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실적' 당겨쓴 제조 기업들, 눈덩이 재고에 경영관리 비상
입력 2022.11.10 07:00
    삼성·SK·LG 등 대표 기업들 재고 상승세
    악재에 예상보다 일찍 끝난 '팬데믹 특수'
    소비 위축에 '연말 재고떨이'도 쉽지 않아
    설비 투자도 감소…실적 고민 이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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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대표 제조 대기업들의 재고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2년간은 팬데믹 반사효과로 좋은 실적을 거뒀지만 올해는 경기 부진과 소비 감소로 작년과 대비된 성적표를 받아들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 불황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 모르는 상황이라 기업들의 재고 및 실적 관리 고민이 이어질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3분기말 재고자산은 약 57조원으로 1년전에 비해 20조원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의 재고도 6조원대에서 14조원대로 두 배 이상 늘었다. LG전자(2021년 3분기 9조9581억원→11조2071억원), LG디스플레이(3조5800억원→4조5170억원), 포스코홀딩스(13조8100억원→17조4300억원) 등의 재고도 크게 늘었다.

      삼성전자는 고객사들이 재고를 엄격히 관리하면서 D램 등의 수요가 줄었고, PC 역시 경기 둔화로 소비가 위축됐다고 분석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말 업계의 재고 규모가 매우 클 것이라고 봤다. LG전자는 글로벌 시장의 수요 감소로 TV 제조사와 유통사의 재고가 늘었다고 했고, LG디스플레이도 세트업체 판매 부진으로 재고 부담이 있다고 했다. 철강사와 정유사들은 수요 둔화로 재고 평가 손실이 발생했다.

      사실 연초만 해도 제조 대기업의 재고 부담이 큰 문제가 될 것이란 시선이 많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본시장의 주목을 받을 것이란 예상이 있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인플레이션 부담이 커지며 유동성 감축 움직임이 일었다. 이는 테크버블의 붕괴로 이어졌고, 제조 대기업들이 반사효과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역시 올초 리포트에서 기업들의 재고 부담이 크지 않다고 봤다. 자동차 등 최종재 생산 둔화로 인해 중간재 수요가 줄고 감염병 확산에 따라 연료 판매가 둔화했지만, 이 재고 증가를 향후 제조업 경기 둔화를 시사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후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발하고, 시장 금리가 급등하며 유동성의 힘과 소비자의 구매력이 줄었다.

      재고에는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미리 쌓아둔 ‘원재료’와 수요처를 찾지 못해 떠안고 있는 ‘완제품’이 있다. 원재료의 경우는 재고여도 부담이 크지 않지만, 우리 주력 제조 대기업들은 완제품을 사줄 곳이 없어 재고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재고 부담이 늘수록 기업들의 실적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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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팬데믹 특수’가 끝났다. 팬데믹 때는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고, 여행 대신 다른 소비처를 찾았다. 스마트폰과 TV 등 가전제품 수요가 늘었고, 원격 근무 용의 PC와 전자기기도 불티나듯 팔렸다. OTT 시청 및 온라인 쇼핑 등이 늘면서 데이터센터향 메모리반도체 수요도 많았다. 이제는 메모리반도체를 미리 사재기하려는 움직임은 사라졌다. 가전제품의 교체 수요는 10년 뒤에나 돌아온다.

      올해 블랙프라이데이, 크리스마스, 연말 등 소비 특수도 올해는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프로모션’에 따라 소비 심리가 반등할 것이란 예상도 있지만, 지금은 유통사들은 물론 소비자도 유동성 상황이 좋지 않아 지갑을 닫고 있다. 3분기 중 공장을 열심히 돌려 11~12월에 수확을 거둬들일 것으로 기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업들은 재고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설비를 늘려봐야 팔기 어려우니 속도 조절에 나서기도 한다. SK하이닉스는 내년 투자를 50% 이상 줄이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투자 절감율에 버금간다고 평가했다. LG전자는 일찍부터 출하량을 조절하고 있고, LG디스플레이는 올해 자본적지출(Capex)을 1조원 이상 줄이기로 했다.

      물론 삼성전자는 ‘인위적으로 감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수요가 충분하다기보다는 최소한의 가동률을 유지해야 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고정비 때문에 설비 가동률을 70~80% 유지해야 하는 부담이 있고, 전자제품은 연말 땡처리를 해야하지만 올해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경기 부진으로 재고자산이 가파르게 늘어 주요 기업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고민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물론 내년 이후까지도 실적 조정을 겪을 수 있다. 경기 부진과 소비 감소를 불러온 전세계 유동성 긴축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팬데믹 특수로 미리 끌어온 실적으로 앞으로 몇 년에 걸쳐 반환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초우량 기업들조차 자본시장과 접점을 늘리려 안간힘을 쓰고, 조달처를 다변화하려 분주하다. 당장 사업 확장이나 투자보다는 버티기가 중요해졌다. 지금은 투자든 생산이든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몇 년 후 소비가 늘어났을 때 대응이 늦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