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매수 적극 나서달라'…채권투자 근거 마련 나선 기관들
입력 2022.11.02 07:00
    기관투자자, 시장 전문가에 "채권 매입 근거 마련" 요청
    당국 차원에서 기관 협력 요청…시장 안정 위한 속도전
    연내 스프레드 안정 기대감 커졌지만…매수 주체 불투명
    정부 안팎 노력 효과 보겠지만…우려 목소리 여전할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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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채권 시장 불안이 쉬이 누그러들지 않는 가운데 금융 당국 차원에서 비공식 채널까지 가동해 얼어붙은 투심 관리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달 중 스프레드(가산금리) 인상 압력을 레고랜드 이전으로 되돌리기 위해 대형 기관투자자의 채권 매입 등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고 나선 것으로 확인된다. 규제 속도 조절과 대규모 시장안정책만으로는 시장 전반이 안정을 되찾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8일 증권가에 따르면 채권 시장의 큰손인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시장 전문가들에게 회사채 매입을 위한 근거를 문의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 기관을 대상으로 시장 안정을 위한 협력을 요청한 결과로 풀이된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우정사업본부나 대형 연기금 등 기관에서 사실상 회사채 매입에 참여하기 위한 근거를 요청하는 상황"이라며 "현재까지 발표된 안정대책으로 연내 스프레드 불안정이 어느 정도 해소될 거란 시각이 늘어나고 있지만 지금 당장 급한 불을 꺼야 하는 발행사 등의 상황을 고려해 정부가 기관 참여를 적극 독려하며 속도전에 나서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투자 업계에선 채권 시장의 꼬인 실타래가 연내 해소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긴 하다. 그러나 당장 쏟아져 나오는 물량을 받아줄 만한 적극적인 매수자를 꼽기가 힘든 실정이다. 

      부동산 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는 수급이 꼬인 채권 시장 불안을 폭발시킨 기폭제에 가깝고, 앞서 시중은행과 특수은행 등이 유동성 확보전에 돌입하면서부터 발행 시장 전반 구축 효과가 누적되고 있었다"라며 "금융 당국이 건전성 규제 정상화 시점을 유예하기로 결정하면서 순차적으로 스프레드 불안이 해소될 것이라 다들 생각은 하지만, 기관 등 투자자들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상황이라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정부가 발표한 유동성 대책은 ▲채권시장안정펀드 20조원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 16조원 ▲한국증권금융 증권사 유동성 지원 3조원 ▲주택도시보증공사·주택금융공사 사업자 보증지원 10조원 등 50조원에 달한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은행의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정상화 조치를 한시적으로 유예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앞서 9월 중 은행채 순발행 규모가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할 당시부터 은행채 1년물 스프레드가 100bp(1bp=0.01%)를 넘어서며 수급이 꼬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채마저 부도 우려가 불거지니 당장 기업어음(CP)과 단기사채 시장부터 일시 경색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된다. 

      은행이 유동성 확보에서 숨통을 돌리고 증시안정책이 효과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면 순차적으로 스프레드가 종전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당국 차원에서도 안팎으로 대책을 쏟아내는 중인 만큼 시장 안정에 자신감을 내비치는 모습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7일 하나금융그룹의 행사에 참석해 "이번 주말이 지나면 레고랜드 사태가 벌어지기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전망하고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증권사 커버리지 담당 한 실무진은 "정부로서도 일시적인 해프닝으로 인해 금융 시장 전반이 경색으로 치닫는 게 억울할 법하고 지금 당장 조달이 시급한 발행사 사정까지 감안해서 시장 수급의 심리적인 측면까지 관리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차원 독려와 기관의 적극적인 협조에도 불구하고 불안 요소는 여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내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채권 가격이 바닥을 쳤다고 보기 어렵다. 앞으로 금리가 오를 가능성이 높을 때 채권을 매입할 경우 손실이 불가피해 기관이 적극 나서기 어려울 수 있다. 이 밖에 대규모 지원책이 부실 자산에 시간만 벌어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이번 대책으로 부실 사업장에서 발행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도 차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라며 "증권사 중에선 신용공여 외 자기매매(PI) 방식으로 투자한 사업장들도 있다. 당장 이번 위기는 넘어갈 수 있지만 금리 인상이 수차례 더 이어질 경우 내년에 진짜 문제가 터질 수도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