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BCC 될까...KB금융, 印尼 부코핀은행 살리기에 '올인'
입력 2022.10.06 07:00
    2020년 경영권 인수 후에도 부실 눈덩이...추가 증자 검토
    인수 담당자ㆍ취임 1년 된 행장 등 물갈이...체질 개선 집중
    印尼 , '오버뱅킹' 여전하고 상품 특화ㆍ건전성 유지 쉽지 않아
    비슷한 시기 인수한 프라삭은 승승장구...'매물 신중히 골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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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국민은행의 글로벌 진출 트라우마가 재연되는 양상이다. 2018년 인수한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의 경영 상태가 악화일로를 걸으며 인적ㆍ물적 자원이 대거 투입되고 있어서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2008년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투자 실패 사례를 떠올리고 있다.

      KB금융 입장에선 부코핀은행이 인도네시아-캄보디아-미얀마를 축으로 한 '신(新) 남방정책'의 핵심 축 중 하나인만큼 쉽사리 포기할 순 없는 상황이다. 다만 비슷한 시기 인수한 캄보디아 프라삭의 성과와 비교하면, '부실은행'을 인수해 정상화시킨다는 진출 전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거란 지적이 나온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인도네시아 자회사인 부코핀은행에 최대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검토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 2018년 부코핀은행 지분 22%를 1100억여원에 인수했고, 이후 두 차례 유상증자를 거쳐 2020년 지분 67%를 확보했다. 지금까지 총 투입 금액은 약 8000억원이다.

      수 차례 자금 투입에도 부코핀은행의 경영 상황은 좋지 않다. 국민은행이 지분을 인수한 이후 4년여간 부코핀은행의 누적 적자는 40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만 연간 2700억원이 넘는 대규모 순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 손실 규모가 줄어들며 경영 정상화 기대감이 반짝 솟기도 했지만, 2분기 대규모 부실채권 상각으로 인해 상반기 총 손실 규모는 오히려 지난해를 넘어섰다. 

      올 상반기 약 5조 루피아(약 4700억원) 규모 부실채권을 처리한 부코핀은행은 하반기에도 비슷한 규모의 부실채권을 추가로 정리해야 한다. 지난 3월말 기준 부코핀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11.7%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은 최대주주인 국민은행에 지속적으로 자본 추가 투입을 요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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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코핀은행은 2018년 지분 인수 당시부터 부실한 은행이었다. 2020년 국민은행이 경영권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해외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당근'이었다. 당시 인도네시아 정부는 40%로 제한한 외국계 금융자본의 지분 한도 및 부실 은행 추가 인수 의무를 면제해줬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부코핀은행 인수의 주역으로 꼽히는 맥킨지 출신 박재홍 글로벌사업담당 전무나 한종환 본부장 등이 2020년을 전후해 모두 물러났고, 부실을 수습하던 최창수 행장 역시 선임된 지 1년도 안돼 이우열 현 행장으로 전격 교체됐다"며 "그룹에선 '부실은행임을 인지하고 있었고 4~5년 가량 정상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막상 담당자들에겐 문책성 인사를 감행했다는 시선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부코핀은행의 체질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올 상반기 6000명이 넘던 직원을 4800여명으로 줄이고, 현지 영업점 수 역시 350여곳에서 300여곳으로 감축했다. 

      대신 신규 앱을 출시하고 디지털화 전환에 나섰다. 이우열 전 KB금융지주 전략담당(CSO)을 행장으로 파견한 것도 이 행장이 은행 정보기술그룹 임원 및 KB금융 IT총괄을 거친 디지털 전문가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지난 8월엔 국민은행 내 IT통으로 통하는 문영은 정보보호본부 상무를 부코핀은행 IT총괄로 급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 국민은행이 자본과 인적자원을 '밑 빠진 독'에 붓는 게 아니냐는 우려 역시 여전하다.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말 기준 국영은행 4곳, 민간은행 106곳 등 110여곳의 은행이 경합을 벌이고 있는 초경쟁시장(레드오션)이다. 신한ㆍ하나ㆍ우리 등 국내 경쟁 은행은 물론 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도 모두 인도네시아 법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부분 올 상반기 기준 부코핀은행보다 나은 성과를 내고 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인도네시아는 금융산업 규모에 비해 은행 수가 지나치게 많아 오버뱅킹(overbanking) 이슈가 여전한데다, 자산관리(WM) 부문은 싱가포르ㆍ중국계 은행이, 소상공인 부문은 국책은행이 꽉 잡고 있다"며 "이슬람 종교 특성상 '연체'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고 신용평가ㆍ담보평가 시스템도 부족해 은행 건전성 유지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 부실이 발견되며 부코핀은행의 건전성이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2008년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인수 당시를 떠올리는 시선도 적지 않다. 

      KB금융은 2008년 8100억여원을 투입해 BCC 경영권을 인수했다. 이후 2010년, BCC의 영업 성과가 지속적으로 악화했음에도 1300억여원을 추가 투입했다. 당시 KB금융은 '장기 성장을 염두에 둔 전략적 투자'라며 이를 정당화했지만, 불과 6년 뒤 투입금액 9500억원 전액을 장부에서 상각 처리했다. 이후 경영권 매각을 통해 회수한 금액은 1600억여원에 그쳤다.

      '부실은행을 인수해 정상화시키는 사례'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은행은 부코핀은행 추가 지분인수를 추진하던 2020년, 캄보디아 1위 소액대출금융회사인 프라삭 마이크로파이낸스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인수 당시 프라삭은 소액대출 부문 시장 점유율이 44.6%로 1위였고, 전체 금융기관 기준 대출 규모로도 점유율 8%로 4위에 해당하는 회사였다. 프라삭은 올 상반기 기준 1200억여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며 국민은행 해외 계열사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연환산 자기자본수익률(ROE)은 24.4%로 국내 핵심 계열사를 크게 능가한다. 2024년엔 상업은행 전환도 앞두고 있다.

      한 증권사 금융 담당 연구원은 "현지 사정에 밝지 못한 국내 금융사가 부실화된 해외 금융사를 인수해 자본을 투입, 정상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포화된 국내 금융시장 상황과 경제 규모 등을 고려하면 국내 은행들의 동남아 진출은 불가피하지만, 인수 대상을 선정함에 있어 좀 더 심사숙고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