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위기에 '가성비' 빛 발한 K-방산…수출 증대 위한 다음 전략은?
입력 2022.08.25 07:00
    국내 방산업체, 폴란드와 20조원 수출계약…역대 최대 규모
    K2·K9·FA-50 등 대표적 방산제품…"가성비 앞세운 경쟁력"
    사업구조부터 지배구조 개편까지 퀀텀 점프 나서는 기업들
    신용등급 상향 조정은 아직…수출 트랙레코드 더 쌓아야
    방산 수출이 곧 외교·안보력 강화…국가별 신용도 다양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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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2022년은 대한민국 방위산업(방산)에서 역사적인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내 주요 방산업체들이 19조원(약 145억 달러) 이상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무기 수출을 성사하면서 올해 방산 수출액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의 선전을 가성비에만 기댈 순 없다. 완제품이 아닌 부품, 기술 등 전방위적인 수출 전략을 세우는 동시에, 방산 수출용 파이낸싱 지원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방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화디펜스와 한국항공우주(KAI), 현대로템은 폴란드 정부와 각각 K9 자주포, FA-50 전투기, K2 전차 공급 계약을 맺었다. 계약 규모는 무려 148억 달러(약 19조원)에 달한다. 이는 최근 4년 치 우리나라 방산 수출액을 모두 합한 규모(161억 달러)와 비슷한 수준이다. 

      올해 들어서 누적된 방산수출액은 25조원으로, 사상 최대치였던 지난해 수출 실적인 90억 달러(9조5000억원)를 크게 넘어선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의 방산 수출 점유율은 8위다. 수출증가율은 최근 5년간 177%나 급성장해 무기 수출 증가율은 가장 높았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는 방산 수출 세계 5위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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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주 잔고가 많이 증가한 배경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글로벌 지정학적 위기로 늘어난 방산 수요다. 게다가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의 군사적 충돌이 고조되는 대외환경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세계 국방비 지출은 사상 처음으로 2조 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방산업계에서는 국내 방산 무기의 경쟁력은 '가성비'에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방산 기술 경쟁력은 미국 대비 80~90% 수준인데, 가격은 크게 저렴하다. 미국의 대표 방산 무기인 에이브람스 전차 대당 가격은 110억원인데, 국내 K2 전차는 대당 80억원 수준이다. 글로벌 방산 1위 록히드마틴의 전투기 유지비용은 약 2000억원인데, KAI 전투기는 1000억원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주요 방산기업들도 내수가 아닌 수출 증대를 위한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한화그룹이 대표적이다. 계열사별로 쪼개져 있는 방산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산하로 모으는 것이 골자다. 최근에는 대우조선해양 방산 부문 인수설까지 제기된 바 있다. 

      방산 담당의 증권사 연구원은 "내수시장만 본다면 합병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게 큰 의미가 없는데, 수출은 무기 라인업을 다양하게 하면 시너지가 나오게 된다"며 "이번 폴란드 수주도 여러 무기를 한꺼번에 협의했는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합병으로 라인업을 넓혀 수출 시너지를 내려고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매각설까지 돌 정도로 경영성과가 부진했던 현대로템은 방산 중심의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섰다. 그 결과, 신용등급 BBB+로 강등된 지 3년 만에 A등급 회복에 성공했다. 이번 폴란드 수주로 30%인 방산 매출 비중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주력 사업이 철도차량 사업이 아닌 방산으로 재편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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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국내 기업의 방산 수출 확대는 단발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방산은 트랙레코드가 중요한데, 그동안 국내 업체는 가성비를 앞세워도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가 낮아 경쟁에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수출 이후 트랙레코드가 쌓이며 과거 대비 경쟁력이 올라간다는 평가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선 완제품 위주였던 수출을 부품과 소재, 기술까지 수출하는 전방위적인 수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비판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기의 국산화 비율을 높여야 하는데, 전 세계 방산시장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항공기와 전투함정의 국산화 비율은 선진국 대비 낮다. 

      또한 국내 방산 기업의 신용등급은 AA 급으로 우량한 편이지만, 최근 수주 성과가 신용등급 향상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계약 성사 이후 매출이 발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방산 수출이 꾸준히 이뤄진다면 SK나 롯데처럼 회사채 시장을 즐겨찾는 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수출 소식이 늘어나는 만큼 대금회수도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KAI 등 국내 방산기업은 개발도상국에 방산 수출 후에 대금회수가 지연되면서 재정적으로 타격을 입은 바 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 폴란드 역시 안보 공백을 우려해 무기 수입을 서두르고 있다는 평이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수출이 늘어나는 건 긍정적이지만, 폴란드 계약은 세부조건과 진행사항을 지켜봐야 한다"며 "거래 규모가 클수록 파이낸싱이 안되고 자금 회수가 장기화될 우려가 있어, 현금흐름 측면에서 압박받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대금회수 지연 방지를 위해 방산 수출용 파이낸싱 지원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OECD 공적수출신용협약을 준수해 민간제품의 수출 파이낸싱과 동일한 방식으로 방산물자 수출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나 스웨덴 등 주요 선진국은 정부 주도로 독자적으로 국가별 리스크 등급을 결정하고 이에 따라 보험요율, 상환기간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방산업계 전문가는 "방산 특성상 내수 수요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수출이 적으면 공장가동률이 떨어지고 국가 안보에도 문제가 발생한다"며 "선진국은 리스크가 높은 개도국에는 금리 및 보험요율 할인 등을 통해 구매국에 유리한 피이낸싱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출을 많이 하게 되면 공장을 늘리고 자국 무기체계를 안정적으로 갖춰 안보력도 늘리는 동시에 우방국과 외교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만 따지기엔 다른 산업과 차별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