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 '버킷리스트'…해외 와이너리 확보 경쟁 본격화 예고
입력 2022.09.14 07:00
    2017년 이후 줄곧 1위 신세계, 다시 힘싣는 선발주자 롯데
    현대百, SK도 진출 움직임…'총수 의중' 담긴 행보란 평가
    자체 와이너리 확보 관건…롯데, 프랑스 와이너리 인수 검토
    기존 수입사 입지 줄까 고심…상장으로 성장 자금 마련 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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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전통 와인 수입사 중심으로 전개됐던 국내 와인 시장에 대기업들이 잇따라 가세하고 있다. 선두를 달리는 신세계에 이어 현대백화점과 SK가 막 진출했거나 진출을 검토하는 분위기다. 선발주자였던 롯데는 해외 M&A로 다시 기회를 엿보고 있다. 각 대기업 총수들이 자체 브랜드 확보에 관심이 높은 만큼 해외 와이너리 인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국내 와인시장은 2016년까지만 해도 금양인터내셔날·아영FBC·나라셀라 등 전문 수입 유동사들이 주도했다. 각 사의 매출 규모도 500억원 안팎으로 시장의 파이가 크지 않았다.

      신세계그룹이 와인을 전략사업으로 육성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신세계는 신세계L&B를 앞세워 와인 사업에 뛰어들었고, 2017년 당시 1위였던 금양을 제친 후 줄곧 선두를 달리고 있다.

      신세계L&B는 작년 기준 매출이 2000억원으로 경쟁사를 압도한다. 자체 주류 전문점인 와인앤모어(WINE & MORE) 출점 확대 전략에 힘입어 매출이 급증했다. 유통망이 두텁다 보니 저가 와인을 대량으로 수입하기 용이한 면이 있다.

      '유통 라이벌' 롯데의 최근 움직임도 눈에 띈다. 롯데는 국내 최장수 와인 마주앙(1977년 출시)을 보유한 국내 와인 시장의 선구자 격이다. 아직까지는 매출이 5위(831억원)에 그치지만 2020년부터 계열사 롯데칠성음료를 통해 다시 와인 사업에 힘을 싣고 있다. 와인 직영점 와인온(Wine On)을 출범시켰고, 와인 전문가들로 이뤄진 프로젝트W팀을 통해 내년 상반기까지 와인 브랜드 리뉴얼에 나설 계획이다.

      현대백화점과 SK그룹도 와인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태세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6월 와인 수입·유통사 비노에이치를 통해 와인 시장 진출 소식을 알렸다. 프리미엄·유기농 와인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겠다는 것이 사업 모토다. SK그룹은 최근 한 계열사에 와인 신사업을 준비하는 팀을 마련했다. SK네트웍스가 하던 와인수입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분류되며 와인 시장에서 발을 뺐다가 다시 진출하려는 모습이다.

      국내 와인 시장은 대기업이 시선을 돌릴 만큼 성장세가 가파르다. 2020년 1조원 수준이던 시장 규모는 1년 사이 1조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연간 와인수입액은 3억3002만달러에서 5억616만달러로 늘었다. ▲2020년 3월 주세법 개정에 따른 온라인 주류 판매 확대 ▲편의점 업체의 주류특화매장 확대 ▲대형마트 중심의 초저가 와인판매 영향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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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들의 행보엔 오너의 의중도 많이 반영됐을 것이란 평가다. 와인은 마진율이 쏠쏠한 사업이면서도 오너들이 희망하는 '컬렉션 사업'으로서의 성격도 있어서다.

      실제 대기업 총수들의 와인 사랑은 유명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미국 프리미엄 와인, 그 중에서도 나파밸리의 샤토몬탈레나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와인 사업 재진출 역시 최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프랑스 동부에 위치한 부르고뉴 와인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본인 SNS 계정을 통해 TPO(시간·장소·상황)에 맞는 와인을 자주 소개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올해 미국 와이너리 쉐이퍼 빈야드를 2억5000만달러에 인수했는데, 미국서 유통업을 하며 쌓은 인지도보다 훨씬 높은 유명세를 탔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한 와인업계 관계자는 "와이너리 오너는 해외 시장에서 저명 인사로 대접받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향 매출이 10억원에 불과한 쉐이퍼 빈야드를 인수함으로써 정용진 부회장은 와이너리 오너란 명함도 챙기게 됐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국내 와인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단순 수입·유통에 그치는 것보다 유명한 브랜드를 내재화 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너의 안목을 바탕으로 해외 와이너리를 인수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롯데도 쉐이퍼 빈야드 M&A에 자극받아 해외 와이너리 인수를 꾸준히 검토하는 분위기다. 신동빈 회장이 프랑스 와인을 선호하는 만큼 해당 지역에 위치한 와이너리와 포도밭을 우선적으로 살피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세계가 '빈집'에 제때 규모를 키워 격차를 벌렸지만, 다른 대기업들이 속속 진입해오는 상황이다. 경쟁이 본격화할 경우 수익성 확보가 더욱 어려울 수 있다. 와인시장이 작년을 기점으로 빠르게 컸지만, 성장세가 꾸준히 지속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기업들이 유명 와인 브랜드를 직접 갖추기 시작하면 전문 유통사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해외 수입 파트너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쉐이퍼 빈야드만 해도 예전엔 전문 수입사를 통해 국내에 유통됐지만 이제는 신세계그룹이 물량을 모두 가져가게 됐다.

      대기업 외의 유통사들은 기업공개(IPO)를 통해 성장 자금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2위 금양인터내셔날과 4위 나라셀라가 국내 첫 와인 수입 상장사 지위를 노리고 있는데, 이르면 연내 상장될 가능성이 있다. 국내 와인 수입업계에서 일부 기업이 합병 방식으로 우회 상장을 검토한 이력은 있지만 증시에 입성한 곳은 아직 없다. 

      금양인터내셔날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와인을 주로 취급하는데, 이들 산지가 주로 고가와인이 많다 보니 이익률이 좋다. 매출은 2위(1345억원)지만 영업이익(264억원)은 신세계(212억원)를 앞선다. 증권업계에선 상장 가치가 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나라셀라는 미국·호주·칠레산 등 저가 와인 중에서도 비교적 프리미엄을 앞세우는 곳이다. 최근 투자유치에서 기업가치 1000억원을 인정받았다. 최근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과 석윤수 비파이낸스 한국 대표를 이사회 내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고 3월엔 국세청 출신 김충렬 감사를 새로 영입해 상장 대비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