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머티리얼즈 100% 프리미엄 내어준 롯데, 14년 전보다 떨어진 M&A 협상력?
입력 2022.10.13 07:00
    8월 본입찰보다 인수가 대폭 상향…승자는 허재명 대표
    시가 2배에 인수…뒤늦은 빅딜에 시너지 입증 부담
    황각규 부회장 시절 98억원 깎겠다고 소송까지 걸던 롯데
    그룹 리더십 예전같지 않다는 평가…김교현 롯데케미칼 부회장 주도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 승계 행보 빨라질까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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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롯데그룹이 글로벌 4위 전기차 배터리용 동박 제조사 일진머티리얼즈 경영권 인수에 시가 2배의 프리미엄을 지급하기로 했다.벌써 부터 그룹 내 시너지 효과를 어떻게 낼 것이냐 하는 의문 부호가 붙고 있다. 오랜만의 대형 M&A의 성과가 부진할 경우 사업적 성과보다 다른 목적 때문에 무리한 결정을 했다는 비판이 따를 가능성이 크다.

      과거 100억원이라도 깎겠다고 매각자와 법적 소송까지 마다않던 롯데그룹의 변화된 모습 시장에서는 '롯데의 M&A실력 저하' 평가도 나온다. 황각규 부회장 이후 그룹 리더십의 저하를 원인으로 지적하는 언급도 있다.  

      2조 초반이 2.7조까지 상승…승자 허재명 대표, 승계 경쟁 밀렸지만 아버지ㆍ형 능가하는 자산가 등극

      롯데케미칼은 지난 11일 미국 자회사 LOTTE Battery Materials USA Corporation을 통해 허재명 대표가 보유한 일진머티리얼즈 지분 53.3%와 일진머티리얼즈 자회사 아이엠지테크놀로지 신주인수권을 2조7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하는 계약을 맺었다. 신주인수권의 가치가 크지 않다고 보면 일진머티리얼즈 주당 인수 가치는 약 11만원으로, 계약 전일 종가(5만4000원)에 대비해선 2배에 해당한다.

      이는 당초 허재명 대표 측이 고수하던 3조원에서 10%정도만을 깎은 금액이자, 처음 롯데의 생각보다는 7000억원 가량이 오른 금액이다. 롯데는 지난 8월 본입찰 때는 주당 9만원 수준, 2조원 초반의 금액을 써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자는 11만원은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는데, 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롯데가 허재명 대표의 뜻을 따른 셈이다.

      이로 인해 이번 매각의 최대 승자는 '허재명 대표'로 기록될 상황이다. 

      장남 허정석 일진홀딩스 부회장ㆍ차남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간 일진그룹 2세간 '경쟁'은 애시당초 장남 허 부회장의 승리가 됐지만 이번 매각으로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허정석 부회장은 창업주 허진규 회장으로부터 일진그룹 주요 계열사 경영권 대부분을 승계 받았다. 반면 차남 허재명 대표는 일진소재산업(현 일진머티리얼즈) 경영권만 물려받으며 승계 경쟁에서 밀려났던 상황. 그러나 동박사업이 초호황을 맞으면서 상황이 역전, 일진그룹내 주요 계열사 일진홀딩스 (시가총액 2000억원)ㆍ일진전기(시가총액 1600억원)ㆍ일진디스플레이(시가총액 620억원)와 다른 계열사 전부를 합쳐도 일진머티리얼즈(시가총액 2조5000억원) 한 곳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여기에 이번 일진머티리얼즈 매각이 '경영권 프리미엄 100%'를 기록, 무려 3조원에 가까운 현금을 동생 허재명 대표가 손에 쥐게 됐다. 아버지와 형의 그룹 순자산을 전부 합친 것보다 승계에서 밀려난 동생의 현금이 월등히 많아진 상황이 현실화 됐다.

      협상 우위 있음에도 미활용? 사무실 비용 900만원까지 깎던 롯데가…

      롯데그룹이 2조원대 초반을 써낼 때만 해도 사업 전망과 각종 대내외 변수가 고려됐다. 일진머티리얼즈 자회사의 재무적투자자(FI) 회수 문제, 원자재가 상승에 따른 생산설비 확장 비용 증가, SKC와의 수주 경쟁에 따른 수익률 악화 등이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매년 수십%씩 성장하는 산업이다 보니 사업성 추정이 쉽지 않다”며 “일진그룹도 투자 부담 때문에 일진머티리얼즈를 매물로 내놨다”고 말했다.

      게다가 일진머티리얼즈 매각은 처음부터 롯데그룹이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일부 사모펀드(PEF)들이 관심을 가지긴 했지만 FI로선 주당 7만원을 쓰기도 쉽지 않았다. 매각 주관사가 해외 기업을 끝까지 끌고 오긴 했지만 국내 기업에 비해선 거래 종결의 확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어서 이번 거래는 '셀러' 허재명 대표보다 ' 바이어' 롯데그룹이 협상에서 큰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음에도 불구, 롯데는 이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당장 입찰 과정에서 이미 롯데케미칼을 제외한 다른 후보는 전무한 상황이 드러났다. 허재명 대표 입장에서는 이미 본입찰까지 진행한 상황에서 롯데를 잡지 못하면 무산되는 리스크를 겪어야 했다. 그렇다고 매각을 다음으로 미루자니 국내 및 해외 시장상황이 사상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이다.

      달리 말해 롯데로서는 일진머티리얼즈 인수가격을 한참이나 깎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의미. 그럼에도 불구, 되레 롯데는 허재명 대표가 원하는 가격 언저리에 인수가격을 맞춰주는 결과를 냈다. 덕분에 롯데그룹에는 수천억원의 재무부담이 늘어났다. 

      이런 롯데의 전략은 지난 수십년간 M&A시장에서 롯데그룹이 보여준 모습과는 정반대다. 한때 국내 M&A시장에 나온 모든 매물에서 인수후보로 꼽히기도 했던 롯데는 철저한 협상과 악착 같은(?) 가격 인하 전술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만큼 M&A경험이 많았고, 협상 과정에서 철저하고 빈틈없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두산그룹으로부터 소주사업('처음처럼')을 인수할 당시다. 

      이때 계약금 503억원과 잔금 4527억원, 도합, 5000억원에 넘는 거래가 이뤄졌다. 그러나 롯데는 본계약 체결 이후 두달 동안이나 "두산이 요구한 주세선입금 600억원 가운데 300억원을 못내겠다" , "롯데 M&A팀이 협상과정에서 두산타워 28층 사무실 임대료를 쓸 때 발생한 추가비용 900만원을 못내겠다" , "주류BG 사업부의 부채 가운데 두산이 요구한 98억원을 낼 필요가 없다"고 두산그룹을 괴롭(?)힌 이력이 있다. 양측 임원진들은 감정의 골이 깊어 거래를 깨자는 언급까지 나오고 결국 두 그룹은 법적 소송까지 불사하기도 했다.

      사무실 임대비 900만원과 100억원 가량을 깎겠다며 철저하던 롯데가 무려 2조7000억원의 거래를 선뜻 단행하고, 이 과정에서 가격인하 모습도 보이지 않다보니...과거 롯데의 모습을 아는 M&A 시장 관계자들은 깜짝 놀랄만한 상황이 된것. 게다가 2조7000억원이라는 조단위 거래를 단행하는 시기가 장기 불황과 최악의 금융위기마저 거론, 대부분의 그룹이 몸을 사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황각규 부회장과 김규현 부회장의 차이? 이번에 면을 세운 롯데케미칼 임원들

      이 같은 롯데의 변화는 황각규 부회장이 그룹을 이끌어가던 시절의 롯데그룹과 지금의 롯데그룹의 '리더십' 차이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만큼 롯데그룹의 리더십이 예전같지 않음을 이번 거래가 방증하는 것이라는 의미인 셈이다. 

      롯데그룹은 한동안 대형 M&A 판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수년간 기조가 ‘무조건 경영권 인수’에서 ‘소수지분 투자 확대’로 바뀌었고, M&A 인력들이 한직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이러다가 솔루스첨단소재 지분 투자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뒤늦게 소재 사업에 박차를 가한 형국이다.

      그러나 정중동 행보로 몇 년을 허비한 사이 배터리 산업을 확장하는 데 드는 비용이 크게 늘었다. 인수가가 늘고, 경쟁 강도는 심화했으며, 최근엔 금융 환경마저 우호적이지 않다. SK그룹은 일찌감치 SK넥실리스(전 KCFT)를 인수했고, 배터리 사업 밸류체인을 완성해가고 있다. 롯데그룹도 KCFT 잠재 인수 후보군으로 꼽혔었지만 움직임은 없었다. 신중하다가 ‘몇 배나 비싼 입장료’를 샀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롯데그룹이 통큰 결단을 내렸다는 것은 그만큼 배터리 관련 산업을 육성할 의지가 컸다는 의미지만, 동시에 롯데그룹, 정확히는 롯데케미칼이 ‘큰 성과’가 급하게 필요해졌기 때문이라는 시선도 있다.

      이미 롯데케미칼은 그룹에서 가장 빨리 M&A 성과를 낼 것으로 예상됐던 회사다. 유통이 오랜 기간 부진했던 터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기반과도 같은 롯데케미칼이 성장 동력을 열어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여기에 해외 대규모 설비 증설 등 성과는 있었지만 M&A에선 성적표가 신통치 않아 압박이 컸다.

      하지만 이번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로 인해 이런 부담감이 크게 줄었다. 

      이번 거래를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지는 롯데케미칼 사장을 거쳐 작년 12월부터 롯데그룹 화학군 총괄대표를 맡고 있는 김교현 부회장, 그리고 그룹 정기 인사를 앞둔 임원들의 면이 살게 됐다. 

      문제는 향후 재무부담이다. 롯데그룹은 내부 자금 및 차입금으로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자금을 마련할 계획인데 고금리 시대 이자 부담이 작지 않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작년 700억원, 올해 1000억원 수준의 영업이익이 예상된다. 롯데케미칼은 작년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1조5000억원을 넘었는데 일진머티리얼즈가 중단기적으로 기여할 것이 많지 않을 것이란 평가다. 추가 비용 수천억원을 감수할 만하냐는 지적이 나올 상황이다.

      롯데케미칼은 향후 롯데그룹 승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신동빈 회장의 아들 신유열 상무는 노무라증권을 거쳐 일본 롯데홀딩스에 입사한 후 현재 롯데케미칼 일본 지사 임원으로 있다. 신 상무는 아직 그룹을 물려받을 지분은 확보하지 못했지만 최근 그룹 안에서의 승계 행보가 부쩍 빨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유열 상무는 일본 국적으로 아직 한국 사업에까지 깊이 관여하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시장에선 한국보다는 일본이나 미국에서 경영 경험을 쌓는 작업이 선행될 것이란 예상이 많다. 롯데케미칼을 디딤돌 삼아 입지를 키운 아버지의 행보와 닮아 있다.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에 롯데케미칼 미국 자회사를 앞세운 것도 이 같은 고려가 반영됐을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