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베어마켓랠리 끝났다...업황 안갯속 멀어진 '8만 전자'
입력 2022.08.10 16:22
    마이크론 매출 가이던스 '쇼크'에 美필반지수 급락
    지난 한 달간 디램 가격 하락에도 국내 반도체주 상승
    우려 타고 오른 전형적인 '베어마켓 랠리' 이제 끝나
    재고 감소ㆍ투자계획 확인되는 겨울까진 박스권 전망
    • 지난 한 달간 DDR4 8기가바이트(Gb) 디램(DRAM) 가격은 11% 하락했다. 그러나 이 기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약 10% 가량 상승했다. 업황 둔화에 대한 우려 속에서도 인플레이션 피크아웃(고점 뒤 하락) 기대에 따른 위험자산 선호 현상, 환율에 따른 이익과 중국 IT 소비 증가 등 호재를 타고 주요 반도체주 주가는 스물스물 올랐다.

      10일을 기점으로 이런 반도체 '베어마켓 랠리'는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핸드폰, 컴퓨터는 물론 믿었던 서버향 수요까지도 인플레이션 속에서 파괴됐음이 확인된 것이다. 반도체 구매 업체들의 재고는 2년래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개인투자자들이 고대하는 '8만 전자'(삼성전자 주가 8만원), '14만 닉스'(SK하이닉스 주가 14만원)가 오려면 최소한 올 겨울은 버텨야 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10일 삼성전자 주가는 전일 대비 1.5%, SK하이닉스 주가는 3.5% 하락 마감했다. 전일 반도체 업황을 반영하는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4.6% 급락하며 예상된 결과였다는 평가다. 현지시간 9일 미국의 대표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이 실망스러운 실망스러운 실적 전망치(가이던스)를 내놓으며 주가가 급락했다.

      이날 마크 머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는 올해 6~8월 매출 전망치를 72억달러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 분기 매출액 86억달러는 물론, 기존 매출액 컨센서스였던 91억달러를 대폭 하회하는 수준이었다. 매출 감소폭 전망치가 시장 예상보다 17%나 낮다는 것은, 반도체 업황 둔화가 매출처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다는 방증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대해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상반기 메모리 수요가 견조했던 것에는 사실상 적정 수요 이외에 추가 재고확보 수요가 더해졌던 것이라는 의구심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수요 둔화와 재고 조정의 이중고가 메모리 섹터에서 예상보다 더 광범위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앞서 하루 전인 8일엔 엔비디아 역시 매출액 가이던스를 크게 낮췄다. 24일 본 실적발표를 앞두고 5월말 81억달러로 제시했던 이번 분기 매출액 전망치를 67억달러로 17% 낮춘 것이다. 미국 낸드플래시업체 웨스턴디지털(WDC)역시 지난 5일 3분기 매출 가이던스를 2분기 실적 대비 18% 낮은 37억달러로 제시했다.

      반도체 업황에 대한 우려는 이미 지난 5월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구매력 감소에다 PCㆍ핸드폰 등 세트 기기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견조하게 유지됐고, 반도체 현물(spot) 가격 역시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했다.

      오히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원달러환율이 오르며 원화 환산 실적이 더 좋아질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중국 내 봉쇄가 하나 둘 해제되며 6월부터 중국 IT 수요가 살아난 것도 가격을 뒷받침했다. 예상보다 수요가 좋다는 논리가 힘을 얻었고, 우려를 타고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 주가는 날아올랐다. 여기에 힘입어 코스피지수 역시 2500선을 탈환했다.

      마이크론의 매출 가이던스 수정은 이런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앞으로는 비정상적으로 유지되던 반도체 업체에 대한 실적 전망치 조정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특히 올해 4분기에는 디램 가격이 연간 49% 하락한 2019년 수준의 실적 쇼크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4분기를 지나며 반도체 수요처들의 재고가 어느정도 소진되면 업황은 반등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정치적 이슈가 새로 등장하며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현지시간 9일 총 2800억달러(약 370조원)을 투입해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을 재구축하는 '반도체 산업 육성법'에 서명했다. 한국ㆍ일본ㆍ대만과 '칩4'라고 불리는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를 구성해 반도체 공급망을 구성하는 정책도 추진 중이다.

      법안에 따라 공급될 520억달러(68조원) 규모 반도체 지원금 중 절반이 넘는 390억달러(51조원)이 미국 내 반도체 시설 건립 지원에 쓰인다. 텍사스주를 위시한 주요 반도체 단지에 새로운 공장을 유치하는 것이 법안의 핵심 목적 중 하나로 풀이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반도체 공급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는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의 마진 회복에 악영향을 주게 될 전망이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지금은 반도체 업황 하락폭이 가속화하는 단계고, 지난달의 상승은 전형적인 베어마켓 랠리였다"라며 "반도체 업체들의 향후 설비 투자 계획이 뚜렷해지고 반도체 고객사들의 재고 감소가 확인되는 올 겨울까진 반도체주 주가는 좁은 박스권에서 단기 등락을 거듭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