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株 배신'에 잇따라 체면 구긴 소프트뱅크
입력 2022.07.27 07:00
    작년 60조 가치 투자한 클라나, 올해 기업가치 7분의 1로 급락
    잇따른 테크기업 부실에 ‘세계 최대 벤처투자 펀드’ 위상 무색
    소프트뱅크 행보 위축…세계 벤처 부진 흐름 국내서도 재현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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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스웨덴의 핀테크 기업 클라나(Klarna)가 시장의 화제였다. 2005년 설립된 클라나는 Buy Now, Pay Later(선구매 후 결제) 서비스를 펼치며 소위 ‘지름신 핀테크’로 각광받았는데 정작 눈길을 모은 건 급격한 기업가치 하락이었다. 클라나는 이달 8억달러 투자를 유치하며 67억달러(약 8조8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작년 456억달러(약 60조원)던 기업가치가 1년 새 7분의 1로 급락했다.

      작년 클라나 투자를 주도한 소프트뱅크(비전펀드II)의 입지가 난처해졌다. 특히 2019년 클라나 가치가 50억달러일 때 투자했다가 올해 다시 투자자로 나선 세쿼이어캐피탈과도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테크 거품 붕괴, 시장금리와 연체율 상승, 소비 위축 등 악재가 겹친 영향이 컸다. 유사 기업인 어펌(Affirm)의 주가도 하락했다. 시장에선 “소프트뱅크의 투자 역사상 가장 실패한 포트폴리오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출범 초기부터 그 막대한 규모와 투자 적극성으로 시장의 이목을 모았다. 초기 기업의 가치를 급격히 키우는 데 일조했는데 실제 회수 성과는 처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손정의 회장의 ‘초기 기업을 알아보는 혜안’이 여러 차례 시험대에 올랐다.

      글로벌 오피스 공유 기업 위워크(WeWork)는 2017년 이후 비전펀드로부터 수십억 달러 투자금을 유치하며 기업 가치가 급등했지만 2019년 이후 각종 설화에 시달렸다. 기업의 성장성에 의문이 붙었고, 경영진의 윤리 문제도 불거졌다. 시장이 위워크에 대한 관심을 거두며 상장이 무산됐고, 작년에야 스팩 합병을 통해 증시에 입성했다.

      독일 핀테크 기업 와이어카드(Wirecard)는 2020년 조단위 회계부정 이슈가 불거지며 논란이 됐다. 소프트뱅크는 그 전해 와이어카드에 10억달러를 투자하며 전략적 제휴를 맺었는데, 회사가 파산보호를 신청해 대규모 손실을 입게 됐다. 2015년 소프트뱅크가 15억달러를 투자한 영국 그린실캐피탈(Greensill Capital)도 아픈 손가락이다. 이 회사는 단기 대출 서비스를 하는 핀테크인데 돈을 빌린 고객사가 상환을 거부하며 위기를 겪었고 결국 지난해 파산신청을 했다.

      작년 나스닥에 상장한 자이머젠(Zymergen)은 기술적인 문제로 핵심 제품 출시를 미루고, 향후 매출 규모도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 상장 후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핵심 전망을 대거 바꾸자 시장은 의구심을 품었고 주가가 폭락했다. 주요 투자자인 소프트뱅크도 피해를 입었다.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은 작년 뉴욕증시에 상장했지만 이후 중국 당국의 빅테크 규제로 큰 타격을 입었고 결국 상장폐지했다. 소프트뱅크는 디디추싱 투자로만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봤다. ‘손정의 신화’의 상징과도 같은 알리바바, 바이트댄스(틱톡)도 중국의 제재를 피하지 못했다. 소프트뱅크가 높은 가치에 투자한 기업들이 '테크 버블 붕괴’의 충격파를 먼저 맞았다. 작년말 도어대시(DoorDash)가 위기의 소프트뱅크에 구세주가 됐는데 올해는 이런 호재를 찾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세계 최대의 테크 투자 펀드’의 부진에 소프트뱅크그룹의 실적도 시원찮다. 그룹은 2020 회계연도에 4조9880억엔의 흑자를 거뒀지만 작년엔 창사 이래 최대인 1조7080억엔(약 16조원)의 적자를 냈다. 주가도 힘을 쓰지 못하며 손정의 회장이 쓰는 반성문은 점점 늘고 있다. 당분간 부진 탈출의 전기를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많다.

      소프트뱅크가 큰 성과를 낸 투자는 셀 수 없고, 부진한 투자는 운이 따르지 않았던 면도 있다. 미-중 갈등의 장기화, 우크라이나 사태, 시장금리 급등 등은 개별 투자회사가 정확히 예측하거나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소프트뱅크가 막대한 돈에 가린 위험 요소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쿠팡(이커머스), 아이유노미디어(자막 더빙), 뤼이드(교육용 AI), 야놀자(숙박예약) 등 한국 포트폴리오에서도 문제가 발생하지 말란 법이 없다.

      어찌됐든 소프트뱅크의 부진도 글로벌 테크 투자 시장의 한 흐름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PDR(Price to Dream Ratio)로 대변된 미래 가치보다 결국 이익을 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테크 열풍’이 예상보다 빨리 끝난 분위기다. 언제 벤처 시장에 온기가 돌지 예측하기 어렵다. 손정의 회장은 작년 실적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1년간 예정했던 스타트업 투자를 작년의 25~50%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내 벤처 투자 시장도 소프트뱅크의 부진, 전세계적인 투심 위축 흐름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올해 상반기 여기어때, 오아시스, 메가존클라우드 등 5곳의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이 탄생했지만 벤처 시장 전반에 온기가 돌고 있다 보긴 어렵다. 토스(핀테크), 발란(명품 플랫폼), 부릉(물류 플랫폼) 등 추가 투자 유치에 애를 먹거나 가치 눈높이를 낮추는 사례가 많아졌다. 새 정부 들어 모태펀드 축소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민간의 벤처투자 역량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