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비 기근에 줄도산 우려 고조되는 플랫폼 업계
입력 2022.09.13 07:00
    채무불이행에 펀딩 무산, 직원 대규모 권고 사직까지
    무리한 광고 집행에 운영비 기근…'축제 끝났다'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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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플랫폼 기업들에 도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돈을 써서 기업가치를 유지해야 하는데 기관들이 지갑을 닫으며 돈줄이 막혔다. 운영비 기근으로 직원 감축, 나아가 파산에 이른 곳도 나오고 있다. 1등이 아니라면 사실상 모든 기업이 구조조정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신선 수산물 당일 배송 서비스 '오늘회' 운영사 오늘식탁은 최근 서비스를 중단했다. 김재현 오늘식탁 대표는 지난달 협력업체 대상으로 공문 메일을 보내 '부분 디폴트(일부 채무불이행)'를 공지했고, 전 직원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오늘식탁은 지난 몇달간 투자 업계의 이목을 모았다. 지난 5월 경영권 지분이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부각됐고, 주요 기업들에 접촉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잇단 연체로 협력업체에 대한 대금 지급이 중단되기 직전인 시점이었다. 도산 직전까지도 기업과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회수 장치를 제공하며 투자유치에 총력을 다했지만 결국 파산을 면치 못했다.

      유통 대기업이 신선식품 위탁운영을 맡긴 한 업체 또한 최근 언급이 잦다. 유통 공급체인을 단순화한 온라인 기반 유통업체로, 올초부터 시리즈B를 추진 중인데 시장 관심이 크지 않다. 성장 전망이 밝지 않아 투자자로부터 외면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많다. 대기업이 나서 사업 안전성을 보강해줄 것인지도 의문이다.

      명품 플랫폼 발란도 투자 유치에 애를 먹고 있다. 명품 플랫폼 가운데 첫 사모펀드(PEF) 투자유치 가능성이 거론됐으나 최근 사실상 협의가 불발됐다. 신규주주 없이 기존주주의 팔로우온만으로 라운드가 진행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대내외 악재가 많았고, 업계 수위권 입지를 점하지 못한 탓으로 풀이된다.

      인공지능(AI) 기반 학습 앱 '콴다' 운영사 매스프레소는 구글을 전략적투자자(FI)로 유치하며 주목받았지만 급속도로 치솟은 몸값에 웃돈을 얹기 부담을 느끼는 투자사가 많다. 한 보험 플랫폼의 부진도 언급된다. 해당 회사는 80여명 규모이던 직원 수를 최근 10명대까지 줄였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후 핵심 수익 모델이 휘청였다는 평가다. 다른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도 계속되는 운영비 기근에 직원 절반 감축에 나섰다.

      티몬의 향방도 관심거리다. 싱가포르 기업 큐텐에 지분교환 구조로 회사를 매각하면서 숨통이 트였다. 다른 플랫폼들에 비해 먼저 이름을 쌓아 부진한 실적에서도 회생 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다만 2조원까지도 언급됐던 몸값은 이번에 2000억원대까지 내려앉았다.

      대주주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로선 후일을 도모할 수 있게 됐지만 큐텐의 성장만이 유일한 회수 선택지다. 현재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SPAC) 합병을 통한 미국 상장을 노리고 있다.

      국내 최초로 신선식품 배송을 시작한 컬리, 국내 최초의 카쉐어링 기업 쏘카의 부진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자본과 경쟁 대열에 섰던 국내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왓챠는 매각 기로에 섰다. 1등이 아니라면 모든 기업이 구조조정 대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마불사(大馬不死)도 플랫폼 업계에선 옛말이다. 

      많은 사업이 유동성 위축에 타격을 입고 있지만 유독 플랫폼 업계의 부진이 심한데, 이는 플랫폼 사업 특성에 기인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플랫폼은 실제 생산되는 재화 없이 중개가 유일한 사업구조라 차별성을 갖기 쉽지 않다. 누구나 비슷한 사업을 금방 따라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얼마나 많은 거래가 플랫폼을 거치느냐가 핵심 가치였지만, 이제는 그런 거래 지배력이 언제 어느 규모로 이익으로 전환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M&A 등 외형 확장에만 공을 들이거나, 당장의 거래액을 늘리기 위해 공격적으로 마케팅 비용을 썼던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기관들이 지갑을 닫으며 플랫폼들은 당장의 운영비를 충당하기에도 버거운 상황이다. 시간이 갈수록 플랫폼 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 기업 임원은 "플랫폼 기업들은 실제 재화를 생산하지 않으면서 중개만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이제는 이에 회의적인 시각도 많아지고 있다"면서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연내 플랫폼 줄도산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