융 금리는 약 6%대로 지난 1분기 4% 수준에서 크게 올랐다. 이에 증권사들은 해당 분야 내 미매각 물량을 셀다운(Sell-down·단기 보유 후 매각)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리스크관리부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올해는 ‘셀다운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매각 물량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일부 증권사들은 다소 할인을 불사하고라도 셀다운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KB증권은 올해 초 운용 부문 내에 셀다운을 전담으로 맡는 대체신디팀을 신설하기도 했다. 

      염홍선 KB증권 상무는 “아무래도 증권사들은 고유계정보다는 셀다운 위주로 부동산 IB사업을 취급하다보니 셀다운 물량이 많이 쌓인 것이 사실”이라며 “올해 초부터 셀다운 기간을 줄이도록 하고 자산을 특성별로 다섯 유형으로 나눠 셀다운을 관리 중”이라고 말했다. 

      최성준 신한금융투자 심사본부 상무는 “아무래도 금리가 오르니 수익성 자체가 기관들의 눈높이에 안 맞는 경우들이 있다”라며 “일정 부분은 기존에 받았던 수수료를 반영하고 일부 할인을 통해서라도 셀다운에 신경 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우스 기조에 따라 개별 딜보다는 전반적인 시스템 관리가 우선이라는 의견도 있다. 리스크부서에서 개별 딜의 성패 여부를 점치기는 어려우니 부실이 날 ‘가능성’을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추자는 취지다. 

      안종균 미래에셋증권 리스크관리부문 부사장은 “자기자본의 30% 이상은 부동산PF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시스템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권장 비중은 20~25% 수준이다”라며 “현장 하나씩 돌아다니며 심사하는 것은 심사본부가 해야 할 역할이지, 리스크관리본부에서는 더 매크로한 상황을 체크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최악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증시침체에 ELS 등 파생상품 안정성도 도마 위…"상품관리 철저히 감독할 것"

      최근 글로벌 주식시장 및 금융시장 전반에 걸쳐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가운데 주가연계증권(ELS) 등 파생상품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주요 주가지수들은 고점 대비 20% 가까이 하락하고 있고, ELS의 조기상환 규모가 급감하며 잔액이 증가하는 상황이다. 올해 6월 말 기준 ELS 잔액은 44조원으로 전년 말보다 10조원 증가했다. 상반기 월평균 ELS 발행금액은 약 2조7000억원으로 2020년, 2021년 대비 감소했지만 조기상환 금액 감소 추세가 더 가파르면서 잔액이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잔액이 증가한 상황에서 글로벌 주식시장이 급락하는 등 ELS에 비우호적으로 시장 상황이 전환된다면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현재 증권가가 공유하고 있는 우려다.

      증권사 리스크 담당 임원들 역시 파생상품 위험성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다. NH투자증권은 조기상환 가능성이 높고 운용 리스크가 적은 상품을 위주로 발행하고 보수적인 헤지 운용을 통해 손실을 최소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뒀다. 

      KB증권은 자체헤지 비중을 낮추는 방향으로 운용하고 있다. 자체헤지란 증권사가 직접 운용해 헤지 포지션을 취한다는 의미다. 자체헤지는 외국계 등 타사에 맡기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지만 손실이 확정될 경우 대규모 운용 손실을 떠안을 수 있어 리스크가 높다. 

      염홍선 KB증권 상무는 “헤지비용을 많이 쓰더라도 안전하게 가자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라며 “자체헤지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시장 자체가 H지수뿐만 아니라 유로스탁까지 다 같이 빠지고 있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상품 리스크는 지난 몇 년 간 ‘라임 사태’, ‘옵티머스 사태’ 등으로 증권업계에서 오랜 기간 회자되고 있는 테마다. 이에 내부통제 역시 증권사 리스크 부서가 빼놓지 않고 챙기는 이슈가 됐다. 

      안종균 미래에셋증권 부사장은 “리스크가 터진다고 할 때 손실규모로만 따지면 IB부서는 상당한 정도이고 채권 트레이딩은 운용 규모만 수십조원이기 때문에 시스템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큰 영향”이라며 “하지만 리테일 쪽에서는 사고 발생 빈도는 낮지만 한번 터지면 회사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피해가 발생한다. 이러한 이유로 시스템적 관리가 중요해서 개별 상품 승인은 리스크 관리 부서에서 모두 스크리닝 한다”라고 말했다. 

      영업부서와 충돌은 불가피…끊임없는 소통만이 살길

      증권사 리스크관리부서는 대규모 손실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한 ‘필수’ 부서이지만 종종 수익을 책임지는 IB 부서의 발목을 잡는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수익 규모에 따라 회사 내 생존 여부가 갈리는 IB 부서장들로서는 소싱한 딜마다 비토(거절)를 놓는 리스크관리부서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리스크관리부서가 증권사 내 한직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개별 딜(거래) 성과에 따라 엄청난 성과급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회사 내 입지가 크지도 못 했던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부분의 국내 증권사들은 리스크관리부서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 이에 증권사 리스크관리 임원들은 현업부서와 ‘소통’을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꼽았다. 필연적으로 이해상충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는 만큼 수시로 의견을 교환해 오해와 갈등이 빚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권사 내 리스크담당 임원을 이전에 현업 IB에서 수십년간 실무를 쌓아온 인물들을 발탁하는 경우도 많다. 리스크관리부서에서 전문성을 쌓았던 예전과는 달리 현업 IB 출신들이 리스크관리 임원을 맡아야 부서간 의견 조율이 원활히 이뤄진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실제로 안종균 미래에셋증권 부사장은 2007년부터 프로젝트금융2본부장, 투자심사본부장 등을 맡으며 부동산 IB 부문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최성준 신한금융투자 상무 역시 2011년부터 대기업 금융부장, GIB사업부장 등을 두루 역임한 정통 IB 출신이다. 김도식 NH투자증권 상무는 IB크레딧부장을 맡으며 IB 사업부 소속으로 전반적인 사전 심사를 맡아왔다. 

      안종균 미래에셋증권 부사장은 “평소 영업부서와 자리를 갖고 소통에 힘쓰는 데 많은 자원을 할애하고 있다”라며 “리스크관리 부서장들도 각각 대체투자 및 기업금융 출신들로 구성돼 현업부서 경험이 풍부하다. 매크로적인 공부를 통해 다양한 지식을 늘리는 점도 리스크관리의 필수 요건”이라고 말했다. 

      리스크관리부서 차원에서 영업부서와 타협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김도식 NH투자증권 상무는 “부임 후 가장 강조하는 것은 승인과 미승인의 이분법적인 심사를 하지 말고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의 리스크 보완책을 제시하자는 것”이라며 “이런 노력들이 심사 부서의 스탠스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더 세밀하고 정교하게 리스크를 관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