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자금 받아 몸집 불리는 운용사들…수익성엔 오히려 '독'
입력 2022.09.16 07:00
    신한운용, 이달 중 신한라이프 자산 40조원 이관받기로
    삼성·KB·한화운용도 계열사자금 받아…AUM 경쟁 우위
    AUM 많을 수록 퇴직연금·OCIO 사업 경쟁에서 유리해
    계열사 몰아주기 논란·낮은 운용보수 따른 수익성 저하는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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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계열 운용사 '자산 밀어주기'를 통한 경쟁력 제고 전략이 유행하고 있다. 당장 신한라이프로부터 40조원 규모의 자산을 이관받을 신한자산운용은 업계 3위권으로 몸집을 불리게 됐다. 이미 삼성, KB, 한화자산운용 등 생명·보험 계열사가 있는 자산운용사들은 보험 적립금을 운용하며 AUM(운용자산)을 늘리고 있다. 

      이런 계열 운용사 밀어주기는 그룹 차원에서 퇴직연금 및 OCIO(외부위탁운용) 사업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낮은 운용보수로 인해 수익성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신한자산운용과 신한라이프는 최근 이사회를 열어 40조원 규모의 신한라이프 운용자산을 신한자산운용에 넘기는 안건을 의결했다. 신한라이프 내 증권운용팀을 신한자산운용으로 옮기고 LDI(부채연계투자) 본부를 신설해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올해 초 신임 대표로 선임된 조재민 신한자산운용 대표는 KB자산운용 대표직에 있을 당시 LDI 본부를 안착시킨 경력도 있다. 

      보험사 적립금을 계열 자산운용사에 이관하려는 움직임은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삼성자산운용은 2015년 국내에서 최초로 LDI전용본부 조직을 만들고 삼성생명의 국내외 주식·채권 운용자산 50조원을 넘겨받았다. 

      뒤이어 2016년 한화자산운용도 한화생명 자금 58조원을 이전받았고 2020년 KB자산운용은 KB손해보험과 KB생명보험으로부터 22조원 규모의 주식·채권 운용자산을 이관받았다. 올해 초에는 푸르덴셜생명은 18조원을 KB자산운용에 추가로 맡기며 계열사의 뒷받침이 이어지고 있다. 

      계열사 자금을 이관받는 운용사들이 늘면서 운용업계 순위 경쟁은 치열해졌다. KB자산운용은 계열 보험사의 자금을 받아 외형을 성장하며 한화자산운용을 제치고 AUM 3위에 올라섰다. 신한자산운용이 신한라이프의 운용자산 40조원을 받게 되면 AUM 규모는 110~120조원 규모로 급성장하게 된다. 4위 한화자산운용을 제치고 KB자산운용과 업계 3위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 계열 보험사의 자산 이관은 운용사의 외형 성장과 실적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수십 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굴리며 안정적인 트랙레코드를 쌓아 OCIO 등 위탁운용 역량을 강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다. 삼성자산운용은 LDI운용본부를 통해 쌓은 기금 운용 역량으로 연기금투자풀,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기금,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등 공적기금과 서울대, 이화여대 등 민간기금에서 OCIO 트랙레코드를 쌓고 있다. KB자산운용과 한화자산운용은 경쟁이 치열한 공적기금 OCIO보다는 민간기금 유치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한 자산운용사의 LDI본부 관계자는 “LDI 자금은 장기 운용적 특성을 띄고 있어 투자일임 비즈니스에서 장기자금 운용 역량 강화와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다”며 “장기자금 운용 노하우는 투자일임 외에도 OCIO나 퇴직연금 등 장기자산 고도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AUM의 증가가 곧 수익성 향상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삼성자산운용은 AUM 300조원에 육박하며 AUM 기준으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당기순이익은 498억원으로 업계 3위에 머무르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AUM(159조5770억원)이 삼성자산운용의 절반 수준인데, 영업이익은 755억원으로 약 2배에 달하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룹 계열사의 지원이 수익성에는 ‘독’이 됐다는 평가다. 계열사 자산 대부분이 채권 자산이고 계열사 자산에 현실적으로 높은 보수율을 책정할 수 없어서다. 삼성자산운용은 보수율이 낮은 편인 채권과 MMF(단기금융상품) 비중이 60%가 넘는다. 반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비중은 20% 초반대에 머무르고 있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나 연기금 일임자금에 대한 운용보수는 전반적으로 낮은 편인데, 계열사 같은 경우는 거의 무보수와 다름없는 수준”이라며 “특히 보험사 자금은 채권 비중이 높은데 매매도 거의 없고 그냥 파킹만 하는 수준으로 운용을 한다면 보수를 더더욱 높게 챙겨 받긴 어렵다”고 말했다.

      계열사 몰아주기라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실제로 2020년 금융감독원은 삼성자산운용의 운용성과가 좋지 않은데 삼성생명이 운용자산 자금을 그대로 유지하고 삼성자산운용에 몰아줬다며 경영유의 조치를 내렸다. 당시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삼성생명 운용자산의 70%가량을 삼성자산운용에 위탁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화자산운용 역시 지금까지 생명에서 넘어온 운용자산이 약 70조원에 달한다. 

      또 다른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계열사 자산에 기대면 급격한 외형 성장과 더불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겠지만 이를 넘어 꾸준한 상품 개발과 딜 소싱 역량 등 자산운용 역량을 키우는 것까지 이어가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