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쓸 곳은 많은데…산금채 발행은 '눈치' 봐야 하는 산업은행
입력 2022.11.10 07:12
    Weekly Invest
    경기침체 장기화에 산은 임무 늘어나
    자체 이익으론 한계…정부 배당도 부담
    유동성 흡수 우려에 산금채 발행은 고민
    정부가 자본확충 지원할지는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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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산업은행은 부실기업 지원 준비에 나서는 한편 당장의 사고를 막는 안전판 역할도 맡고 있다. 정부로부터 받은 한국전력 지분은 산업은행의 건전성에 부담을 주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 배당은 신경써야 한다. 산업은행과 한국전력은 채권시장 자금 경색의 주요원인으로 눈총을 받고 있다. 당분간 쏠쏠한 이익을 내기도, 시장성 자금을 조달하기도 어려운 터라 산업은행의 자금 고민은 이어질 전망이다.

      산업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2018년 4.2%에서 꾸준히 하락해 올 상반기 1.2%가 됐고, 같은 기간 조선·해운·철강·건설 등 위험업종여신 비중은 19.9%에서 15.4%로 낮아졌다. 표면적으로는 건전성 지표가 양호하게 관리되고 있지만 위험업종여신 비중이 시중은행 평균(4.9%)보다 높아 잠재위험이 크다. BIS비율은 2020년 16%에서 6월말 14.8%로 하락했다.

      산업은행의 어깨는 무거워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50조원 이상 규모의 자금시장 안정화 방안을 내놨다. 산업은행은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등을 이끌고 있다. 부실 기업이 늘면 이에 대한 지원 부담도 늘어난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KDB생명 등 매각에 속도를 내는 것도 구조조정 국면에 미리 대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산업은행은 돈 들어갈 곳이 많은데 시장 자금을 끌어오기엔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다. 당장 맡은 역할을 하려면 산금채를 발행해야 한다. 산금채 등 안전한 특수채권에만 자금이 쏠리며 일반 기업의 유동성 기근이 심화했다. 산업은행은 채안펀드 출자 목적으로 산금채를 발행하지 않겠다 했지만 시장에선 산업은행발 구축효과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 실제로 정부의 특수채 발행 자제 권고 이후에도 산업은행은 채권 발행을 적극 이어갔다.

      한국전력의 경영 상황도 변수다. 산업은행은 정부로부터 한국전력 지분을 현물출자받아 최대주주(지분율 32.9%)로 있다. 한국전력의 주가 상승 및 배당 효과를 누린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한국전력에 1조원의 손실이 나면 산업은행의 BIS비율이 6bp(0.06%포인트) 낮아진다고 했다. 한국전력의 올해 상반기 영업손실만 14조원 이상이다. 전기료를 찔끔 올려서는 한국전력도 산업은행도 개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전력 역시 산업은행과 함께 현재 채권시장의 자금 블랙홀이다. 대한민국 수준의 신용등급을 가진 곳들이 기회가 날 때마다 연이자를 6%씩 주며 채권을 찍어대니 자금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산업은행이 한국전력을 지원하기 위해 산금채를 발행한다는 시선도 있었다.

      한 채권투자사 관계자는 “산업은행과 한국전력이 자금을 빨아들이고 시장금리까지 밀어올리면서 구축효과를 일으키자 정부도 그 심각성을 알고 특수채권 발행을 자제시킨다고 했다”며 “그러나 이후에도 산금채 발행이 이어지고 있는데 산업은행 입장에선 정부가 공돈이라도 넣어주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산업은행이 자체적으로 번 돈으로 필요 자금을 충당하기는 쉽지 않다. 매년 수천억~수조원 정도의 순익을 내고 있지만 여기에만 기댈 수는 없다. 산업은행은 올해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에 나서면서 대출 장사는 잘됐는데 그만큼 위험 부담도 커졌다.

      산업은행은 작년 2조5000억원 가까운 순익을 거뒀다. 이 중 1조8000억원이 HMM 전환사채(CB) 전환권 청구에 따른 평가이익이었다. 정부가 40%의 배당성향을 적용해 1조원 수준의 배당금을 바랐는데, 산업은행은 실제 이익은 7000억원 수준이라고 강조했고 배당금을 8300억원가량으로 줄였다.

      HMM 주가는 올해 고점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있어 산업은행이 ‘평가상 이익’을 거둘 여지가 줄었다. HMM을 팔려 해도 잔여 CB 전환 문제가 남고, CB를 상환받아 인수자의 부담을 줄여주자니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대우조선해양 매각도 지금까지 들어간 돈에 비하면 남는 장사는 아니다. 다만 대우조선해양 여신이 정상으로 분류되면 관련 충당금 1조6000억원 중 상당부분이 이익으로 환입될 수는 있다.

      한 산업은행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할 일이 많은데 돈 벌어서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오히려 정부 자금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주가가 언제 요동칠지 모르는 HMM 평가이익을 빼고 정부 배당을 했다면 지금 큰 도움이 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산업은행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지원할지는 미지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자본을 확충해주긴 했지만 정부도 돈 쓸 곳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산업은행에 맡기는 일은 많은 반면, 자본시장에 대한 관여는 줄이려는 기조라 상충되는 지점이 있다. 이번 정부 역시 이전처럼 산업은행에 신산업 육성 역할을 맡기고 있다. 그러나 산업은행의 혁신성장펀드 출자 예산은 2021년 5100억원에서 올해 6000억원을 거쳐 내년 3000억원으로 줄어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