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 이재용 부회장이 서둘러 가야할 곳은 미국일까, 세탁기 공장일까
입력 2022.08.19 07:00|수정 2022.08.19 08:50
    Invest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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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후 공개적인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경기도 기흥 반도체 사업장에 들어서는 연구개발(R&D) 센터 착공식에 참석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전운이 돌고 있는 만큼 각국 정부와 국내외 플레이어들에게 던지는 메시지 의미가 강하다.

      다시 경영에 복귀하는 이재용 부회장은 ‘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업인들의 활발한 경영 활동’이라는 사면 배경에 걸맞는 활동을 보여줘야 한다. 이 부회장도 "앞으로 더욱 열심히 뛰어서 기업인의 책무와 소임을 다하겠다"며 "지속적인 투자와 청년 일자리 창출로 경제에 힘을 보태고,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정부의 배려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우선 대외 활동의 폭이 커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재계에선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고 있는 제2 파운드리 공장 착공식 참석, 공급망 논의를 위한 일본 방문 등이 거론된다. ‘칩4’로 일컬어지는 미국 주도의 반도체 동맹 참여 가능성과 함께 글로벌 대형 M&A에 대한 기대감도 다시 커졌다. 결국 이 부회장이 잘 할 수 있는, 그래서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미국 등 글로벌 행보 가속화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드럼세탁기 폭발 얘기다. (큰 일을 하셔야 하는)이재용 부회장에겐 ‘격’이 안맞는 이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부회장이 사소하게 볼 일만도 아니다.

      최근 삼성전자 그랑데 세탁기의 강화 유리가 폭발했다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지난달부터 보도된 것만 해도 여러 건이다. 세탁기의 깨진 유리가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고, '기술'의 삼성전자 명성도 깨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드럼세탁기 일부 제품에서 강화유리 이탈 현상을 확인했다면서 무상으로 문 교체 서비스를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리콜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6년 미국에서 세탁기에 대해 대규모 리콜을 진행한 적이 있다. 국내 소비자들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모른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세탁기를 두고만 봐야 하는 상황이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이어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기술표준원은 기업에 리콜 명령까지 내릴 수 있다.(삼성전자는 18일 삼성전자서비스 공식 홈페이지 등에 유리문 깨짐 현상으로 인한 공식 사과와 드럼세탁기 무상 수리 관련 안내문을 게재했다)

      가뜩이나 삼성전자는 갤럭시 S22에 장착한 게임 최적화 서비스 GOS(Game Optimizing Service) 사태로 홍역을 치르며 기술력에 대한 의혹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GOS는 게임을 실행할 때 기기에 열이 발생하면 성능을 조절해 발열을 낮추는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삼성은 열이 발생하면 스마트폰의 성능을 최대 60%까지 제한하도록 하고 이 기능의 사용 여부를 고객이 고를 수 없도록 했다. 고객의 의지와 상관없이 GOS가 실행돼 고사양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해도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고객들은 항의했다. 삼성은 GOS 실행 여부를 고객이 선택할 수 있게 바꿨고 3월 주주총회에서는 한종희 부회장이 GOS 사태와 관련해 주주들에게 사과했다. 

      이쯤되면 다시 끄집어 내는 얘기가 좀 지겨울 수도 있지만 1995년에 있었던 애니콜 화형식이다. 당시 삼성의 휴대폰 애니콜의 불량률은 11%를 넘어섰다. 이때 고(故) 이건희 회장은 화형식을 선택했다. 구미공장 운동장에 애니콜 15만대와 팩시밀리 등 5백억원어치를 해머로 부수고 불을 질렀다. 삼성전자가 소비자들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한 비싼 ‘대가’였다.

      이 부회장이 자리를 비운 동안에는 삼성전자 앞에 붙어있던 ‘기술력’이라는 단어가 서서히 퇴색된 느낌이 없지 않다. 그 과정에서 어느 하나 자발적으로 나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 이도 딱히 안 보인다.

      바깥에서 다가오는 큰 펀치는 눈에 보이지만 안에서 만들어진 작은 균열은 의식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치 하인리히 법칙 같아서 제 때 균열을 메꾸지 않으면 상처는 순식간에 벌어지고 이를 해결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이 부회장 입장에선 눈 앞에 놓인, 압도적으로 커보이는 악재들을 빨리 처리해야 하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안방의 작은 균열들을 들여다 봐야 한다. 이제 경영 일선에 복귀한만큼 소비자들의 불안과 불만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이벤트가 필요해 보인다. 그 시기에 만들어진 제품에 대한 전면 리콜도 있을테고, 생산 공장을 직접 찾아가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과거 아버지의 화형식이 '쇼'처럼 보이겠지만 그런 '쇼'가 이 부회장이 다시 경영 일선에 나서는 지금 더 잘 먹힐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