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 3개월째…시장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입력 2022.07.21 07:00
    시장주의 귀환 기대감 컸지만
    금감원장發 관치 움직임에 멈칫
    전 금융업계 돌며 영향력 보여줘
    금융시장 위축 파장이 기업에도
    투자 늘리려던 기업들은 눈치게임
    기업·금융은 파트너일까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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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현 시점에서만 보면 금융시장의 주인공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다. 취임한 지 한달이 조금 넘은 시간 동안 금융업계 릴레이 간담회를 진행하며 광폭 행보를 보였다. 윤석열 정부 출범 3개월을 통틀어 경제 파트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이복현 원장 외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정도였다.

      금융사들은 정권 교체와 함께 '시장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에 차있었다. 하지만 금감원장의 강력한 메시지들은 금융사를 넘어 시장 전체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가 '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투자계획을 잡아놨던 기업들도 눈치게임 중이다. 검사 출신 금감원장의 존재감이 각일될수록 시장의 불만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취임하자마자 은행, 보험사, 여신전문금융회사, 저축은행, 상호금융에 이어 외국계 금융회사 CEO들까지 일사천리로 만났다. 통상적으로 전임 금감원장들이 업무 파악을 마치고 취임 이후 몇 개월 뒤에 금융업계와 첫 소통에 나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빠른 편이다.

      만남 자체는 문제가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온 발언들은 강력했다.

      은행장들과의 만남에선 금리 인상 기조 속에서 은행들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해 지적했다. 이는 예대금리차를 좁히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원장은 직접 은행 지점을 방문해 대출 금리 인하를 종용하는 모양새를 취하기도 했다. 예·적금 금리 인상은 은행의 자금조달지수(KOFIX;코픽스)를 끌어올리고, 이는 다시 대출금리에 전가된다는 점에서 모순된 정책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보험사들을 만나선 자본확충 시에는 유상증자를 우선 고려해줄 것을 요청했다. 시장에선 사실상 비현실적인 압박이라고 평가한다. 현재 상장 보험사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4배 수준의 초 저평가 수준이라 주주에게 증자의 실익이 크지 않은데다, 자본건전성의 척도인 지급여력(RBC)비율 이슈는 새로운 회계ㆍ감독기준이 도입되면 해소될 이슈로 통한다. 보통주를 통한 자본확충은 주주가치 희석만 불러온다는 점에서 생뚱맞은 증자 리스크만 부각시킨 꼴이 됐다.

      그밖에도 여신전문금융회사, 저축은행, 상호금융 CEO들과의 간담회에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 대한 전수 조사 의지를 내비쳤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원자재 가격 상승 등 가뜩이나 개발 사업자의 비용 부담이 높아졌는데 자금 조달마저 어려워지면 향후 주택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외국계 금융회사 CEO들과의 만남으론 역차별 논란도 일으켰다. 외국계 금융회사 경우 영업 고충이 더 많을 거라며 금감원이 외국계 금융사의 자율과 창의가 발휘되도록 공정하고 투명한 영업 여건을 조성하고 규제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외국 자본의 유출은 충분히 염려가 된다. 하지만 국내 금융사는 규제 강화를, 외국계 금융사에는 규제 완화라는 오해를 줄 만한 시그널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금감원은 금융위원회 산하 기관으로 기존 정책과 제도가 잘 실천되는지 관리감독하는 기관이다. 금융위원장의 임명 공백이 길어지는 사이 대통령과 한솥밥을 먹던 '실세' 금감원장이 금융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내정됐지만 본의아니게 헤게모니는 여전히 금감원이 쥐고 있는 듯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시장주의'보다 '관치'에 가까운 그림이 자꾸 그려지고, 그것이 대통령이 '금융'을 대하는 인식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금감원 중심의 규제 일변도 스탠스는 단순히 금융사의 위축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들의 자금 경색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친기업 성향을 강조하긴 했지만 지금까진 '점검', '검사', '조사'가 주요 이슈라 할 수 있다.

      국내 10대 그룹은 삼성 450조원, SK 247조원 등 향후 5년간 1000조원이 넘는 투자 계획을 정권 교체에 맞춰 발표했지만 3개월도 안돼 모든 계획을 원점부터 다시 세울 분위기다. 최근 글로벌 경제 상황이 급변하면 확장 모드에서 디레버리징 모드로 전환해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국내 금융시장 위축은 기업의 전략 재조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각에선 윤 정부의 경제 정책 자체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기도 한다. 전 정권들이 내놨던 현실불가능한 경제 아젠다는 물론 문제지만, 현 정부는 '시장경제'라는 단어 외에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는지 전혀 감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몇몇 그룹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사면 여부에 따라 분위기 변화를 감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언급들을 내놓고 있다.

      대통령과 금융당국은 기업과 금융사를 경제활동의 파트너인지,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지 명확한 메시지를 던져야 할 때다. 후자라면 자율과 창의를 제공하길 꺼리게 되는, 관치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이런 와중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글로벌 금융 시장을 선도하는 BTS급 플레이어가 출현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장을 조성해야 한다"며 금융산업 규제 철폐를 강조했다. 뭔가 행보가 엇갈린 듯한 금감원과 금융위의 공존 여부를 지켜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