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금리인상, 레고랜드 여파까지…펀드자금 '썰물'에 벼랑 끝 몰린 운용사들
입력 2022.11.17 07:00
    가파른 금리 인상에 펀드 환매 요청 이어져
    CP 비중 높은 MMF 자금이탈…"개인·기관 자금 회수 중"
    금융당국도 '펀드런' 예의주시…연기금에 환매 자제 요청
    사모운용 설립자본금 요건 미달 늘어나…M&A 매물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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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급격한 금리 인상시기에 계절적인 요인까지 맞물리며 투자자들의 펀드 환매 러쉬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엔 '레고랜드 사태'까지 엮이면서 주식형과 채권형 등 종류를 구분하지 않고 펀드 자금이 대거 빠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대규모 펀드 환매 사태, 일명 '펀드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에 금융당국도 집중 모니터링에 나섰다. 최근엔 재무상황이 악화하는 자산운용사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운용 업계의 혹독한 구조조정이 진행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1일 전체 펀드 설정액(ETF 제외)은 일주일 전(4일)보다 6조1005억원이 감소했다. 펀드 유형별로 살펴보면 채권형 펀드의 감소세가 크다. 채권형 펀드 설정액은 9월 2일 이후 12주 연속으로 감소했는데, 일주일동안 1조4000억원(9월 26~30일)이 넘게 빠져나가기도 했다. 9월 28일 강원도가 춘천지방법원에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을 하고 강원도 보증의 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한 대출을 상환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29일(6239억원)과 30일(6843억원)에 대규모 자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모든 종류의 펀드가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머니마켓펀드(MMF)에서 자금 유출이 가장 두드러진다. 지난 11일 기준 개인 MMF 설정액은 15조6554억원으로 금투협이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6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3분기 말(9월30일)만 하더라도 개인 MMF 설정액이 17조7543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한 달 반 만에 2조원이 넘게 유출했다.

      법인 MMF의 감소폭은 더 크다. 11일 기준 법인 MMF 설정액은 135조9231억원이었다. 10일에는 전체 MMF 설정액이 전날(9일) 보다 7조7353억원이 줄었는데 법인에서만 7조6614억원이 빠져 올해 법인 기준 감소폭 중이 가장 컸다. 

      MMF는 주로 단기채권, 어음(CP), 양도성예금증서(CD) 등 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하는 펀드다. 언제든 환매가 가능하고 어느 정도 수익률을 누릴 목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대기성 자금'으로 여겨진다. 최근 MMF의 대규모 자금 유출은 금리 상승기에 MMF 수익률(0%대) 보다 시중은행의 예·적금 금리(연 3~4%대)가 매력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레고랜드 사태'로 단기자금시장 경색 이슈가 불거진 점도 MMF 관련 투자심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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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상적으로 연말이 되면 자금유동화를 해야하는 법인들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펀드 환매가 늘어난다. 그러나 금리인상까지 맞물리면서 그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특히 기관투자자들의 펀드 환매 요청이 정말 많이 이어지고 있다"며 "부동산 시장이 악화됐는데 웬만한 기관투자자들은 그동안 다 부동산 투자를 해왔고, 부동산에서의 부실은 당장 유동화가 어려우니 펀드 자금부터 환매해서 부실을 방어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펀드 환매가 급증하면 운용사는 환매중단을 하지만, 지금은 그것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다. 운용사가 더 이상 돌려줄 현금이 없을 정도로 곤란한 상황임에도 수익자들이 운용사의 환매 보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일부 운용사들은 상당히 난처한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또 다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투자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환매 요청이 너무 많으면 당장의 손실 규모가 너무 커 수익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하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이라며 "정확한 수치를 밝힐 순 없지만 곳간의 바닥이 드러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에 금융당국도 '펀드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집중 모니터링에 나서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7일 국민연금, 우정사업본부 등 10여개 기관투자자들에게 MMF 등 단기자금 시장 환매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그 전날에는 은행권에 단기자금 시장 불안이 해소될 수 있도록 MMF 운영 규모를 유지해달라고도 요청했다.

      금융당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자금이탈은 멈추지 않는 추세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MMF 특성상 분기말이나 연말마다 환매가 늘어나지만 특정 기관에서 수천억원씩 환매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다"며 "레고랜드 여파는 점차 잦아들고 있는 것 같지만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 시장이 안정을 찾을 때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투자 상품의 평가손실 규모가 커지고, 대규모 환매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재무상황이 악화하며 M&A 시장에 매물로 등장하는 운용사들도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사모 집합투자업자(사모펀드 운용사)의 설립요건은 자기자본 10억원 이상을 기준으로 하는데, 9월말 자기자본이 10억원에 미달하는 곳은 총 26곳으로 6월말(16곳)에 비해 급증했다. 자기자본 유지요건(7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운용사와 간신히 7억원대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총 9곳에 달했다.

      투자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증권사들도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산운용사들도 여파를 피해가긴 힘들 것"이라며 "대형 운용사인 몇몇을 제외하고는 절반 이상이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이고 더 안 좋아진 곳은 매물로도 나온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