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에도 '최장수' 임기 안효준 국민연금 CIO, 역대급 불장 덕?…후임은 가시밭길 예고
입력 2022.09.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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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4년의 임기를 채우게 된 안효준 국민연금 최고투자책임자(CIO)를 두고 누군가는 천운(天運)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의 자본시장 대통령이라고 일컫는 국민연금 최고투자책임자(CIO)의 자리는 '독이 든 성배'와도 같다. 1999년 이후 약 22년여간 주어진 임기를 채운 인사는 단 한 명뿐이었다. 대부분의 CIO가 중도 사임하거나 이사진과 동반 퇴진했다. 정권 교체기에 이런 모습은 당연시 됐는데 그만큼 외풍(外風)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에 가깝다. 낱낱히 공개하는 수익률도 늘 논란의 대상이다.

      안효준 국민연금 CIO의 임기는 오는 10월까지이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여전히 공석이지만 1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내정됨에 따라 후임 인선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에서 3년 반, 현 정부에서 반 년 등 총 4년을 채우면 안효준 본부장은 역대 최장기 집권한 CIO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장관과 이사장의 공석이 길어진 탓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정권 교체기에 잡음 없이 자리를 보전한 몇 안되는 CIO가 됐다.

      사실 국민연금 CIO의 잔혹사는 어제 오늘일은 아니다. 1999년 초대 본부장인 김선영 CIO는 감사원의 해임권고를 받고 자진사퇴했다. 그 자리를 물려받은 조국준 전 CIO는 임기 중반 사직서를 냈다. 3대 오성근 CIO는 이명박 정권이 취임 직후 사퇴 했고, 4대·6대 CIO인 김선정·홍완선 CIO는 연임에 실패하거나 퇴진했다. 7대 강면욱 CIO는 인사 논란의 책임을 지고 1년 반여만에 사퇴했다. 2년의 임기와 1년의 연임 임기를 채운 인사는 5대 이찬우 전 CIO가 유일하다.

      역대 CIO들의 거취에서 볼 수 있 듯 국민연금 CIO는 자리를 보전하는 것조차가 어려운 직함이다. 매년 반복되는 수익률 논란, 국정감사를 통한 질타, 해당 지역의 정치인과 재계의 기업인들의 요청(?)까지 외풍(外風)이 거센데 내홍도 만만치 않다. 

      보장된 임기 2년 내에 중장기 전략 수립은 물론 성적표도 분기별로 제출해야한다. 업무를 파악하고, 지침을 내리고 CIO의 색깔이 투영된 운용 전략을 펼친다는 것은 이상에 가깝다.

      다행히(?) 안 본부장의 기금 운용 성과는 상당히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 부임 직후인 2019년, 기금운용본부는 설립 이후 최고수익률(11.3%)을 기록했다. 2020년 9.58%, 2021년엔 10.86%를 기록했다. 불이 붙은 국내 주식은 물론 해외주식과 대체투자의 성공에 힘입은 결과다. 당시에 집행한 투자 건들이 회수단계에 접어들 때 어떠한 결론을 낼지는 모르지만 현재로선 코로나 사태 속 역대급 유동성 파티에 힘입은 과거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이 안 본부장의 오롯한 치적이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안 본부장의 운용 성과는 물론 인정할만하고 호(好)시절에 힘입은 것도 맞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안 본부장이 임기를 마친 이후에도 자리를 유지할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될 후임의 어깨는 상당히 무거울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이미 마이너스(-) 8%, 총 77조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국내 주식은 -20%, 해외주식과 국내외 채권 모두 손실을 기록했다.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해외 연기금과 비교하면 양호한 수익률로 보일 수 있다. 글로벌 연기금 ▲GPFG(노르웨이)는 올 상반기 -14% ▲ABP(네덜란드) -11.9% ▲CalPERS(미국) -11.3% ▲CPPIB(캐나다) -7% ▲GPIF(일본) -3%의 손실을 기록했다.

      상반기 국민연금 수익률은 유일하게 이익을 기록한 대체투자(7.25%) 부문이다. 국민연금은 안 본부장 국내외, 특히 해외 대체투자 부문을 확대하는 기조를 세우고 투자를 확대해 왔다. 주식과 채권 등 일단위로 시장가격이 형성되는 전통 자산과는 달리 대체투자의 평가는 상당히 후행한다.

      주식시장의 과열양상은 꺼졌고, 채권가격은 치솟았다. 대체투자부문만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은 착시이다. 국내외 연기금,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이 ‘대체 투자’의 버블 붕괴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안 본부장의 후임의 임기 내에선 국민연금 수익률 방어가 제 1의 목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년간 역대급 유동성 파티, 유례없는 불장을 더 이상 기대하긴 어렵다.

      정치권의 연금 개혁 논의의 중심에 있는 국민연금에는 이 외에도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재계와 갈등을 빚고 있는 대표소송제도에 대한 논란을 마무리 지어야하고, 수년 째 지속하고 있는 기금운용본부의 독립과 관련한 논의도 이어질 것이다. 연장 선장에서 유수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 최소한의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한 장치를 구현해야한다. 중장기적으론 정치권과 낙하산 인사들에 휘둘리지 않는 체제를 구축해야한다는 숙제에서 기금운용본부장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한다.

      국민연금 CIO가 임명되고 약 900조원의 운용 업무를 명확히 파악하는데만 최소 1년이 걸린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연금의 최고 투자책임자가 고작(?) 4년의 임기를 채웠다는 것에 박수를 치는 것은 한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