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뱅크, '증자'가 차라리 현실적…내년도 상장 힘들듯
입력 2022.11.04 07:00
    내년 중 상장 목표…투심 살아날 가능성은 불투명
    시장 회복 가정하더라도 상장 문턱 자체가 높아져
    결국 은행 평균과 카뱅 사이로 주가 수렴할 가능성
    투자자·당국 모두 인터넷은행 '민낯 드러났다' 시각
    상장 따른 실익 불투명…"차라리 증자가 나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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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케이뱅크가 내년 중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지만 시장에선 차라리 주주를 설득해 증자에 나서는 것이 현실적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몇 개월 미룬다고 해서 투심이 살아날 가능성도 불투명한 데다 인터넷은행이 높은 가격에 상장을 완주할 만한 재료도 거의 소진되었다는 지적이다. 

      1일 투자 업계에 따르면 케이뱅크는 최근 주요 재무적 투자자(FI)에 내년 1월 상장이 목표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나 시장에선 큰 기대감이 전해지지 않는다. 대형 증권사마저 올해 주관 실적 경쟁은 사실상 포기했다는 분위기가 감도는데, 두 달 뒤라고 해서 공모시장 분위기가 살아날 거라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오히려 거시 경제 환경에 대한 우려가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거란 전망이 더 짙다. 

      기적적으로 시장 분위기가 급반전하더라도 케이뱅크가 만족할 만한 가격에 상장하기 위한 문턱이 너무 높아졌다. 

      케이뱅크는 지난해 유상증자 과정에서 약 2조4500억원 수준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당시 새로 모셔온 주주들에 연 4~5% 수준 수익 조건을 내걸었을 거란 예상을 감안하면 못해도 주가순자산비율(PBR) 기준 2배 수준의 기업 가치는 받아야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선 경쟁사인 카카오뱅크 주가가 하락한 불운을 거론하고 있지만 번지수가 틀렸다는 분석이다. 잠재 투자자이자 설득 대상인 시장 전반이 인터넷은행의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을 상당 부분 거둬들인 상황이다. 기업 가치 산정 방식을 두고 고심이 큰 것도 결국 실적이 급한 상장 주관사나 회수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FI, 주식매수청구권을 보유한 경영진 등 핵심 이해관계자의 사정에 불과하단 지적마저 나온다. 

      지난해 카카오뱅크처럼 국내 기업이 아닌 해외 핀테크 업체만을 비교 기업으로 선정하고 할인율을 높여 PBR 2배 수준의 신고서를 내놓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순간 카카오뱅크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거란 전망이 적지 않다. 1일 카카오뱅크 주가는 공모가 절반에 못 미치는 1만7300원에 마감했다. 상반기 말 자본금 기준으로 PBR 1.48배 수준이다. 

      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PBR 멀티플을 얼마로 반영해 상장하건 은행업 평균치인 PBR 0.4배와 카카오뱅크의 1.48배 사이로 수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라며 "카카오뱅크를 비교 기업으로 선정하건 말건 어차피 추락하는 카카오뱅크 멀티플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확고한 성장 비전을 마련해 카카오뱅크와 차별화에 나서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공모시장을 설득하기엔 인터넷은행의 민낯이 다 드러났다는 시각이 팽배해졌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채권 시장 관계자에게 케이뱅크가 만약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다고 하면 금리를 얼마나 줘야 소화가 될지 물어봤더니 18%는 줘야 할 거란 답변이 돌아왔다"라며 "우스개이긴 하지만, 그만큼 케이뱅크를 포함한 인터넷은행 전반에 대한 투자 심리가 바닥이라는 얘기로 들렸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금융 당국까지 인터넷은행에 대한 시선이 그리 곱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위원회 등 당국에선 인터넷은행이 사실상 별다른 혁신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시각이 굳어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유일한 업적으로 은행 업계 전반의 애플리케이션(앱) 경쟁력을 끌어올린 점 등이 거론되지만, 소비자 편익을 증대한 공을 인정하더라도 당초 기대한 금융 산업의 혁신이나 국제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박한 평이 돌아오고 있단 얘기다. 

      신용평가 모형(CSS) 고도화의 경우 기존 제도권의 신용평가 체계가 생각보다 잘 만들어져 있어 대체할 만한 여지가 부족하단 평이다. 그나마 시중은행을 대체해 혁신할 수 있는 영역으로 개인사업자 대출이나 중소기업 대출 등이 거론되지만, 이마저도 새롭게 평가 모델을 만들어 안착하기까지 수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컨설팅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리테일 시장에서 인터넷은행이 새로운 평가 모델을 마련해 혁신을 이뤄낼 만한 룸 자체가 별로 없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라며 "인터넷은행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지만 금융 당국에선 당장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두고 '사기 친 것 아니냐'라는 분위기다. 최대한 좋게 말하더라도 당국이 라이선스를 내주던 시점에서 요구됐던 혁신 역량을 갖추기까지 상당 시간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라고 전했다. 

    •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상장을 위해 넘겨야 하는 문턱이 높은 데 반해 얻게 될 실익은 불투명해지는 셈이다. 그러니 차라리 증자가 현실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케이뱅크가 PBR 2배 수준인 3조7000억원 가치에 상장할 경우 약 7000억원에 달하는 공모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케이뱅크의 부족한 자본력과 거시경제 환경을 고려하면 상장 이후에도 자본확충 필요성은 여전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케이뱅크의 보통주 자본비율은 지난해 증자 직후인 3분기 말 기준 19.19%까지 올랐지만 지난 상반기 말 기준 14.77%로 분기마다 줄어들고 있다. 카카오뱅크의 절반에 못 미친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으로서 경쟁사와 차별화에 나서려면 결국 자본력을 갖추고 대출 영업을 늘려서 이자이익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이번 수조원이 더 투입 돼야 한다는 계산이 선다"라며 "상장으로 마련할 수 있는 자금의 한계는 명확한데, 위험 부담은 너무 높아서 실익이 안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케이뱅크는 주주 구성이 복잡해 출범 이후 증자에 나설 때마다 잡음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카카오뱅크의 상장과 업비트와의 연계 기대감으로 인터넷은행 사상 최대 규모의 증자에 성공하긴 했지만, 이마저도 증자분 절반 이상이 바젤III 기준 부적격 자본으로 판정을 받았다. 현재 상장을 통한 자본확충이 시급한 것도 지난 반쪽짜리 유상증자의 여파가 큰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지금 상장을 하게 된다면 안 그래도 복잡한 주주 구성에 공모 투자자들까지 얹어지게 되는 셈이다. 

      증권사 주식자본시장(ECM) 담당 한 임원급 인사는 "차라리 최대주주나 경영진이 투자자들을 설득해 투자 조건을 변경하거나 증자에 나서자고 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라며 "계속해서 수혈이 필요한 사업이 덜컥 상장하고 나면 이후가 더 곤란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