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나선 이복현, 윤석헌과는 달랐다...'실세 금감원장'의 인사 외압 '논란'
입력 2022.11.18 07:00|수정 2022.11.18 11:16
    이복현 금감원장, 최근 행보 두고 '관치' 평 잦아져
    금감원의 ‘사법적 권한’ 최대한 활용…검사 출신 이점
    윤석헌 시절과 차이 극명…권력구도에서 우위 점해
    •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은행들의 '금리장사'에 으름장을 놓고, 보험사의 건전성에는 경고를 날렸다. 이번에는 민간 금융그룹의 인사에도 개입할 태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광폭 행보를 두고 '외압' 혹은 '관치'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전에도 비슷한 관치나 외압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금감원의 권한 강화에 나섰던 윤석헌 전 원장 시절과 여러모로 비교된다는 평가다. 윤 전 원장 시절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결국 영(令)이 서지 않았던 반면, 지금은 금감원이 의도한대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 14일 이 원장은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단을 만나 대표(CEO) 선임이 합리적인 경영승계 절차에 따라 이뤄지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연말 인사를 앞둔 자리였던 데다 최근 금감원 검사 과정에서 물러난 금융사 대표들이 속속 나오는 분위기를 감안한 데 따른 관전평이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해서는 이 원장이 직접적으로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발언했다.

      금감원이 민간 금융회사의 인사에 개입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8년 금감원은 하나금융지주에 부원장ㆍ국장급 인사를 보내 사외이사를 접견토록 했다. 이 자리에서 금감원측은 사외이사들에 '김정태 회장의 연임은 좋지 않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사외이사들이 반발하자 '정상적인 감독 활동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2019년 신한금융 조용병 회장 연임 당시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국장급 간부가 사외이사들을 접견하고 금감원의 우려를 전달했다. 그러나 하나금융과 신한금융은 모두 금감원의 요구를 거절하고, 연임안을 가결했다.

      이번 손태승 회장의 경우, 이 원장이 직접 나서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태가 훨씬 중하다는 분석들이 나온다. 금감원 원장이 직접 5대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을 불러 지배구조(거버넌스)와 관련한 발언은 한다는 상황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다. 조용병 회장은 인사청탁 관련 재판에서 최종 무죄를 받아 법적 이슈에서 벗어난 터라, 이 자리 자체가 손 회장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이 때문에 우리금융은 상황 파악과 향후 대응안 마련에 진땀을 쏟고 있다. 2020년 파생결합펀드(DLF) 중징계 당시에는 징계안 통보 이후 2일만에 전격적으로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던 손 회장이지만, 이번엔 좀 더 긴 고민이 필요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우리금융 이사회 역시 대외 메시지를 최소화한채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현재 임종룡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 등이 대안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번 징계 결정과 관련, 금감원이 앞장서고 금융위가 이를 용인하는 모습이 보인 점도 윤 전 원장 시절과 다른 부분이다. 2020년 당시 금융위는 윤 전 원장이 독단적으로 DLF 관련 중징계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불편함을 표시했다.

      일반적으로 해임권고ㆍ문책경고 등 임원에 대한 중징계 권한은 금융위가, 주의적경고 등 경징계 권한은 금감원이 가지고 있다. 다만 지배구조법의 경우 중징계인 문책경고까지 금감원장이 결정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데, 금감원이 이를 악용해 금융위의 징계 권한을 빼앗아갔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앞서 분산된 징계 결정구조 일원화를 위해 중징계 권한을 금융위로 통일시키는 법률 개정안을 준비했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 틈을 금감원이 파고든 것에 대해 금융위는 '선을 넘었다'라고 인식했다.

      이번 중징계 결정은 다소 달랐다. 이 원장 취임 전인 지난 2021년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건의한 중징계를 이번에 금융위가 확정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위 역시 중징계가 불가피하다는 뜻을 모았다. 이복현 원장은 이번 징계 전후로 민간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경고장을 날리는 '스피커'로 활동했다.

      이전 DLF 중징계땐 금융위-금감원 사이에 벌어진 '틈'이 있었지만, 이번 라임펀드 중징계의 경우 금융당국이 합심해 내린 결론인 셈이다. 우리금융 입장에서는 이번 징계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기가 더욱 부담스러워진 상황이라는 평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라임펀드 등 이전에 일어난 대형 금융사고에 대해 수습 및 재발방지의 책임을 안고 취임한 검사 출신 금감원장이 라임펀드와 연계된 금융회사에 자비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은 이전부터 파다했다"라며 "금감원의 역할이 두드러지며 금융위는 뒤를 받쳐주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검찰 출신 특유의 ‘정치공학적’인 성향이 두드러진다는 평이다. 이 원장이 금감원의 사법적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과거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는 의견이다. 금감원은 금융사에 대해 면허취소(등록취소)나 수시 검사를 벌일 권한 등이 있는데, 이 원장이 취임한 이후 내부적으로도 이런 권한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실세' 금감원장 취임 이후 금융위와의 권력 구조가 금감원쪽으로 쏠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례로 흥국생명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 이슈 당시에도 금융위는 '문제 되는 부분이 아니며 사전에 교감했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이복현 원장이 '시장의 조기상환에 대한 기대감'과 '흥국생명의 자금 여력'을 언급한 이후 콜옵션을 행사 하는 쪽으로 방향이 급격히 선회하기도 했다.

      물론 이를 두고 금감원에서는 '민간 자율 경영을 존중한다'라는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다만 이런 해명이 무색하게, 이 원장의 발언 하나 하나가 민간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무언의 압박이 되고 있는 건 사실이라는 지적이 많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민간 금융회사에 전방위적 압력을 넣는 것을 두고, 공적 금융기관의 시스템 이슈부터 해결할 필요성이 있다는 관전평을 내놓기도 한다. 대우조선 부실화에서도 엿보이듯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관들의 방만 경영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자율성을 존중해줘야 할 민간 금융기관에게 '실세 원장'이 최우선으로 총부리를 들이대는 식으로 정책을 집행해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금감원 실무진들 사이에서는 다소 ‘부담’이라는 우려섞인 시선도 적지 않다. 지금이야 정권 초기인 데다 이 원장과 윤석열 현 대통령의 관계가 금감원 발언에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이 원장 교체 이후가 오히려 걱정이라는 의견이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실무진들은 ‘끼인 신세’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 원장은 언젠가는 떠날 사람인데 남은 사람들은 결국에는 금융위의 눈치를 봐야하는 시기가 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