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 외면하고, 돈 빌려서 출자?...LP 자금난 지속에 어수선한 PEF 시장
입력 2022.07.28 07:00
    대출 규제·금리 상승 여파 속 PEF 출자 시장 위축
    자금난에 출자 확약 해주고도 머뭇거리는 출자자들
    빚내서 출자?...일부 LP 차입·사채 발행 가능성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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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기관투자자(LP)들의 자금 경색이 장기화하고 있다. 공제회 등은 회원이나 고객들의 자금 요청에 대응하느라, 캐피탈사 등은 싸늘해진 투심에 시장 조달이 막혀 애를 먹고 있다. 사모펀드(PEF)에  자금을 주기 어렵다보니 출자 확약을 해둔 거래가 무산되길 바라는 분위기조차 느껴진다. 일부 LP는 부족한 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빌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올해는 거의 대부분의 LP들이 금고를 걸어잠갔다. 연기금·공제회는 작년부터 가계대출 규제 여파로 회원들의 자금 대여 수요가 몰리며 ‘일시적 부도’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시장금리가 급격히 오르는 가운데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은 시장 눈치를 살피거나 건전성을 관리하느라 PEF 출자를 머뭇거렸다. 캐피탈사는 아예 시장 조달이 막히며 투자가 중단됐다.

      PEF 운용사(GP)의 자금모집 부담은 커졌다. 돈을 주겠다는 곳이 드무니 소규모 출자 콘테스트도 북새통이다. 프로젝트펀드 운용사들은 더 고민이 많다. 유동성이 넘칠 때는 LP들에 구두로 출자 의사를 묻거나 가벼운 수준의 투자의향서(LOI)를 받아두는 정도로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LOI보다 구속력이 높은 출자확약서(LOC)를 받아두고도 돈이 들어올지 확신하기 어렵다.

      LOC는 보통 유효기간이 3~6개월이다. 어떤 이유로 그 안에 거래가 이뤄지지 않으면 출자하지 않아도 된다. 예전같으면 합리적인 수준에서 기한을 늘려줬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일부 캐피탈사에선 차일피일 시간을 끌다 없던 일이 되길 바라는 기류도 있다. LP가 신의를 저버렸다기 보다는 그만큼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이다. 이러니 LOC로는 부족하고 PEF 정관에 출자자로 명기하고 자금도 미리 받아둬야 안심이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PEF에서 PEF로 포트폴리오가 이전되는 세컨더리 거래는 자금을 모으기 더 어렵다. LP들은 좋은 조건에 다음 주인을 찾았다는 점에는 만족하지만, 기껏 회수해놓고 다시 동일 건에 출자하는 것은 꺼리고 있다. 국내 시장은 출자자 풀(Pool)이 넓지 않다 보니 새로 자산을 받아가는 GP의 활동 범위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GP도 LP도 투자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전략적투자자(SI)와의 연합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PEF 출자 대신 사모대출펀드(PDF), 채권 등에 눈을 돌리는 LP도 많다.

      LP들은 이미 약정한 PEF에는 출자하지 않을 수 없다. 대신 LP들은 운용사에 되도록 거래 시기를 늦춰 자금요청(Capital call)을 뒤로 미뤄달라거나, 투자목적회사(SPC)의 차입한도(자기자본 300% 이내)를 최대한 활용하라는 요청을 하기도 한다. 지금 같은 금리 상승기엔 지분투자(Equity)의 매력도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LP들이 요구하는 내부수익률(IRR) 기준은 높아지고 있다.

      한 PEF 운용사 대표는 “최근 PEF 자금 시장이 위축되면서 수백억원 수준의 자금 출자 여력이 있는 곳에는 GP들의 접촉이 이어지고 있다”며 “시장 금리가 상승하고 수익률은 박해지는 상황에서 LP들이 위험을 질 이유가 없기 때문에 GP들의 자금 모집 위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PEF의 젖줄인 공제회들의 자금 상황은 특히 좋지 않다. 다양한 자금 대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작년 말부터 회원들의 자금 요청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공제회 자금은 금융권 차입 한도에 산입되지 않고, 금융사보다 차입 금리도 낮다 보니 수요가 많다. 최근 과학기술인공제회가 핵심출자자(앵커 LP) 역할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아직 규모가 크지 않고, 자산이 가장 가파르게 성장한 노란우산공제는 대체투자에 다소 보수적인 모습이다.

      공제회 중 가장 규모가 큰 교직원공제회도 자금 고갈에 허덕이고 있다. 올해 국내 벤처캐피탈(VC) 블라인드펀드 운용사 콘테스트, 대형 PEF 운용사에 대한 수시출자를 진행했지만 그 외에 개별 프로젝트펀드 출자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일부 운용사들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좋은 투자건’을 계속 제안하겠다는 분위기다. 행정공제회나 군인공제회 등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존에 출자 약정해 둔 자금은 줘야 하는데 당장 곳간이 비어가는 일부 LP가 자본시장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른 데서 돈을 빌리거나 회사채, 기업어음(CP) 등을 발행하는 식이다. PEF에 돈을 주기 위해 빚을 내는 것이 썩 달갑진 않을 수 있지만 사정이 더 급해지면 달리 방도가 없다. 공제회들은 관련법상 정부의 지원가능성이 크고, 독점적이고 안정적인 사업기반을 갖고 있어 좋은 조건에 자금을 빌릴 수 있다. CP 발행 잔액(21일 기준)이 7000억원에 이르는 군인공제회의 단기신용등급은 A1이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레버리지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공제회 조달금리가 회원들보다 낮을 테니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앞으로는 쓸 수도 있다”며 “금융권에서 차입을 하거나 채권을 발행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