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1500원까지도?…한국 투자 호기 맞은 해외자본들
입력 2022.09.21 07:00
    원달러 환율 작년 초 1100원 미만…연말 1500원 전망도
    적은 달러로 원화 자산 인수 기회…회수 때도 추가 이익
    중국 투자 막혔고, 일본은 보수적…한국 '반사이익' 기대
    부동산 투자사도 환율 효과 예상…아직 보수적인 시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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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달러 강세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작년 초만 해도 1100원 아래였지만 이후 꾸준히 올랐다. 올해 특히 상승세가 가팔랐는데 1400원에 이어 1500원까지 도달할 것이란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고 에너지·원자재 수급 불안 등 변수도 많아 당분간 환율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달러화 결제를 하는 기업의 부담은 커졌고, 정부의 개입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한국 경제는 환율 부담에 시름하지만 달러화를 가지고 한국으로 들어오려는 해외 투자자들엔 절호의 기회다. 연초 원달러 환율은 1200원 수준이었는데, 연말 환율이 1500원이 된다면 연초 대비 무려 20%의 투자비를 아낄 수 있다. 예를 들어 한화 1조5000억원짜리 기업을 연초에 인수했다면 12억5000만달러가 필요하지만, 1500원일 때는 10억달러만 있으면 된다.

      지금의 달러 강세는 투자 회수 때도 득이 된다. 몇 년 후 환율이 올해 이전 수준으로 돌아온다면 원화 자산을 팔아 더 많은 달러로 바꿀 수 있다. 앞서의 자산을 1조5000억원에 다시 팔았는데, 그 때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이라면 달러로는 12억5000만 달러가 된다. 자산 가치를 끌어올리지 못했더라도 환율 변동만으로 25%의 이익을 내는 셈이다. 전액 지분투자(Equity)로 3년 후 회수했다면 내부수익률(IRR)은 약 8%가 된다.

    • 대형 M&A에서는 글로벌 사모펀드(PEF)들이 어김없이 참여하고 있다. 원래도 대형 거래에는 대부분 이름을 올려왔지만 지금은 특히 더 적극적인 모습이다. 대기업과 국내 PEF들이 주춤한 틈을 놓치면 안된다는 분위기도 있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매각자들의 눈높이가 점차 내려온다는 점도 기대한다.

      메디트 M&A에는 칼라일그룹과 CVC, KKR 등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 매각 역시 설비투자 부담에 발길을 돌리긴 했지만 초기 흥행은 베인캐피탈 등 글로벌 PEF가 이끌었다. SK온 상장전투자유치(프리 IPO)는 우선 국내로 선회했으나 환율 상황이 좋은 만큼 외국계 투자자들의 참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 설비 인수를 두고서는 KKR과 브룩필드가 경쟁했다.

      베어링PEA가 인수한 PI첨단소재는 주가가 인수가 대비 절반 아래로 떨어졌지만 그나마 환율이 오른 덕에 체면을 덜 구겼다. 롯데카드 등 앞으로 진행될 대형 거래에도 달러화를 굴리는 투자자들의 참여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달러 기반의 투자를 하는 외국계 PEF간 세컨더리 거래는 기대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현재 아시아에서도 매력적인 시장으로 꼽힌다. 미-중 갈등 장기화로 미국과 중국 모두 자국과 연관이 있는 거래에 서로 불허 결정을 내리고 있다. 달러를 운용하는 곳들은 중국을 투자 선택지에서 아예 배제한 분위기다. 일본은 우량 기업이 많지만 경영권 매각 거래에 보수적이고, PEF 시장은 한국에 비해 폐쇄적이다. 일본에서 좋은 성과를 냈던 베인캐피탈은 50억달러 규모 아시아 5호펀드 자금을 모집 중인데, 앞으로 한국 시장에도 더 공을 들일 계획이다. 이 외 아시아 지역은 경제 발전 수준이나 사회 제도 면에서 한국에 뒤처져 있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적은 달러를 들여 원화 자산을 인수할 수 있기 때문에 글로벌 PEF들이 한국에 투자하기엔 최고의 시기”라며 “나중에 환율이 낮아졌을 때 회수하면 원화를 더 많은 달러로 바꿔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 실물 자산에 투자하려는 해외 투자자들도 늘고 있다. 부동산 등에 투자할 때도 M&A나 기업 지분 투자처럼 환율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핵심업무지구 내 오피스 빌딩은 역사적으로 실패한 적이 없는 투자처라는 인식이 강하다.

      싱가포르 투자청(GIC)은 한동안 한국 내 성장산업 투자에 공을 들였지만 최근엔 부동산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올해 이지스자산운용의 여의도 신한금융투자 사옥 인수 펀드에 투자자로 참여했고, 한 대형 금융사를 찾아 한국 내 부동산 금융과 관련한 공조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글로벌 부동산 투자에서 두각을 보인 블랙스톤은 올해 한국에 부동산 팀을 신설했고, 캐나다 브룩필드도 비슷한 시기 한국 내 대체자산 운용사를 설립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운용자산(AUM)이 수십조원에 달하는 외국 운용사들이 한국 부동산 시장을 살피는 분위기다.

      물론 환율만 가지고 한국 시장에 자금을 쏟아붓기에 부담스러운 면은 있다. 외국 자본들은 지금까지 한국의 신성장 기업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이제는 다시 성장성보다 현금창출력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인수 후 기업가치가 더 낮아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하고 투자 장벽을 높이며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선 미국 달러 기반의 투자사들의 보폭 역시 좁아질 수밖에 없다. 아직 자산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한 외국계 운용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한국 내 부동산 자산 가격이 높아졌기 때문에 담을 만한 자산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지금은 환율 외에는 매력적인 것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