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자본시장 승자는 결국 ‘팔고 떠난 자’
입력 2022.11.16 07:00
    연초까진 유동성 온기 있었지만 이후 '냉골'
    일진·PI·대우조선 등 절묘한 거래도 있었지만
    매각 나섰다 중단하거나 '손타는' 사례 늘어
    부동산·채권도 침체…"당분간 회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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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2022년 자본시장은 연초만 해도 유동성의 마지막 온기가 있었지만 갈수록 악재가 겹쳤고 투자심리가 눈에 띄게 침체됐다. 이런 분위기는 내년 이후까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보니 지금 시장이 인정하는 몸값을 받고 발을 빼는 것이 최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애초 기대치가 너무 높았거나 손을 탄 거래들은 성사까지 가시밭길이 예고됐다.

      지난달 롯데그룹은 일진머티리얼즈 경영권 인수 계약을 맺었다. 롯데 입장에선 2차전지 소재 사업을 한번에 강화할 기회를 잡게 됐지만 그보다는 허재명 대표가 잘 판 거래로 평가된다. 당초 원했던 금액을 거의 받아냈고, 향후 설비투자 부담도 덜어냈다. 허 대표는 일진그룹 승계 과에서 형 허정석 부회장에 밀리며 일진머티리얼즈만 물려받았지만 빠르게 도래한 전기차 시대가 전화위복이 됐다.

      글랜우드PE의 PI첨단소재 매각 시점도 절묘했다. 지난 6월 매각 계약 체결 후 ‘28년 만의 미국 기준금리 자이언트 스텝’ 등 글로벌 증시 악재가 잇따랐다. 막판 가격 협상이 며칠만 늦어졌어도 몸값이 달라졌을 수 있다. 베어링PEA가 PI첨단소재 주당 투자 단가를 낮추기 위해 시장에서 추가로 지분을 살 가능성도 거론된다. SKC는 과거 PI첨단소재 지분을 글랜우드PE에 넘긴 것이 아쉬울 만하지만 올해 인더스트리 소재사업 부문은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금액으로 팔아 주목받았다.

      대우조선해양 M&A는 승계 작업이 한창인 한화그룹의 욕구와 맞는 거래다. 20여년만에 관리지원 부담을 덜게 된 산업은행 쪽에 살짝 기운다는 평가 적지 않다. 한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했는데 지금의 글로벌 경제 상황이 그 때와 닮아 있다는 시선도 있다. 최근 쌍용자동차 매각이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 됨에 따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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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기회에 자금을 회수하고 떠난 사례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인수가와 목표수익률은 높은데 이를 뒷받침할 시장 자금이 줄었기 때문이다. 실적 개선세를 한 해 더 확인하려다 발이 묶인 사례가 늘었다. 하반기 들어 회수 장벽이 더 높아졌다.

      한 투자사 관계자는 "그래도 상반기까지는 체감상 조금 어려운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거래가 중단되는 분위기"라며 "유동성 기근이 이어지고 있어 큰 회수 실적을 거두기는 커녕 손절 매매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버거킹 매각은 최근 잠정 중단됐다. 안정적으로 현금을 창출함에도 일부 외국계 사모펀드(PEF)만 관심을 보였다. 1조원으로 거론된 매각가가 잠재 원매자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음식 프랜차이즈에 공식처럼 적용되던 거래배수(EBITDA 10~12배)는 옛말이 됐다. 롯데카드 매각은 예비입찰 흥행이 부진한 후 추진 동력이 약해졌다.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이 크고 잠재 후보들의 상황도 좋지 않아 속도를 내기 어렵다. 위스키 업체 윈저글로벌 매각은 사모펀드(PEF)가 인수자금 모집에 실패하며 무산됐다.

      한 번에 성사되지 않는 ‘손탄’ 거래가 많았다. 자금이 풍부할 때야 우선협상자 선정이 곧 거래 종결을 뜻했지만, 이제는 계약을 체결한 후에도 평판위험을 안고 발을 빼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돈이 들어올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유니슨캐피탈은 지난달 칼라일-GS 컨소시엄을 메디트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3조원의 몸값을 인정받았지만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채 우선협상 기한이 끝났고, 다른 원매자들과도 협상을 거쳐 연내 도장을 찍는다는 계획이다. 스마트폰 필름 제조사 넥스플렉스 매각은 JCGI가 인수자금 모집에 실패했고, 이후 웰투시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이 나섰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는 KKR에 산업가스 설비를 매각하려 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협상자를 브룩필드자산운용으로 바꿔 거래 완료했다.

      대기업의 투자유치 거래 열기도 사그라들었다. 연초까지는 그래도 투자자들의 구애가 이어졌지만, 이후엔 거래에 합의하고 종결까지 가는 길이 험난했다. 차입금리를 감당하기 어려운 투자자가 다른 블라인드펀드에 손을 벌리거나, 기업이 스스로 눈높이를 낮추는 사례가 나타났다.

      에이블씨엔씨(미샤), 에어퍼스트, 녹수, SK에코프라임 등 대기 중 매각 거래도 많다. 대체로 출자자(LP)에 대해 회수 성과를 보여야 하는 PEF의 포트폴리오들이다. 첫 매각 시도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더 난처한 상황이 될 수 있으니, 유력한 원매자군이 확인되기 전까진 수면 아래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한 M&A 자문사 임원은 “기업가치가 반토막을 넘어 몇 분의 일이 되는 사례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며 “지금까지 발을 뺀 곳들은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곳들은 당분간 쏠쏠한 회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M&A 외 시장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4조원대 거래로 이목이 모였던 IFC 매각은 국제 소송전으로 이어졌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경쟁 끝에 IFC 인수자로 선정됐지만 이후 자금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자 선결조건 미이행을 이유로 인수를 접었다. 서울 한복판 호텔 투자 관련 대출이 기한이익상실(EOD)에 놓였고, 리츠(REITs) 투자 열기는 꺾였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당분간 투자회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올해 유독 악재가 많았던 채권시장에서는 사건이 있을 때마다 투매(投賣) 경쟁이 이어졌다. 급전을 마련하려는 기관들이 금리를 얹어주고 시장에 채권을 내놓아도 다음 수요자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증시는 올해 초 LG에너지솔루션을 끝으로 차게 식었다. 대어들이 대거 상장을 철회하거나 내년으로 연기했고, 증시 입성 후 주가가 곤두박칠 치는 사례도 많았다. 상장 시 구주를 매출하지 못한 투자자들은 보호예수에 묶여 회수가 난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