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침체가 스팩엔 기회...공모가 '1만원' SPAC 첫 등장
입력 2022.08.30 07:00
    하나금융스팩25호, 기존 5배 공모가 1만원…공모금액도 400억원
    ‘소멸합병’ 제도 변화, 단주 문제 발생…공모가 상향 불가피
    증권사, VC, 자산운용사부터 일반 기업까지…’주식불황기’ 대체투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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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꽁꽁 얼어붙은 공모주 시장의 투심과 달리 스팩(SPAC, 기업인수목적회사) 시장은 활기를 띠고 있다. 2000원이던 스팩의 희망 공모가액은 1만원으로 훌쩍 올린 곳도 등장했다. 

      스팩 제도가 소멸합병식으로 바뀌면서 타 증권사들도 스팩 희망공모가액 상향 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관투자자들은 비상장투자나 상장 주식보다 비교적 안전한 스팩으로 피신하는 한편, 비상장 기업들도 수요예측을 거치지 않고 상장을 원하는 수요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9월 코스닥시장 상장을 앞두고 있는 하나금융25호스팩은 공모가액을 1만원으로 내놓았다. 일반적으로 국내 스팩은 공모가액을 2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가격이 크게 높아졌다. 스팩 발기인의 투자단가 역시 1000원에서 5000원으로 5배 높아졌다. 공모금액도 400억원으로 국내 상장 스팩의 규모가 100억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몸집도 크게 불어났다.

      공모가가 크게 뛴 배경은 올해 2월 도입된 ‘스팩 소멸 합병’ 방식이 도입되면서다. 과거에는 스팩 법인에 IPO를 희망하는 기업이 합병하는 방식이라, 상장할 경우 스팩이 존속 법인으로 남고 기업이 소멸됐다. 그러나 올해 2월 합병 대상 법인이 존속법인으로 남는 개정안이 시행됐다. 

      제도 개편으로 스팩 합병 과정에서 있었던 애로사항이 해소됐지만 ‘단주(거래단위 미만의 주식, 1주 미만의 주식) 처리’ 문제가 떠올랐다. 

      주당 1만원인 비상장회사와 공모가 2000원인 스팩이 합병한다고 예를 들어보자. 기존에는 비상장회사 주주들에게 5주씩 스팩 주식을 나눠주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스팩이 소멸법인으로 바뀌면서 스팩이 사라지고 스팩 주주에게 비상장회사의 주식을 나눠준 뒤, 그 주식을 상장시켜야 한다. 즉, 스팩 주주들은 한주당 비상장회사의 주식 0.XXX주(단주)를 받아가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단주는 모두 현금으로 반환하게 되는데, 스팩 소액 주주들은 주식을 계속해서 갖고 있지 못하고 강제적으로 현금으로 받게 된다. 

      물론, 합병 대상 법인의 가격을 스팩의 공모가인 2~3000원으로 낮추는 방법도 있다. 피합병 법인 대상인 비상장회사에 액면가를 쪼개고 무상증자를 하는 등 최대한 주가를 낮추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액면분할과 무상증자를 통해 주가를 최대한 낮춘 뒤에 스팩 합병이 실패될 수도 있어 비상장회사에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하나증권 관계자는 “스팩의 기존 목적이 합병 전에 공모주주로서 투자하고 합병 대상 회사의 가치를 미래 이익으로 가져가는 것인데, 단주처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스팩의 원래 목적과 크게 달라지는 것”이라며 “기존 스팩 주주나 소액주주들이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도록 고려해 공모가액을 높게 설정했다”고 말했다.

      하나금융25호스팩처럼 공모가 1만원인 스팩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거래소도 비상장법인의 단수 처리 문제를 인지하고 공모가를 1만원으로 높이는 방안을 권고 차원에서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증권이 스팩 공모가 1만원의 첫 신호탄을 쏘아올렸지만, 단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팩 공모가액을 높이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어 추후 타 증권사 스팩의 공모가도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스팩 발기인 구성도 다양화되는 모습이다. 올해 상장한 스팩은 총 22곳으로 그중 11곳은 벤처캐피탈이 발기인으로 나섰다. DB금융스팩10호에 10억원을 투자한 스틱벤처스, NH스팩23호와 삼성스팩6호에 각각 10억원, 5억원을 투자한 SBI인베스트먼트가 대표적이다. SBI인베스트먼트는 이번에 처음으로 스팩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공모주 청약에 나섰던 운용사나 일반 기업들도 발기인 참여에 나섰다. IBKS19호스팩에 나선 라이언자산운용과 하나금융25호스팩에 나선 제조업 회사 '앤퍼니'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일반 기업이 스팩 발기인으로 참여한 것은 하나금융20호스팩과 KBT2호스팩, 대신밸런스제7호스팩 정도다.

      벤처투자업계에서는 ‘소멸합병’으로 스팩 합병 성공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투자자금 회수를 위한 또다른 창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하나금융25호스팩 외에도 NH스팩19호(공모금액 960억), NH스팩20호(공모금액 400억) 등 대형스팩도 등장하면서 높은 밸류의 비상장회사의 합병도 가능하다는 평가다. 

      최근 스팩 발기인으로 나선 벤처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공모주시장이 투자가격보다도 낮은 공모가를 받는 경우가 있어 투자회사에 스팩을 통한 우회상장을 제안하기도 한다”며 “스팩 합병에 유리한 여러 환경이 마련되고 있어 스팩 상장이 엑시트(투자자금 회수) 우회로로 자리를 잡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