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1위’서 진작 내려왔어야 했을 한국 조선업
입력 2022.09.15 07:00
    Invest Column
    세계 시장 지배했지만 핵심기술 없어 실익은 의문
    근시안적 경영에 당장 일손 구하기도 어려운 현실
    정부 구조조정 失期 지적 계속…대조양 고민 지속
    허울 뿐인 세계 1위…정치 논리·노조 반대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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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 조선산업은 오래 전 조선업 세계 1위에 올라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시장을 이끌면서도 독보적인 기술을 갖추지 못해 경기가 출렁일 때마다 외부에 손을 벌려야 했다. 삼성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 안에서 조선업은 빛을 잃은지 오래고 대우조선해양은 수십년 째 제대로 된 주인 없이 표류하고 있다.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과 대안없는 정치 논리 때문에 허울뿐인 ‘글로벌 1위’ 타이틀을 너무 오래 쥐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르면 이달 중 산업은행이 글로벌 컨설팅사에 의뢰한 대우조선해양 경쟁력 강화방안 컨설팅 결과가 나온다. 당초 7월까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됐지만 장기 파업 영향으로 늦어졌다.

      컨설팅 결과가 어떻든 당장 대우조선해양의 처우를 결정하긴 쉽지 않다. 통매각이든 분리매각이든 결국은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해야 한다는 대전제는 그대로지만 선뜻 나설 원매자가 없다. 그보다 현대중공업그룹으로의 매각을 전제로 했던 자금 지원안을 어떻게 연장하느냐가 눈앞의 고민거리다.

      시장에선 다시 ‘조선업 호황’을 노래한다. 작년부터 전세계 신규 발주 물량을 싹쓸이했고, 도크에는 대기 물량이 가득찼다. 그러나 우리 조선사의 본원 경쟁력이 높아졌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은 수십년간 세계 조선 산업의 맹주였지만 지금 남은 과실은 많지 않아 보인다. 고부가 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박한 마진율에 만족해야 했다. 최근 몇 년간 LNG운반선이 주요 먹거리로 떠올랐으나 화물창 기술료를 제하면 손에 쥘 것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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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에 와서는 조선시장에서 얼마나 우위를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중국은 불공정무역 우려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국 조선사에 자금을 뿌려 왔다. 아직 기술 격차가 있다지만 막대한 정부 지원과 건조 역량을 앞세워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2002년 ‘말뫼의 눈물’은 유럽 조선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는데, 초대형 유람선 등 고부가 선박 시장은 유럽에 그대로 남았다.

      빅3 조선사 경영진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회사를 이끌기 어렵다. 임기 3년짜리 사장은 당장 회사로 유입되는 현금이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 저가 수주라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 없는 대우조선해양 사장 자리는 정권에 줄을 댄 사람이 잠시 쉬어가는 곳에 가까웠다.

      우리 조선산업이 세계 1위로서 체면을 지키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유망 산업이거나 직업적 안정성이 컸다면 우수 인재와 노동자들이 몰리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십년 일한 전문공이 최저 시급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나오고, 많은 근로자들이 건설업 등으로 발길을 옮겼다. 당장 일손이 급하니 조선사끼리 인력 쟁탈전이 치열하다. 지난달 조선사들이 현대중공업의 인력 빼가기 문제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기도 했다.

      조선업 호황기에도 이런 상황은 달라지지 않으니 정부의 산업 구조조정이 늦었다는 비판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06~2008년 조선업 호황기를 지나며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추진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거래가 좌초했다. 이후 시장주도 구조조정, 조선업 빅2 체제 전환 등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소득이 없었다. 지난 정부에서도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려 했으나 유럽연합(EU)의 벽을 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현대중공업그룹에만 힘을 실어준 꼴이 됐다.

      산업과 경제구조가 고도화하면서 전통 제조업의 한계는 점차 명확해지고 있다. 삼성과 현대중공업만 해도 조선업에 큰 관심이 없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업보다 바이오, 로봇, 인공지능(AI) 등 신사업을 부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M&A 역시 조선업 확대 의지가 컸다기 보다는 정부가 잘 만들어온 제안을 수용한 것에 가깝다. 그룹의 지원에 의지했었던 삼성중공업은 ‘이재용 회장’ 시대엔 존재감이 더 옅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산업은행이 20년 이상 키를 쥐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은 더 갑갑한 상황이다. 매각을 추진하려는 의도는 좋았으나, 정권 말기 낙하산 사장 논란으로 빛이 바랬다. 돈 못 버는 공룡기업의 결말은 불보듯 뻔한데 앞으로 나가려 할 때마다 발목을 잡히고 있다. 노노(勞勞)갈등의 불씨는 점점 커지고, 일부 직원이 회사 전체를 흔드는 기형적인 상황은 계속된다.

      대우조선해양 임원 자리, 수많은 '공기업’ 근로자들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려면 국책은행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돌아온다. ‘세계 1위 조선업을 왜 망치려 하느냐’는 정치 논리와 노동업계의 반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정상화는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