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잃은 당백전과 위믹스
입력 2022.11.25 10:51|수정 2022.11.25 11:15
    Invest Column
    화폐 가치 추락으로 일반 대중에 피해
    사(私)회사가 발권력 행사한 결과...위믹스 79% 폭락
    왜 가상화폐에 규제가 필요한지 보여준 사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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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견 게임개발사 위메이드의 핵심 가상화폐인 '위믹스'가 국내 주요 거래소에서 퇴출됐다. 신뢰잃은 화폐가 온갖 논란을 낳다가 결국 유통이 금지됐다는 점에서 조선 말기 당백전(當百錢)을 떠올리는 이가 적지 않다.

      일개 회사가 화폐 발권력을 손에 넣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왜 가상화폐 생태계에 규제가 필요한지 명백하게 보여준, 교과서적인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백전은 조선 고종 재위 시기인 1866년 발행된 새 화폐였다. 정부의 재정난과 경복궁 중건을 위한 목적이었다. 당시 화폐의 가치를 담보하던 건 포함된 구리의 양이었는데, 당백전은 상평통보보다 고작 5배의 구리를 더 넣고는 100배의 가치를 매겼다.

      당백전은 안 그래도 휘청대던 조선의 경제를 파괴했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덮쳐왔다. 1석(약 144kg)에 7냥 하던 쌀값이 당백전 발행 2년 후 44냥으로 600% 올랐다. 월간 인플레이션 상승률이 평균 7%에 달했다.

      당백전은 약 1600만냥(현재 가치 환산 약 1조1200억원) 가량이 발행됐다. 당시 상평통보 총 유통량의 3배 수준이었다. 통화량 증가분에 비해 물가가 훨씬 더 폭등한 이유는 '신뢰' 문제였다. 당시 조선 정부는 세금을 걷을 때 당백전을 받지 않았다. 당백전의 가치를 스스로 부정했다. 

      그 결과 화폐의 가치가 폭락했다.

      위믹스가 처음 논란이 된 건 지난 2월이었다. 위메이드는 2021년 4분기 실적에 '위믹스 유동화' 2254억원을 매출액으로 계상했다. 800억원대였던 게임 부문 매출의 3배에 가까웠다. 말 그대로 자신들이 발행한 가상화폐 위믹스를 2000억원어치 넘게 시장에 내다팔았다는 뜻이었다. 사전 공시는 없었다. 지난해 11월말 개당 2만9000원까지 올랐던 위믹스 가치는 불과 한 달 뒤인 그해 말 1만2000원으로 60% 폭락했다.

      논란이 커지자 위메이드는 위믹스 직접 유동화를 그만두겠다고 발표했다. 투자자들은 이 말을 믿었다. 그러나 위메이드는 우회로를 찾았다. 가상화폐를 취급하는 외부 금융기관에 위믹스를 담보로 맡기고, 다른 코인을 대출받았다. 그리고 대출받은 코인을 다른 가상화폐의 준비금으로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담보로 맡긴 위믹스는 '유통물량'에서 제외했다. 담보이니 유통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여사, 이부진 사장 등 삼성 오너 일가는 약 1억주(1.74%)의 삼성전자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삼성전자가 정기공시에서 이 1억주를 유통물량에서 제외하진 않는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을 위메이드는 실행했다.

      다른 신뢰 이슈도 있었다. 게임을 기반으로 한 가상화폐가 가치를 유지하려면, 해당 생태계 내에 지속적으로 게임이 온보딩(편입)되고, 게임 총 사용자수가 늘어나야 한다. 위메이드는 올해 초 '연내 100개 게임을 생태계에 편입시키겠다'고 공언했지만, 현재 위믹스 플레이 플랫폼에 들어와 있는 게임은 고작 17개다.  온보딩 계약을 체결한 게임도 43개에 불과하다.

      위믹스 상장 폐지 결정은 이런 불신이 쌓인 결과였다. 디지털자산거래소공동협의체(DAXA)는 24일 '더 이상 위믹스를 신뢰할 수 없다'며 거래 지원 종료를 결정했다. 이 사실이 전해진 직후 개당 2450원선에 거래되던 위믹스 가격은 한때 500원으로 추락했다. 반나절 사이 79% 폭락했다. 25일 개장 직후 위메이드 주가 역시 하한가로 직행했다. 지난해 11월 고점 대비 1년 새 84% 하락했다.

      루나코인 사태에 이어 세계 3대 가상화폐 거래소였던 FTX의 파산보호 사태가 이어지며 가상화폐 규제론은 점점 탄력을 받고 있다. 위믹스 사태 역시 이런 규제론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위메이드라는 일개 사(私)회사가 발권력을 휘두른 결과, 다수의 대중이 재산상 피해를 본 까닭이다. (관련기사:게임사에 '발권력' 주니 튀어나온 P2E...암호화폐 광풍에 '본질' 잊었다)

      발권력을 통한 시뇨리지(발권차익)는 마약과도 같다. 개항 이후 또 다시 재정난에 시달리던 조선 정부는 1883년, 당오전(當五錢) 발행을 결정했다. 상평통보보다 실물 가치는 2배지만, 액면 가치는 5배인 화폐였다. 이 역시 화폐가치 하락이라는 부작용만 남기고 6년 뒤인 1894년 철폐됐다. 

      위메이드는 지난 10월 위믹스달러라는 새로운 코인을 내놨다. 위믹스달러는 1달러와 가치가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가치고정 가상화폐)으로, 루나의 가치를 담보하던 테라와 다른 게 무엇이냐는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위메이드는 세계 시가총액 2위 스테이블코인인 USDC와 연계한 실물담보 100%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FTX 파산 사태 이후 스테이블코인 자체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전한 코인은 없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