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잘 벌까" 아닌 "얼마나 덜 잃을까"…실적방어가 중요해질 어닝시즌
입력 2022.07.21 07:00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 대다수 산업 하반기 실적 전망 ‘흐림’
    ‘환율·금리·원자재·코로나’ 변수 산적한 항공·금융·IT·반도체는 비상
    올해 실적은 이미 판가름 난 수주산업, 바이오·자동차·배터리는 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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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상반기 실적 발표 시즌을 앞두고 기업들의 고민은 한가득이다. 금리 인상 속도가 굉장히 빠른데다, 환율과 원자재 가격은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재확산 조짐도 보이며 하반기 시장의 불확실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지금까지는 어떤 산업과 기업이 ‘얼마나 벌었냐’가 중요했다면 하반기엔 얼마나 ‘얼마나 덜 잃었냐’가 주가와 실적의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최근 OECD 국가 경제단체들은 올해 하반기 전반적인 경영환경에 대해 ‘좋음’으로 전망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했다. 지난해 60%에 비해 크게 하락한 수치다. 부정적으로 보는 비율은 지난해 28%에서 올해 31%로 증가했다. 이에 기업들도 높은 환율과 금리, 원자재 가격 등 거시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모습이다. 

      고금리·고환율에 코로나까지, 모든 악재가 겹친 ‘반도체·항공·금융·IT’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이 주력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상황은 얼어붙고 있다. IT 기기 출하량이 줄며 메모리 수요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진 영향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올해 PC·태블릿·스마트폰 출하량은 19억700만대로 전년 20억6500만대 대비 7.6%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물가상승과 고금리로 인한 가계의 실질 소득 감소 등에 IT 수요가 빠르게 준 탓이다.

      메모리 공급과잉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7월 들어 전방 고객사의 주문축소(오더컷)가 본격화됐다.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자 삼성전자는 이미지센서 전용 생산기지인 화성 S4 파운드리 생산량을 조절했고, SK하이닉스는 4조3000억원 규모의 청주공장 증설 결정을 보류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2분기 호실적을 발표하며 3분기 가이던스를 상향했지만, 국내 기업에 기대감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TSMC와 달리 국내 반도체 기업은 파운드리보다 메모리반도체 비중이 커 매크로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전대미문의 호황을 누려왔던 파운드리 공정 수요에 변곡점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PC·스마트폰 판매 부진 우려 속에 제조업체들이 재고 조정에 나설 경우 팬데믹이 불러온 오버부킹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 산업도 상황은 비슷하다. 금융정보분석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4대 금융지주는 약 9조원의 실적을 거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기록한 역대 최대치인 8조904억원을 웃도는 수치다. 

      하반기에 호실적이 이어지긴 어려워 보인다. 경기 둔화와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산업 환경이 비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다. 은행은 일반적으로 금리 상승의 최대 수혜 업종 중 하나지만 너무 빨리 금리가 오르면서 오히려 ‘악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상반기부터 가계대출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60조8000억원으로 전월보다 3000억원 늘었다. 이는 2004년 이후 가장 작은 증가 폭이다. 

      정부의 각종 규제 리스크도 금융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의 과도한 이자 장사를 비판하며 예대금리차 축소하라는 지침이 내렸다. 올해 9월 코로나 금융지원도 종료되는 만큼,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으라는 압박도 높아지고 있다. 대손충당금은 대출 채권 부실에 대비해 적립하는 돈으로 순이익에 영향을 미친다. 

      증권사들의 실적 전망은 더 부정적이다. 가파른 금리상승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대두되면 위험자산에 대한 회피 심리가 확산하고 있다. 증시 일평균거래대금은 작년 평균 대비 40% 가까이 줄어들며 증권사의 핵심 수익원인 브로커리지 수익 감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게다가 올해 현대엔지니어링, SK쉴더스 등 대형 IPO(기업공개) 빅딜이 취소 또는 연기되며 IB 부문 실적도 크게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다.

      금융감독당국의 규제 강화 분위기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증권사 부동산PF부서 관계자는 “금융감독원이 증권사들의 핵심 수익원인 부동산PF 쪽으로 감독을 강화하고 있어 부서 내에서도 크게 일을 벌이지 말자는 분위기”라며 “안 그래도 금리상승으로 조달 비용이 크게 상승하면서 선별적으로 딜을 보고 있는데, 금감원의 움직임에 맞물려 굉장히 보수적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 산업은 전망도 어려운 악조건 속에 놓여있다. 코로나 방역 규제가 완화되면서 여객 수요 회복을 기대했으나 다시 코로나 재확산 문제에 다시 발목이 잡힐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거기에 ‘고유가·고환율·고금리’ 3중고까지 겹치며 하반기 실적 둔화가 전망된다는 분석이다. 그간 여객 사업의 부진을 만회하던 화물운임마저 다시 낮아지고 있어 하반기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항공 담당 증권사 연구원은 “항공기 리스비나 유류비는 달러로 지불하기 때문에 1300원을 돌파한 환율이 부담이고, 여객 수요가 회복된다고 리스한 항공기에 지불하는 금리도 높아지면서 영업비용이 크게 증가했다”며 “이 비용을 항공권에 반영하며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있지만 항공권 가격도 이미 오를대로 오를만큼 수익성을 개선할 여지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 급등한 원자재 가격과 정부 정책 방향…호재와 악재가 혼재된 건설·조선업

      새 정부의 정책 수혜주로 꼽혔던 국내 건설사들의 상반기 성적은 기대에 못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급등한 원자재 가격에 분양·착공이 지연됐고 중대재해처벌법 등 정책적 요인까지 투자심리를 크게 위축시킨 영향이다. 

      하반기에도 건설산업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한국건설경영엽회는 올해 하반기 건설산업 전망을 엇갈리게 제시하며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진 분위기다. 상반기 실적을 발목 잡았던 원자재 가격이 고점을 지났다는 분석은 그나마 긍정적이다. 

      한 증권사의 건설 담당 연구원은 “주요 건축용 원자재 가격이 2분기 중 고점을 지난 것으로 보이고 건설사 투입 자재 가격이 후행적으로 반영하는 것을 감안하면 3분기쯤 건자재 투입 비용도 고점을 지날 것으로 보인다”며 “수주 산업 특성상 하반기 실적은 거의 정해져있기 때문에 지금 중요한 건 내년도 분양 물량이 어느 정도로 진행되는가”라고 말했다.

      높아지는 금리와 미분양, 착공, 매매지수 등 각종 부동산 시장 지표들은 비우호적인 환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긍정적인 분위기를 기대했던 새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실제로 자재비 가산제도 등 부동산 규제 완화 및 공급 확대 정책이 기대보다 못 미쳤다는 반응에 주가도 크게 떨어지기도 했다. 

      그나마 정비사업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하는 현대건설이나 GS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의 실적 방어가 예상된다. 상반기 다소 부진했던 해외수주도 유가상승을 기회삼아 중동지역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잇따라 수주하는 등 큰 반전을 기대하는 전망도 나온다.  

      조선주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수주 확대, 고유가 국면에서 상승세를 이어왔다. LNG선 발주는 상반기에만 100척을 넘으며 연간 기준으로도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을 국내 조선 3사가 수주해 흑자 전환 가능성이 제기됐다. 컨테이너선·정유운반선·가스선 업황도 견조하다.

      다만,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의 운임 영향으로 해운 지표들의 '피크아웃'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수주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사 조선 담당 연구원은 "최근 해운지표의 고점 여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며 "일부 조선사의 경우 러시아 맞춤 제작으로 계약을 맺었는데, 계약이 파기될 경우 다른 곳에 팔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밝혔다.

      외부 변수 크게 상관없이 하반기 전망 나쁘지 않은 바이오·자동차·배터리

      바이오산업은 글로벌 성장 둔화와 상관없이 소비되는 대표적인 업종으로 꼽힌다. 경기침체로 소비가 위축되더라도 필수 소비재인 의약품 지출액은 꾸준히 증가하는 특성을 띤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은 위탁생산(CMO) 사업이 메인이다 보니 원부자재 비용 대부분을 고객사에서 처리하고 있어서다. 환율 상승기에는 수출업종이 수혜를 받기 때문에 환차익을 통한 수익성 개선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같은 CMO 기업이더라도 옥석 가리기는 필요할 전망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도 같은 CMO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이 아스트라제네카와 노바백슨의 코로나 백신 위탁생산으로 편중된 매출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 올해 실적은 자체 개발한 코로나 백신 ‘스카이코비원’의 유럽 허가를 전제로 한 전망이라 불확실성도 높다.

      2차전지 산업의 경우, 실적은 하향됐지만 수급은 개선되고 있다. 글로벌 배터리 업황 회복과 더불어 하반기에는 국내 기업들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외국인과 기관도 2차전지 관련주를 집중 매수하고 있다. 지난 11일부터 18일까지 외국인 투자자는 LG에너지솔루션(740억원·3위)과 삼성SDI(440억원·5위) 등을 순매수했다. 기관 역시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520억원·2위)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270억원·4위) 등을 사들였다.

      장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실적시즌 시작과 함께 대장주 LG에너지솔루션의 보호예수 해제로 인한 주가 변동 리스크는 관리할 필요가 있다"면서 "LG에너지솔루션과 달리 단기 수급 부담에서 자유롭고 실적도 양호한 삼성SDI를 이달 선호종목으로 제시한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 등 자동차 기업들은 세계경제 침체에도 불구, 고급차 중심 판매 확대와 고환율 효과로 올해 2분기에 호실적을 냈을 거란 전망이다. 하반기에도 전망은 밝을 것으로 보인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자동차 반도체 수급 차질이 점진적으로 완화되고 있으며, 러시아·중국 시장을 제외한 글로벌 생산·출고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반도체 병목 해소도 예상보다 빠를 것으로 보인다. 

      장문수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회복 지연과 러시아 가동 중단, 중국 셧다운 영향에도 우호적 환율, 믹스 개선, 인센티브 하락으로 기대 이상의 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라며 "하반기 경기 침체 우려에도 여전히 수요는 견조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