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빌런' 등장에 난처한 기업들…로펌은 '전방위 컨설팅' 먹거리 기대
입력 2022.11.01 07:00
    단순 괴롭힘을 넘어 법적 분쟁까지 '골칫거리'
    양태도 다양…이슈되면 기업 이미지 타격까지
    '종합 컨설팅 제공' 대형 로펌 핵심 일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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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오피스 빌런은 회사 사무실 '오피스(office)'와 '악당(villain)'의 합성어로, 회사 내에서 피해를 주는 직원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하버드 비즈니스리뷰(HBR)에서는 이들을 ‘Toxic employees(폭탄 같은 직원)’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최근 오피스 빌런은 동료 직원에 불쾌함을 주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단순한 사내 해프닝을 넘 밖에서 법적 문제를 일으키거나 인사 운영에 부담을 주기도 한다. 상습적인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 동료에 대한 근거없는 문제 제기, 무차별 고소나 신고, 업무 성과 채가기 등 양태도 다양하다.

      기업의 가장 큰 고민은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이다. 오피스 빌런은 어디서, 언제, 어떻게 나타날 지 모르고 방식이나 지위도 다양하다. 기업이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서 균형적인 시각을 갖는 어렵다. 2019년 생긴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 부당함을 참지 않는 요즘 직원들의 성향도 고려 요소다.

      제약회사 등 영업이 주력인 기업은 직원 관리에 골머리를 앓는다. 저연차 직원도 거래처에 갑질을 하고 부정한 대가를 받는 등 '대형 사고'를 치는 사례가 많다. 한 자문사 파트너는 일은 챙기지 않으면서 점심 저녁마다 일에 치이는 후배들을 불러 모아 빈축을 사는데 '스스로 빌런임을 모른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로 지적받는다. 한 금융투자사 임원은 직원의 투자건을 훼방 놓다가 '사고나면 책임지라'는 다짐을 받고 투자 승인했다. 좋은 성과가 나자 대표실을 찾아가 '내가 투자를 결정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성(性)문제처럼 가해자와 피해자가 뚜렷한 문제들은 진상을 밝히고 징계를 하면 되지만 과장 신고나 허위 등 '없는 문제'를 일으키는 직원들이 기업의 새로운 골칫거리다. 최근에는 고위임원을 '협박하는' 직원의 사례도 많아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수행비서나 운전기사 등이 언제 악의적인 녹취록을 흘릴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하는 임원들이 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초기 정보 확보가 중요하다.

      오피스 빌런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파이 커지며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적당히 처리'할 수 없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오피스 빌런을 그대로 두면 회사 역량이 낭비됨은 물론 외부 평판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소비재 기업일 경우 이미지에 타격이 커 불매운동으로 번지기도 한다. 가뜩이나 기업의 실적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선 문제 직원에 나가는 비용도 아깝다.

      기업이 문제 직원을 ‘해고해서 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국내 노동법상 근로자를 쉽게 해고할 수 없을 뿐더러, 해고만이 답도 아니다. 극단적인 강경책은 역효과를 낸다. 위임계약으로 언제든 해임이 가능한 빌런 임원이 오히려 쉬운 면이 있다. 최근엔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회사가 입길에 오르는 경우도 많아졌다. 법적 위험을 줄이고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외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노동 시장도 미국을 따라갈 것으로 본다. 미국에선 권리를 찾기 위한 직원들이 회사를 고소하는 경우가 많고, 회사는 중요한 인사 사안을 외부에 맡겨 처리하기도 한다.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해결하기 어려울수록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제 3자’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실제로 오피스 빌런 대응 관련 업무가 대형 로펌들의 핵심 일감으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최근 대기업들 중에선 ‘문제 직원 내보내기 프로젝트’를 하는 곳들이 많은데, 해당 직원을 당장 해고할 수는 없기 때문에 1~2년 장기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을 로펌에 컨설팅을 맡기는 경우가 늘었다“며 “문제 직원 한명 때문에 조직이 엉망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다보니 기업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기 시작했고, 체계적으로 로펌에서 컨설팅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지금까지 대형 법무법인 노동팀에선 권리남용, 성희롱 등 문제직원 처리나 대응 일감이 적지 않았다. 고객들이 알리기 쉬쉬하는 사안이라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기 어려웠다. 이제는 문제 직원을 둘러싼 사안이 복잡해지고 기업들의 니즈가 커지면서 로펌들도 본격적으로 시장을 키우려는 분위기다.

      로펌은 사건 해결을 위해 관련 직원들을 포함한 1:1 면담, 포렌식, 인사조치, 형사, 대관, 여론관리까지 대리하는 ‘종합 컨설팅’을 하게 된다. 이달 초 법무법인 율촌에서는 ‘오피스 빌런 알고 대응하기’ 웨비나를 개최했는데, 기업 인사담당자들을 포함한 2000여명의 신청자가 몰리면서 높은 관심을 확인했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노동팀장 변호사는 “사내 세대 간 갈등, 성별 간 갈등이 날로 늘어나면서 ‘법적 트러블’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민감한 이슈인만큼 기업 입장도, 직원 입장도 모두 객관적으로 면밀히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보니 외부 도움을 찾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임원이 ‘빌런’이 되는 사례는 외국계 기업에서 자주 나타난다. 외국계 기업은 임원이나 경영진 등이 본사 소속인 경우가 많은데, 불만이 쌓인 국내 직원들이 본사에 임원을 ‘찌르는’ 경우가 많다.

      한 외국계 금융사 고위 임원은 직원이 고객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리포트를 내자 거친 언어를 섞어 질책했는데, 직원은 이를 녹음해 본사에 고발했다. 외국계 기업 본사에서는 사안이 중대할 경우 국내 로펌 등을 고용해 외부 조사를 하는 등을 거쳐 조취를 취하기도 한다. 외국계 고객사가 많은 김앤장이 이런 자문에 특화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