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메이저리그 구단을 인수한다면?
입력 2022.09.08 07:12
    스포테인먼트 중시한 SK그룹, 작년 야구단 매각
    국내 B2C 시장과 접점 줄어들며 전략 선회한 듯
    美 시장 확대 집중…스포츠단 인수시 인지도 상승
    돈도 버는 美 구단 인수, 명분과 실리 모두 충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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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스포츠는 우리 사회와 지구를 위한 페어플레이를 펼쳐 나가겠습니다.”

      SK그룹은 ‘행복 경영’의 수단으로 스포테인먼트를 적극 활용해 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스포츠 사랑은 각별하다. 그룹 소속 스포츠단 경기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대한핸드볼협회장을 맡고 있다. 올해 농구단 SK나이츠 우승 축하연에서 했던 프랜차이즈 스타 잔류 약속도 지켰다.

      이런 SK그룹이 작년 야구단(SK와이번스)을 매각하며 파장을 불러왔다. 20년 이상 일반 소비자와 접점 역할을 해온 수단 하나를 정리했다. 에너지, 소재 등 B2B 사업을 키워가며 국내에서 스포츠 마케팅의 효용이 줄었기 때문이란 평가가 있었다. 남은 곳 중 축구단(제주 유나이티드)은 유공 시절부터 이어졌고, 핸드볼 구단 두 곳은 SK의 사회 공헌적 성격이 강하다.

      SK그룹은 최근 해외 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특히 미국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다. 국내에서 ‘파이낸셜 스토리’로 조달한 자금을 주로 미국 시장에 쓰는 모습이다. 각 계열사가 미국 내 투자법인 설립을 검토하고, 미국의 유력 에너지·소재 기업과 제휴 및 M&A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 최태원 회장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화상면담은 상징적인 장면이다.

      SK그룹이 아직 미국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기차 배터리(SK온), 친환경 에너지(SK E&S) 등 무게감 있는 사업을 하나 'SK'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시나브로 SK 브랜드가 알려지겠지만 당장 시장에 이를 각인시킬 이벤트나 수단이 많지 않다.

      SK그룹이 미국의 스포츠 구단을 인수한다면 상황은 한번에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스포츠 시장이고 시민들의 삶도 스포츠와 밀접하게 닿아 있다. 포드 전기차 판매가 늘어나는 것보다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스포츠 구단을 인수하는 것이 이름을 알리는 데 유리할 수 있다. B2C와 거리가 먼 두산그룹이 재무 위기 상황에서도 야구단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최태원 회장 역시 미국 스포츠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기업들은 여러 해외 유력 스포츠 구단과 손을 잡아 왔다. 삼성전자는 2005년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와 1000억원 규모 유니폼 광고 계약을 맺었고, 기아는 2007년 이후 미국 NBA와 관계를 이어 오고 있다. 이랜드는 2012년 메이저리그(MLB) LA다저스 인수를 추진한 바 있다. CJ그룹은 작년 NBA팀 LA레이커스와 파트너십을 맺었고, 올해는 하나금융투자가 컨소시엄을 이뤄 첼시 인수에 나서기도 했다.

      SK그룹이 미국 스포츠 시장에 진출하고자 한다면 이왕 접점이 있는 곳을 택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특히 SK온의 사업이 고용 효과가 크고 일반 소비자의 생활과도 가깝다.

      SK온은 조지아주, 포드와 합작사(블루오벌SK)는 켄터키·테네시주가 사업 기반이다. 조지아주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MLB)와 애틀랜타 호크스(NBA), 테네시엔 NFL(미식축구)팀 테네시 타이탄스가 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진출한 조지아주는 미국에서 가장 현대차 소비 비중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LG전자는 작년부터 테네시 타이탄스를 공식 후원하고 있다.

      미국 4대 스포츠(NFL·NBA·MLB·NHL) 소속 구단이라면 위치를 떠나 광고 효과가 크다. 최근엔 오타니 쇼헤이, 마이크 트라웃 등 스타 선수가 소속된 MLB팀 LA에인절스가 매물로 나왔다. 이 구단의 가치는 22억달러(약 3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최근 달러 강세와 시장금리 상승 등으로 M&A 시장이 위축되고 있지만, SK그룹이 넘보지 못할 정도의 덩치는 아니다.

      미국 스포츠 구단 인수는 경제적으로도 나쁘지 않다. SK와이번스는 모회사 SK텔레콤으로부터 광고비 명목으로 매년 200억원가량을 받았지만 적자를 면치 못했다. 미국 구단들은 광고 효과에 더해 이익도 내고 있다. LA에인절스만 해도 코로나가 기승이던 2020년과 2021년엔 각각 3300만달러, 240만달러의 영업적자를 냈지만 그 전엔 수천만달러의 이익을 냈었다. SK와이번스에 집행하던 광고비에 미국 스포츠 구단의 이익창출력까지 감안하면 수조원을 써도 손해가 아니란 지적이다.

      최태원 회장 개인 입장에서도 밑질 것은 없다. 해외에서도 유명 스포츠 구단주, 항공사 오너, 와이너리 주인 등은 경제 창출 효과 이상의 명성과 대접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LA에인절스의 구단주는 ‘유일한 멕시코계’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SK와이번스를 인수해 SSG랜더스를 출범시킨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부회장이 야구단의 호성적에 체면이 살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국내 매출이 10억원 수준에 불과하던 미국의 유명 와이너리 쉐이퍼 빈야드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미국 서부 현지의 인지도가 높아졌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