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순위 5위 롯데도 유동성 걱정…모기업 리스크 더욱 커진다
입력 2022.11.17 07:00
    롯데그룹도 롯데건설 자금지원에 분주
    모기업 자금여력 없는 회사들 비상
    한 군데라도 무너지면 상황 더 악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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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유동성이 마른다는 게 어떤건지 실감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우량 계열사 단기채도 시장에서 소화가 안되고 있습니다." (한 대기업 자금담당자)

      유동성 위기가 기업들에 당면한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정부에서 나서서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쉽사리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다. 그룹의 우산이 없는 기업과 금융사의 '흑자부도' 가능성도 거론되는 상황이다. 재계순위 5위인 롯데도 롯데건설 단기자금 마련에 분주하다. 그만큼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은 '한겨울'이다. 연말인사에도 이런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길 전망이다. 

      유동성 위기에 대응하고자 정부가 지난달 ‘50조원+α’ 규모의 긴급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여전히 단기자금 시장에는 냉기가 돌고 있다. 기업어음(CP)금리가 5%를 웃돌고 AA 등급의 CP가 시장에서 소화가 안되는 상황이다. 

      한 IB 담당자는 "현재 시장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단기자금 시장이 여전히 경색되어 있는 것이다"라며 "정부 정책 약발이 안 듣고 있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가장 심각하게 자금경색이 이뤄지고 있는 곳은 PF ABCP 시장이다. 증권사와 건설사가 보증한 ABCP 중 20조원이 넘는 자금이 연내에 만기가 돌아온다.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만기가 돌아오는 PF ABCP 차환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행여나 차환이 되지 않아 부도가 나는 증권사나 건설사가 나올 경우 시장은 급속도록 경색될 것으로 보인다. 그때는 '백약이 무효하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의 견해다. 

      한 대기업 재무담당은 "경색되고 있는 시장에서 차환이 안되서 망하는 증권사나 건설사가 나올 경우 시장은 더욱 경색될 것이다"라며 "시장의 자금이 마른다는 것이 어떤 건지를 기업들도 금융위기 처음 체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모그룹의 지원이 해당 증권사나 건설사의 신용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모그룹이 없거나 자금여력이 부족한 곳을 중심으로 '위기설'이 퍼져나가고 있다. 심지어 재계 순위 5위의 롯데그룹조차도 유동성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롯데건설은 롯데케미칼 등 계열사 세 곳에서 무려 1조1000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이도 충분치 않아 추가적인 자금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모그룹의 지원이 없었으면 버티기 힘들 것이란게 시장의 중론이다. 롯데건설은 건설사 중에서 가장 많은 우발채무 PF를 보유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좋았던 시점에 사업을 확장했던게 화근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룹 내부에서도 부동산 PF에 대한 경고가 있었지만, 당장의 이익에 눈이 어두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앞으로 추가적인 자금도 필요한 상황이라서 롯데그룹 마저도 유동성 막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롯데건설에 유동성을 공급하느라 그룹의 미래 먹거리 마련에 차질이 생길 정도란 설명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이 신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는 와중에 롯데건설에만 조단위 자금을 쏟아 부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라며 "롯데그룹에서 4조원 규모 이베이 인수를 안한 결정이 지금에 와선 천만다행인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롯데가 이정도인 상황이라서 재계순위가 그 밑에 있는 기업들은 살얼음판을 걸을 수밖에 없다. 한국기업평가는 롯데건설과 더불어 태영건설, HDC현대산업개발, GS건설, 대우건설 등의 PF 우발채무 규모가 큰 편이라고 분석했다.이들 건설사들은 신용보강에 나서거나, 차입금 만기구조 단기화 등으로 자금 경색에 따른 영향권에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기업평가는 "HDC현산은 착공 및 분양성과가 우수하지만, 안전관련 이슈 등으로 자본시장 접근성이 제한적이고 상당수의 PF유동화 증권 만기가 단기화돼 있다"며 "GS건설과 대우건설은 조정 전 대비 조정 우발채무 규모가 상위에 분포하는데 만기구조 단기화로 조정 효과가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문제는 비단 건설사뿐만 아니라 금융지주 산하가 아닌 증권사들도 PF부실이 현실화하면 감당하기 힘들 것이란 분석이다. 그나마 은행이 금융사 중에서 유일하게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곳인데 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곳들은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회사별로는 대형 증권사 중 한국투자증권이나 하나증권 등이 부동산 PF 부실 대응에 분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대 수익률이 높지만 리스크가 큰 계약금 대출이나 공격적인 투자 건에 다수 참여한 데 따라 현재 기한이익상실(EOD) 사태를 눈 앞에 둔 사업장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오히려 그간 부동산 PF 리스크의 핵심으로 지목받았던 메리츠증권은 보수적인 리스크 관리로 상황이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전부터 우발채무 규모 등과 관련 신용평가업계 등의 지적을 받아오며 미리부터 관리를 했던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런 분위기는 곧 인력시장의 변화를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증권사들은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있고, 기업들도 연말인사에서 유동성 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롯데건설의 경우 연말인사에서 경영진 교체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미 임원인사를 단행한 곳에서는 신세계가 경영진을 대대적으로 교체하는 '칼바람' 인사가 불었다. 연말 기업, 금융권 모두 이런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 관계자는 "올해 그룹사 연말인사에서 재무건전성 문제가 불거진 계열사들 임원인사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