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소프트뱅크 같은 '친절한' 실적발표회 볼 수 있을까
입력 2022.08.17 07:00
    취재노트
    • 2분기 실적발표 시즌도 종반부에 이르렀다. 국제 정세와 경기에 큰 영향을 받은 시기인만큼 성적표도 그에 따라 희비가 갈리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선 어느 때보다 기업들이 내놓는 자신들의 실적 분석과 향후 사업 전망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공개 실적발표회, 컨퍼런스콜은 이런 갈증을 풀어주기엔 한없이 모자라 보인다.

      이런 와중에 눈에 띄는 실적발표회와 기자회견이 있었다. 국내 상장사들은 아니다. 쿠팡과 소프트뱅크 얘기다.

      쿠팡은  2분기에 역대 최대 매출 기록을 또 한번 냈고, 영업적자도 크게 줄였다. 사실상 '어닝 서프라이즈’라는 평가와 함께 흑자 기업이 될 준비가 됐다는 자평도 내놨다. 쿠팡의 실적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Earnings Call Script’, 실적발표 후 컨퍼런스콜에서 나온 얘기들을 ‘원고’로 만들어 제공한다는 점이다.

      스크립트를 보면 김범석 쿠팡 의장은 한국 이커머스 시장과 쿠팡의 성장세, 로켓와우 투자 계획 등을, 거라브 아난드(Gaurav Anand)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당초 목표치와 이번 실적 발표 후 목표 변경 등 세부적인 재무 상태와 전망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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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Q 2022 Coupang Earnings Call Script 중에서 발췌(출처 : 쿠팡)

      자신감이 넘치는 내용들이기에 차후 검증은 필요하다. 다만 회사가 앞으로 목표를 현실화할 수 있을지, 그에 따라 주가도 상승할 수 있을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투자자들이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문자로 기록해 남겼다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최악의 2분기 실적을 기록한 소프트뱅크그룹은 손정의 회장의 기자회견이 화제였다. 일본 전국시대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케다 신겐에게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대패한 뒤 패배의 굴욕을 잊지 않기 위해 자신을 그린 그림을 등장시킨 것이 하이라이트였다. “지금 심경이 이 그림 같다”고 한, 말 그대로 반성문이었다.

      손 의장은 또 ‘극적’으로 떨어진 비전펀드의 수익률 그래프를 보여주면서 “이전 연도의 이익을 모두 토해냈다”, “작년에 큰 이익을 냈을 때 제일 잘난 줄 알았던 게 지금 굉장히 부끄럽다” 등 국내 기업들 실적발표회에선 상상도 못할 얘기들을 서슴없이 꺼냈다.

      극단적인 것처럼 보이는 손 의장의 발언은 투자자 입장에선 한 편으론 실망스럽겠지만, 한 편으론 또 다른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반성을 했으니 앞으론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다.

      국내 컨퍼런스콜을 보자. 한국을 대표하는 4대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을 다 접해보지만 신선함과 기대감을 느끼기 어렵다. ‘해야 하는 것이니 한다’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투자자들의 질문에 컨퍼런스콜에 참석한 CEO와 CFO, 담당 임원들의 발언은 대본을 보고 읽는 것처럼 문어체로 답변한다. 사업 전망에 대한 질문을 하면 “민감한 내용이라 얘기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대부분이고 재무 전망을 물어보면 쿠팡처럼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는 데 머뭇거린다.

      회사 홈페이지의 투자자 정보로 들어가면 실적발표 PDF 파일이 대부분이고 컨퍼런스콜을 재청취할 수 있는 곳도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 PDF 파일을 근거로 한 보도자료를 읽는 것이 대부분이고 Q&A에 나온 내용을 따로 스크립트화 해서 보여주는 것은 거의 없다. 글로벌 기업들이라고 불리는 곳들이 그러니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다. 컨퍼런스콜 스크립트가 없는 건 ‘적을 만한 내용’, ‘판단할 만한 근거’가 없거나 추후에 책임져야 할 사안을 문자로 남기길 원치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투자자보다 오너 경영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재벌 기업의 한계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국내 몇몇 기업들도 컨퍼런스콜 스크립트를 내놓으며 주주친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CFO가 바뀌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등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국내 기업들은 너도나도 ESG위원회를 설치하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여기엔 주주친화적 정책도 포함된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기 위해 보다 친절한 실적발표회를 가질 생각이 없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