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금조달 계획서 자취감춘 IPO…영업 막막해진 증권사들
입력 2022.10.06 07:00
    하락장에 IPO 시장 부진 여전…철회 기업들도 무소식
    '좋은 기업 시장에 소개'한다던 PEF들도 시기 재조정
    영업 전략도 짜놨는데…셀다운 미진에 신규 딜 한도 제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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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증시 침체 장기화에 기업들이 자금조달 계획서에서 '기업공개'(IPO) 항목을 지우고 있다. 재무적투자자(FI)로서 유수의 기업을 증시에 안착시키겠다고 나섰던 사모펀드(PEF) 운용사들도 증시 하락에 상장 시기 조율에 나섰다. 

      올초 LG에너지솔루션 상장 당시 뜨거워진 시장 열기를 반영해 주관 영업에 차별점을 두고자 여러 방안을 고안해냈던 증권사들의 노력이 무색해졌다는 평가다. 'IPO 빙하기'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올해 코스피 상장사는 3곳에 불과했다. 지난해 16개 기업이 코스피시장에 상장한 점을 감안하면 큰 폭으로 감소한 모습이다. 1월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을 뒤이어 7개월만에 코스피 시장에 안착한 기업은 8월 1일 상장한 수산인더스트리였다. 공백기에 SK스퀘어 자회사인 원스토어와 SK쉴더스가 상장을 철회하며 올초 기대되는 대어(大魚)로 꼽히던 기업들의 상장은 도전에 그쳤다. 

      수산인더스트리 상장 당시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성장 기대감보단 매출을 통해 기초체력을 보여주는 기업"이라며 "수산인더스트리 상장 이후 IPO 시장이 다시 탄력을 받을 것이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후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특례상장 1호 기업인 '쏘카'가 8월말 코스피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결과는 참혹하다는 평이 많다. 28일 종가 기준 쏘카는 공모가(2만8000원) 대비 45% 낮은 1만5400원의 주가를 기록했다. 한때 예상 기업가치로 2조원까지 거론됐던 쏘카의 시가총액은 5000억원대를 기록 중이다. 

      7월 27일 예정된 LG에너지솔루션 락업(보호예수) 해제도 투심을 되살리긴 역부족이었다. 상장 후 주가 상승 가능성에 호평을 받았던 LG에너지솔루션에 기관투자자(이하 기관)들의 관심이 쏠렸고, 12조7500억원에 달했던 공모규모에도 불구 기관 수요예측에 최대 1경5천조원이 몰렸다고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 상장 이후 락업 최장기간인 6개월간 상장에 나서긴 쉽지 않은 환경이 될 것이라 했지만 그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란 지적이다. 

      증시 침체 장기화에 기업들은 'IPO'를 자금조달 계획서에서 빼고 있다. 특히 상장을 철회한 기업들은 상장 재추진에 대한 의지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7월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는 설명과 함께 상장 일정을 연기했던 한화임팩트(前 한화종합화학)은 최근 상장 계획을 당분간 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IPO 계획을 중점에 두고 개편한 조직도 흩어진 지 오래다. 상장을 철회하며 주관사 재선정 소식이 전해졌던 현대엔지니어링도 감감무소식이다. 지난해 FI인 블랙스톤파트너스의 의중에 따라 상장을 철회한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도 상장 재추진 의지가 약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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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F도 상장 시기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특히 상장을 내년으로 미룰 가능성이 제기된 골프존카운티가 그렇다. 업계에 따르면 골프존카운티 최대주주 MBK는 기업가치를 크게 낮춰야될 가능성을 감안해 상장 일정 순연을 고민하고 있다.

      그간 IPO를 투자금회수(엑시트) 수단으로 삼고자 했던 PEF들은 '구주매출 비중' 논란에 바삐 대응해왔다. 해당 논란은 거래소에서 30~40% 수준으로 구주매출 비중 가이드라인을 설정했다고 알려질 정도로 업계에서 '뜨거운 감자'로 여겨졌다. 이에 PEF들은 '시장에 좋은 기업을 안착시키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증시 환경이 한풀 꺾이며 상장시기 조절에 나섰다. 

      한 PEF업계 관계자는 “이전부터도 엑시트(투자금 회수) 옵션으로 PE들이 IPO를 선택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라며 “지금과 같은 시장에선 상장보다는 매각 방안에 더욱 무게를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당장 돈이 필요한데 사모 방식의 자금 조달이 어려운 기업이라면 어쩔 수 없이 상장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상장 계획을 이어서 추진 중인 기업들은 몸값을 크게 깎아야할 상황에 직면해있다. 상장을 앞두고 있는 기업은 컬리, 11번가, 케이뱅크, 오아시스 등이다. '흑자'를 내는 플랫폼 기업인 오아시스마저도 몸값을 낮춰야하는 상황이란 지적이다. 상장 후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없다면 기관들이 투자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에 따라 올초부터 영업 차별화를 꾀했던 증권사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증권사들은 주관계약 당시 홍보 영상을 제작해주거나 상장 당일 기업 홍보를 위한 옥외광고를 걸어주겠다는 아이디어 등을 통해 발행사의 마음을 사고자 했다. 그러나 기업들이 IPO 계획을 하나둘 철회하면서 무용해졌다는 평가다. 

      증권사 내부 사정이 녹록지 않은 점도 주관 영업 확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서를 비롯, 증권사 기업금융(IB) 등 부서들이 전반적으로 셀다운(자산재매각)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신규 딜 수임을 제한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는 전언이다. 통상 증권사는 영업용순자본(NCR)비율에 따라 주식자본시장(ECM), 부채자본시장(DCM) 등에 신규 딜 발굴에 대한 한도를 설정한다는 설명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증권가의 분위기는 개점 휴업 수준으로 영업인력들은 눈치가 보여 사무실에 앉아있기 힘들 정도다"라며 "최근 부동산부서 뿐만 아니라 ECM, DCM의 다른 딜들도 셀다운(자산재매각)이 어려워진 경우가 많아, 특정 팀이 보유한 딜을 셀다운하지 못하면 아예 신규딜을 할 수 있는 한도를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