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딩 난항에 빗발치는 흑자전환 요구까지…e커머스 벤처 '이합집산' 고민
입력 2022.07.25 07:00
    연속 펀딩 받던 e커머스 벤처기업들, 투자자 압박 부담 확대
    "흑자 내라" 요구에 비용 덜 드는 지분스왑 등 이합집산도
    지분스왑 통한 밸류업에 의문…"염가 지분 매각은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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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그간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 주목을 받아온 e커머스 벤처기업들이 펀딩에 난항을 겪으면서 고사 위기에 처한 분위기다. 한창 유동성이 풍부하던 지난 2020년부터 꾸준히 투자 유치를 받아왔던 커머스 플랫폼 기업들은 최근 들어 투자자들로부터 흑자전환 요구를 받기 시작하는 등 압박을 느끼고 있다.

      그 결과 지분교환(스왑)부터 단순 협력까지, 이합집산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지분스왑의 경우, 비즈니스모델(BM) 확장이 필요한 기업과, 밸류가 다소 꺾인 타 기업의 지분을 비교적 높은 가격으로 인수해 이득을 보려는 기업 양사 모두 필요한 것을 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합집산을 토대로 불린 몸값을 신뢰하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벤처투자 업계에 따르면 최근 1000억원가량의 펀딩을 연쇄적으로 유치하던 한 패션 플랫폼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력 구조조정을 감행 중이다. 노동법상 사유 없는 해고는 어려운 까닭에, 기존 직무와는 무관한 보직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인력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는 후문이다.

      벤처투자 풍년을 누렸던 것이 되레 발목을 잡은 모양새다. 최근 커머스 플랫폼 기업에 투자한 기관들은 이들에게 '흑자 전환'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쿠팡이 미국 증시에 상장할 때까지만 해도, 매출이 충분하다면 영업손실이 나더라도 상장하는 것이 어렵진 않았다. 그러나 올초부터 금리 인상 등으로 장세가 꺾이면서 '이익이 나지 않는 기업엔 투자가 꺼려진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커머스 플랫폼 기업들의 상황이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컬리 등의 사례만 보더라도, 손실이 나더라도 매출이 꽤 나오면 상장을 통한 투자금 회수가 가능했는데 이젠 어려워지다보니 투자자들의 요구사항도 무시할 수 없게 될 것"라며 "커머스 기업들은 계속해서 비용을 줄이고 흑자전환을 앞당길 방법을 고민하는 분위기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따른 이합집산 움직임도 분주하다. 협력을 통해 상생을 도모하려는 벤처기업들이 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지분스왑' 거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두 기업이 지분을 서로 교환하는 방식의 M&A로, 사업영역 확대를 통한 매출 증대가 목적일 것이란 분석이다. 이는 곧 밸류 상승으로도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비상장기업들의 시가총액이 전반적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직전 투자 단가로 지분을 교부받을 경우, 추가 수익을 거둘 가능성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패션 커머스 플랫폼 '브랜디'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인 '집꾸미기'와의 지분스왑 거래를 준비 중이다. 집꾸미기는 동종업계 경쟁사 '오늘의집'에 이어 인테리어 관련 플랫폼으로는 2위를 차지해왔다. 이번 인수는 브랜디의 사업영역 확대의 차원이라는 해석이 많다. 브랜디는 올해 4월에도 온라인 패션 플랫폼 '서울스토어'를 운영하는 디유닛을 인수해 상품 카테고리를 늘린 바 있다.

      그간 컬리도 기업 인수 전략으로 '지분스왑' 방식을 선호해왔다. 다만 지분스왑을 통한 인수 협상은 대체로 결렬로 마무리됐다는 전언이다. 이같은 컬리의 행보를 두고 "커머스 플랫폼 기업을 추가로 인수해 트래픽을 높여, 상장시 인정받길 원하는 기업가치 수준으로 밸류를 맞추려 한다", "돈을 들여 인수하는 것보단 주식 교환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협업을 통한 매출 증대 시도도 포착된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건기식에 이어 가구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상품 카테고리에 인테리어를 추가했다. 한 가정간편식(HMR) 플랫폼 기업도 서비스 측면에서 협력이 가능한 기업을 찾는 중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커머스 플랫폼들은 펀딩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이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협력 모색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한 건 사실이다"라며 "향후 지분스왑과 같이 바터거래(물물교환) 느낌의 사례들이 많이 나올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다만 지분스왑 방식의 인수를 통해 제고된 기업가치는 설득력이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평가다. 업계에 따르면 지분스왑 결정을 내린 한 기업의 경우, 합병에 따른 구조조정 우려로 내부적인 잡음이 일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합병 자체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을 비롯, 매출에 기반을 둔 주가매출액비율(PSR) 기반 밸류에이션에도 의구심이 짙게 깔린 상태인 점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유동성이 상당했을 때 투자를 연이어 받은 기업들은 향후에도 투자자들로부터의 압박을 더 견뎌내야할 것"이라며 "지분스왑의 경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기업가치를 제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매출처를 빼앗기고 염가에 지분을 넘기는 측면도 있음을 간과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