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사태' 떠올리는 금융당국...부동산PF 뇌관 터질까 '좌불안석'
입력 2022.10.20 07:00
    금융 당국 정치권 등 ‘제2의 저축은행 사태’ 우려
    시중은행 여전사 증권사 등 PF 관련 부실 사태 속출
    기한이익상실 시 금융사 시공사 시행사 ‘도미노’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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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금융 당국 및 정치권에서 연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가운데 관련 업계 역시 ‘부동산 뇌관’이 터질까 노심초사 하고 있다. 지난 2011년 PF 부실화로 발생한 저축은행 사태가 2022년 증권업계로 무대를 바꿔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업장 건전성 여부에 따라 ‘옥석가리기’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부동산 PF 부실을 막기 위해 무작정 자금줄을 옥죄기보다는 융통성 있는 자금 조달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주요 시중 은행들을 비롯해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들은 일제히 부동산PF 점검에 나선 상태다. 신한은행, 우리은행, KB국민은행 등 주요 은행들은 하반기부터 사실상 부동산 PF 대출을 잠정 중단한 상태로 알려진다. 새마을금고 역시 주요 증권사들에 만기연장 및 신규 대출을 가급적 자제한다는 방침을 알린 상태다. 

      증권가 프라이빗뱅킹(PB) 영업점 등 지점을 통한 부동산PF 자금 공급 역시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최근 강원도 레고랜드 PF 사태가 터지며 일부 WM(자산관리) 지점에서는 하반기부터 전단채 상품 권유를 자제하고 있다.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전단채는 만기가 짧으면서도 안정적인 이자를 얻을 수 있는 상품으로 꼽혀왔지만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는 금융 당국의 부동산PF 관련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10월부터 시작된 국정감사(국감)에서도 부동산PF 관련 질의가 빠지지 않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감에서 “금리 상승시 부동산PF 관련 제2금융권 부실이 문제가 될 수 있다”라며 “(유동성 위기 가능성과 관련해)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와 이야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복현 금감원장 역시 국감뿐 아니라 금융상황 점검회의 등 여러 공식 석상에서 부동산 PF와 같은 단기 금융시장을 점검할 계획을 밝혀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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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금융 당국에서 수년 전 벌어졌던 ‘저축은행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력하다는 평가다. 

      지난 2011년 국내 최대 부산저축은행의 뱅크런(대량인출사태)를 시작으로 다른 저축은행으로 부실 여파가 옮겨 붙은 바 있다. 당시 다수 저축은행들은 수익이 쏠쏠한 부동산PF 대출에 발을 담갔다가 부동산 경기침체에 직면하며 대규모 손실을 입게 됐다. 

      10여년이 지난 현재 증권사들이 당시 저축은행과 비슷한 위치에 놓여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리스크와 수익률이 높은 토지계약금대출로 공격적인 투자 방식을 추구하는 증권사들이 많아졌다. 사업장 별로 10억~30억원 정도의 계약금을 내주고 원금의 두 배에서 많게는 10배까지 대출이자를 받을 수 있어 지난 수년간 증권가 부동산 IB업계에서 인기를 끌어왔다. 

      하지만 지방을 시작으로 부실 위기에 직면한 사업장이 많아지면서 이 같은 대출들이 기한이익상실(EOD)에 처한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공격적으로 계약금대출을 내줬던 한국투자증권이나 메리츠증권뿐 아니라 하이투자증권, 다올투자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들도 크고 작은 부동산PF 손실 위기에 처해있다. 

      카드사와 캐피탈회사를 비롯한 여신전문금융사(여전사)도 ‘뇌관’이긴 마찬가지다. 여전사의 부동산PF 대출규모는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약 26조7000억원으로 2012년 말과 비교해 약 10배가까이 증가했다. 연체 현황 역시 악화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여전사 연체잔액은 2289억원, 평균 연체율은 0.9%다. 지난 2019년 연체금액은 150억원, 연체율은 0.1%에 그쳤지만 약 2년6개월만에 9배가까이 증가했다. 

      부동산PF는 한번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하면 그 여파가 각종 업권으로 확대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 부동산PF는 시행사와 시공사(건설사), 금융사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조다. 채무보증 역시 차주인 시행사가 유동화회사(SPC)를 통해 대출채권을 발행하고 이를 다시 유동화증권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한다. 이 과정에서 증권사와 건설사 등이 신용보강을 해주고 있어 부실이 발생하면 ‘도미노식’으로 위험이 전이된다는 특징이 있다. 

      통상 부동산 개발사업은 금융사의 자금 주선이 큰 역할을 하는데 최근 대출에 대한 이자 구조가 짧아지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위험 요인이다. 초기 단계인 브릿지론에서 본 PF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최근 만기연장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또한 단기물 선호도도 높아지고 있어 향후 금리 상승에 대한 여파를 더욱 직격으로 맞을 가능성이 높다. 

      한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금융비용 증가와 함께 수익성 저하 여파로 프로젝트가 착공에 들어가지 못 하게 될 경우 단기간 내에 유동성 위험이 심화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단순히 ‘부동산PF 옥죄기’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도 일부 나온다. 일괄적으로 부동산PF 대출을 막다보면 자칫 살릴 수 있는 사업장들도 부실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 부동산 투자업계 관계자는 “부동산PF 관련해서 최근 당국이 ‘제2의 저축은행’ 사태를 막겠다는 일념으로 막아서고 있다”라며 “다만 여러 사업장을 연쇄적으로 막다 보면 결국엔 은행들이 결국 부실을 떠안게 될 수밖에 없는데 마치 압력밥솥에 김을 조금도 빼주지 않는 상황이 올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당국에서도 일정 부분 부동산PF 관련 대출을 검토하고는 있지만 요즘에는 금융사가 자체적으로 심사단계에서 조심하는 부분이 더 크다”라며 “예전 건설경기 침체 당시 미분양 사태가 속출했던 만큼 영업점에서도 굳이 무리해서 대출을 내주지 않으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