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부담, 수장 교체...어수선한 글로벌 PE, 한국 투자도 '신중 모드'
입력 2022.08.12 07:00
    글로벌 PE들, 금리 상승 부담에 투자도 회수도 어려워
    변동성 큰 한국도 마찬가지…본사서 ‘투자 자체’ 지침도
    칼라일, 이규성 CEO 중도 하차…한국 전략 수정 가능성
    확실하거나 전략적 투자만…줄선 대형 거래 영향 불가피
    •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한국에서 신중한 투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시장금리가 빠르게 올라 이익을 내기 힘들어지자 글로벌 본사가 보수적인 시각으로 돌아섰고 한국 내 투자 집행 난이도 역시 높아졌다. 한국계 수장이 떠난 칼라일그룹은 한국 투자 전략이 바뀔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당분간 성장성이 확실하거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래가 아니라면 관망하자는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글로벌 PEF 시장은 전세계적인 금리 인상과 금융시장 불안정 여파로 작년 대비 주춤하다. 글로벌 회계·컨설팅사 EY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PEF가 발표한 거래 규모는 작년 동기 대비 18% 감소했다. 작년 매달 평균 70건이던 1억달러 이상 규모 거래는 상반기 매달 53건으로 줄었다. 미국보다 시장 변동성이 컸던 한국 내 투자 행보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PEF가 국내 PEF의 ‘개점휴업’ 상황을 틈타기 쉽지 않다는 평가다.

      KKR은 상반기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의 산업가스 설비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으나 계약을 맺지 못했다. 인프라펀드를 활용하고 차입도 일으키려 했지만 시장금리가 급격히 오르며 수익 목표치를 달성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매각자 측에 가격 조정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KKR은 2조4000억원 규모 SK E&S 우선주 투자 때도 5000억원을 변동금리로 빌려 이자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블랙스톤은 상반기 한국법인을 새로 출범하며 한국 시장 확대를 예고했다. 조단위 대형 거래의 후보로 빠지지 않고 거론되고 있지만 연내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한국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자 본사에서 하반기에는 무리해서 투자에 나서지 말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스톤은 1분기 '역사상' 손꼽히는 이익을 거뒀고 펀드 자금 모집도 순항하고 있다. 그러나 2분기엔 순손실을 냈고, 기업투자도 감소세로 전환했다.

      TPG도 큰손으로서 꾸준히 대형 M&A 거래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한국에선 경쟁사들보다 먼저 시리즈 후반 투자나 프리 IPO(상장전 투자유치)서 성과를 냈으나 최근엔 잠잠하다. 카카오모빌리티 경영권 매각 논란으로 다른 데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카카오뱅크 리파이낸싱에 참여한 금융사들은 금리 상승과 주가 하락으로 고심하고 있다.

      한 글로벌 PEF 운용사 임원은 "작년엔 꿈을 보고 투자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면 올해는 꿈을 실현할 초기 증거라도 가져오라는 기류가 강해졌다"며 "자금 조달 비용이 오르며 투자가 어려워진 것은 물론 회수 장벽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지난 2년여 한국 시장에서 가장 활발했던 칼라일그룹은 최근 이규성 최고경영자(CEO) 중도 사임이라는 변수를 맞닥뜨렸다. 이 CEO는 최근까지도 투자를 적극 챙겼다. 때문에 오래 전부터 계획했다기 보다는 처우 문제로 갈등을 빚자 전격적으로 사의를 밝혔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CEO는 현대글로비스와 SK온 등 한국 기업 투자 거래를 적극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적어도 한국 투자에 유리하지는 않을 것이란 평가다. 칼라일이 LX그룹의 매그나칩반도체 인수에 힘을 보탤 가능성도 희박해졌다.

      이 외에 앵커에쿼티파트너스도 한국 시장 투자 자제 기조로 돌아섰다. 마켓컬리 회수가 여전히 불투명하고 티몬 회수 숙제도 풀어야 한다. 최근 투자 제안을 반려하거나, 검토하다 중간에 멈추는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출자자(LP) 중에선 성장기업 소수지분 투자에 힘을 싣던 싱가포르투자청(GIC)도 상반기 말부터 한국 투자 중단 의사를 밝혔다.

      국내 조단위 대형 거래의 향방은 불투명해질 전망이다. 수조원대 몸값이 거론되는 거래들이 쌓이고 있는데 이를 감수할 곳은 대기업 전략적투자자(SI)나 글로벌 PEF 정도다. 글로벌 PEF들이 적극 움직이지 않으면 거래 성사는 커녕 당장의 흥행도 자신하기 어렵다.

      일부 한국 사무소에선 본사 투자심의위원회(IC)를 넘기 어려운 점을 알면서도 ‘일을 하지는 않을 수 없으니’ 안건을 올리기도 한다. 브룩필드자산운용,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EMP벨스타 등이 한국 투자에 적극적이지만 정통 PEF보다는 크레딧, 실물자산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 메디트 등은 누구나 좋은 회사라고 인정하지만 희망 몸값이 높다는 평가도 공통적이다. 금리 인상기 PEF가 비싸게 자금을 조달해 얼마나 남길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지분(Equity) 투자자는 담보를 쥐고 정해진 금리를 챙기면 되는 금융사와 처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M&A 승자가 되더라도 한해 두해 지날수록 회수 몸값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받아줄 수 있는 PEF의 수는 줄어든다. SK온 프리 IPO는 달러 강세 호재 속에서도 거래 합의가 늦어졌다. 전기차 시장 불확실성이 커졌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글로벌 공급망이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 됐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일부 글로벌 PEF 본사에선 정말 유망한 회사거나 전략적 판단에 따라 투자해야 하는 곳 아니면 관망하자는 분위기"라며 "한국 사무소에선 국내 PEF가 개점 휴업 상태라 경쟁이 치열하지 않고 매도자의 눈높이가 내려오고 있다며 본사 설득 논리를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