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위기속 스타트업 관리하는 은행들…벤처 경영에 금융사 입김 세질까
입력 2022.11.03 07:05
    KB금융지주, 최근 스타트업 회사들 불러 간담회
    신한도 ESG 펀드 출범하며 후속투자 관리 초점
    스타트업계 유동성 위기에 금융사들도 경계 태세
    본격 ‘옥석가리기’ 시작…금융사들 입김 세질 수도
    •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최근 KB금융지주를 시작으로 금융지주들이 투자해뒀던 스타트업 포트폴리오 회사를 점검하려는 움직임이 예상된다. 유동성이 말라붙은 시기에 사업 환경이 어려워진 스타트업들이 속속 나오는 만큼 투자사들이 직접 대표들을 만나 애로사항을 파악할 목적으로 풀이된다. 

      최근 캐피탈사를 비롯한 금융사들이 벤처투자 자금을 옥죄고 있는 가운데 금융지주들의 입김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17일 KB금융그룹은 스타트업 13곳 대표들을 한 데 모아 애로사항을 듣는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모두 KB금융그룹의 스타트업 지원 브랜드인 KB이노베이션허브의 투자 및 지원을 받는 회사들로 이뤄졌다. 크래프트테크놀로지, 버킷플레이스(오늘의집 운영사), 째깍악어, 아스트론시큐리티 등 다양한 분야 및 투자 단계의 회사들이 모여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한금융그룹은 지난 9월 자체 스타트업 육성 플랫폼인 ‘신한 스퀘어브릿지’를 통해 조성한 펀드의 후속 투자 관리에 방점을 두고 있다. 펀드 조성 당시부터 최근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스타트업 업계를 염두에 두고 초기 단계부터 벤처회사의 지원방안을 고려했다는 평가다. 개별 은행 외에 전 은행권 차원에서는 오는 11월 중 스타트업 대상 데모데이도 예정되어 있다. 은행권 청년창업재단(디캠프) 주최 행사로, 전 은행권이 한 데 모이는 자리는 이번이 처음이다. 

    •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최근 스타트업 업계의 유동성 자금이 말라가는 가운데 금융지주들이 직접 나서 스타트업들의 어려움을 알아보려는 모양새다. 국민은행의 이노베이션허브가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금융사들이 수백억원 규모의 자금을 태워둔 SI(전략적 투자) 투자사례가 각별한 관리 대상으로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금융지주들은 그간 이전 정부의 벤처투자 활성화에 맞춰 스타트업 투자에 활발히 나섰던 데다 디지털 플랫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핀테크 업체 위주로 SI 투자에도 속도를 내왔다. 그러다 올해부터 급격한 금리 상승 기조로 기관들의 출자가 막히며 벤처업계는 그야말로 유동성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최근 플랫폼 회사 왓차의 매각가가 기존의 절반 아래로 떨어지는 수준으로 거론되는 등 스타트업 업계 전반에 걸쳐 ‘생존여부’를 고민해야 하는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지주가 최근 몇 년 사이 ‘벤처붐’ 분위기와 디지털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투자(SI)에도 나서면서 여러 분야의 스타트업 투자를 해왔다”라며 “다른 VC들과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시장상황이 악화되니 우려 차원에서 각기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업 현황 등을 공유하는 데 그쳤던 스타트업 간담회 역시 좀 더 본질적인 어려움을 공유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KB금융그룹의 이노베이션허브 행사에서는 추가 투자 유치라든가 대출과 같은 자금 유동성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는 전언이다. 과거 VC들이 앞다퉈 유망한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줄을 섰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한 은행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인재 채용이나 공간 대여와 같은 실질적인 사업 관련 애로사항이 많았다면 이제는 투자 유치나 자금 유동성과 같이 당장 ‘생존’에 필요한 안건들이 많이 올라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금융지주의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옥석가리기’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금융지주의 투자 포트폴리오가 직간접적으로 천 개가 넘는 만큼 모든 회사들을 살리기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이유에서다. 극단적으로 금융지주의 ‘손길’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스타트업의 생존이 갈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 VC(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자금 지원해준다는 곳이 있다고 하면 환영하는 분위기다. 금융지주 차원에서 도움을 준다고 하면 스타트업 대표들 입장에서는 든든할 것”이라며 “반면 초대 받지 못한 스타트업들이나 실질적인 자금 유치를 도와주는 지원책을 받지 못하는 곳들에게는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외부 지원을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스타트업별로 세부적인 전략을 통해 추가 투자 유치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벤처투자회사 대표는 “최근에는 적자를 내더라도 ‘이유 있는 적자’를 설명할 수 있는 스타트업들이 추가 투자 유치에 성공한다”라며 “디테일한 광고 지표나 광고비용에 따른 진성 고객유치 현황 등을 엄밀히 관리하고 있지 않는다면 섣부른 추가 투지유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