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옵션 행사는 필요조건?…시장의 '관행'은 지켜져야만 하는건가
입력 2022.11.04 10:50
    Invest Column
    • 한전채, 레고랜드에 이어 이번엔 흥국생명이다. 가뜩이나 채권시장이 얼어붙었는데 ‘악재’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게 끝은 아닐거 같다.

      그런데 레고랜드 프로젝프파이낸싱(PF) 사태와 흥국생명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이행은 엄연히 다른 사안이다. 레고랜드는 강원도가 ‘지급보증’이라는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 그로 인해 PF의 디폴트가 난 것이라면, 흥국생명 건은 사전에 맺은 계약을 어긴 게 아니다.

      4.475%였던 신종자본증권이 발행 5년 후 스텝업 조항이 발동되면 미국 국채 금리에 2.472%포인트를 가산해 6.75%로 230bp(1bp=0.01%포인트) 가까이 올라간다. 금리가 낮을 시기엔 상식적으로 콜옵션을 행사할 것이라고 모두들 생각한다. 새로 발행해서 갚는 게 유리하고 그게 이성적 판단이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를 차환하려면 10%대로 발행을 해야 하고 그럼에도 수요가 없어 발행 자체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400bp 높게 발행해서 콜옵션을 이행한다고 하면 흥국생명 자금팀은 그냥 짐을 싸는 게 낫다. (물론 흥국생명이 2개월 전만 하더라도 시장에다 콜옵션을 행사하겠다고 말한 건 문제이긴 하다)

      한국신용평가가 리포트를 통해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감독규정상 대체조달(Replacement Language)요건에 따라 차환∙증자 없이 상환하는 것은 불가한 상황이다. 보험업감독규정상 대체조달 요건(Replacement Language)에 따라 동 증권 상환 후 RBC비율이 150% 이상인 경우에 한해 조기상환이 가능하다. 금리 상승으로 RBC비율이 하락했고, 동사의 상환 전 RBC비율(2022년 6월 말 157.8%)이 이미 150%에 근접한 점을 고려할 때, 차환발행 또는 유상증자가 없는 경우 대체조달을 충족하지 못해 콜옵션 행사가 불가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 제도 도입 이후 실질적 자본력에 대한 우려는 낮은 가운데, 고금리 차환발행의 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동사는 발행여건 및 K-ICS(신지급여력제도) 도입 영향 등을 고려할 때, 고금리 차환발행의 실익이 적다고 판단할 수 있다. 금리 상승과 국내 채권시장 경색 등 발행여건이 악화됨에 따라, 채권시장에서 대규모 차환물량을 소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차환 시 요구되는 발행금리는 종전 대비 큰 폭으로 상승하게 되었다. K-ICS에서의 금리 상승으로 인한 순자산 증가 효과와 K-ICS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경과조치, 특히 2022년 말로 종료되는 RBC비율 영향 및 한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파악한다.

      두자릿수 금리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면 그 자체로도 시장에 또다른 경색을 불러왔을 거다. 이제 한국물은 10%대 아니면 글로벌 시장에서 소화가 안된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여졌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금융당국도 두자릿수 금리 차환발행을 반대했다.

      흥국생명에 이어 DB생명보험도 콜옵션 행사를 연기했다. 여타 보험사들도 불똥이 튈까, 한국물 자체에 대한 수요가 사라질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 특히나 달러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 건 현실이다. 2009년 우리은행 후순위채 콜옵션 미이행 때도 시장에선 한국물에 대한 외국인들의 투자심리 경색을 언급하며 우리은행의 ‘행위’를 비판했다.

      그런데 외국에서도 2019년 스페인 산탄데르, 2020년 도이치은행, 영국 로이드 은행 등 콜옵션 미이행은 종종 일어난다. 올 들어서도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은행들이 콜 행사일에 조기상환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신종자본증권 투자자들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확률은 ‘제로’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스텝업 조항이 있고 가산금리는 투자자들과 합의 하에 책정하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콜옵션 행사를 잘 한다’가 ‘한국 기업들은 콜옵션 행사를 해야만 한다’라는 암묵적인 룰로 굳어버린 듯 하다. 즉 한국 기업이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려면 콜옵션 행사는 필요조건이 돼버렸다. 시장은 흥국생명이 이 ‘관행’을 깼다고 한다. 그 관행은 누가 만들었을까. 나의 어려움을 누구 탓으로 돌리는 것만큼 쉬운 게 없다. 그리고 시장 전체가 그 어려움을 스스로 증폭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