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빠지는 SK그룹 파이낸셜 스토리…최종 행선지는 '시중은행?'
입력 2022.11.28 07:00
    SK스퀘어, 홈페이지서 사라진 'NAV 대비 할인율' 공시
    상장 대신 매각…유동성 기댄 전방위 확장 전략 선회
    재무부담 가중 속 파이낸셜 스토리 이어갈 수 있을지
    내년 이후 고금리 지속 전망…시중은행 찾을 가능성도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시중 자금이 말라붙으며 SK그룹의 파이낸셜 스토리(중장기 사업 비전이 담긴 재무 전략)도 힘이 빠지고 있다. 조달 길이 하나 둘 막혀가는 가운데 버는 돈 이상의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야 하는 SK그룹의 전략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그간의 확장 계획이 재무 부담으로 돌아올 거란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반도체 등 주력 사업의 수익성 기대감도 전과 같지 않다. 자본시장을 가장 잘 활용하던 SK그룹 역시 최종적으로는 은행문을 두드리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SK스퀘어는 최근 홈페이지의 투자자관계(IR) 관련 항목 중 '키 파이낸셜' 페이지 내 '순자산가치(NAV) 대비 할인율' 항목을 삭제했다. 원래 자사 주가가 NAV 대비 얼마나 할인된 상황인지 알려주던 수치였다. 본질에 비해 싸단 얘기로 '제값을 찾아가겠다'라는 의지로 여겨졌지만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9월 말 기준 SK스퀘어의 주당 NAV는 13만9422원, 18일 장중 시가론 3만8550원이다. NAV 대비 할인율은 72% 이상이다. 

      시장에선 SK그룹 파이낸셜 스토리가 급격히 선회하고 있다는 하나의 장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SK스퀘어는 현재 EQT파트너스와 포트폴리오 기업인 SK쉴더스 투자유치를 논의하고 있다. 지난 상반기 SK쉴더스를 비롯해 원스토어까지 줄줄이 상장 계획이 무산되며 재무적 투자자(FI)와의 약속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은 상황이기도 했다. 사실상 상장을 통해 시장에서 자금을 끌어오는 전략 자체를 대폭 수정한 것이라는 평이 나온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IPO 담당 실무진들도 SK그룹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주관사 선정 작업에 참여해오긴 했지만, 현재 SK스퀘어 아래 자회사가 상장할 수 있을 거라 보는 시각은 지난 상반기부터 크게 줄었다"며 "SK쉴더스 지분 매각은 시작에 불과하고 다른 계열사도 같은 수순을 밟지 않을까 하는 분위기가 전해진다"라고 말했다. 

      SK그룹의 파이낸셜 스토리는 지난 2020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최태원 회장이 각 계열사에 재무적 성공 스토리를 짜오라 주문했고, 계열 사장단은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면서 성장성이 높은 신사업 중심으로 확장하는 청사진을 마련했다. 핵심인 조달 계획은 지분 매각과 재무적 투자자(FI) 유치, 기업공개(IPO) 등 자본시장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채워졌다. 

      처음 파이낸셜 스토리란 화두를 던졌을 때만 해도 시중 유동성이 화답하며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올 초 LG에너지솔루션을 끝으로 상장 길이 닫히며 이 같은 전략을 이어가기 어려워졌다. 파이낸셜 스토리 자체가 시중 유동성에 올라타는 전략에 가까웠던 만큼 유동성이 빠질 때는 빛을 발하기 어려운 구조였던 탓이다. 

      시장의 관심은 SK가 제시한 파이낸셜 스토리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로 모이고 있다. 단순한 조달 전략을 넘어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성장세를 이어가겠다는 비전이었던 만큼 SK그룹이 지켜야 할 약속의 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마땅한 조달 전략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간 시장에서 모셔온 FI들과의 계약까지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와 함께 연말 인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20년 인수합병(M&A) 전략의 성과를 인정받아 부회장직에 오른 박정호 부회장이, 존재감이 옅어진 조대식 의장 대신 SK수펙스추구협의회를 맡게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SK스퀘어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이라 평은 엇갈린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미래 신사업이라 부각시킨 계열사를 상장하는 대신 매각하는 것도 궁색한 마당에, 배당 및 투자 계획까지 지키지 못하면 그룹 평판 문제로 불거질 수도 있다"라며 "차라리 LG그룹처럼 배터리 사업 하나로 시중 자금 10조원 이상을 끌어오는 게 현실적이지, SK그룹은 동시다발적으로 IPO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전제하에 너무 많은 이해관계자를 끌어들였다. 공격적인 확장 전략이 전방위 재무부담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라고 전했다. 

      신용평가 업계에서도 SK그룹에 대해 '주력 사업 수익성이 우수하지만 투자 계획과 주주환원책 등이 재무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주시하고 있다. 캐시카우인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자회사 SK온의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가 길어지며 부채비율이 오르는 모습이다. SK하이닉스도 반도체 업황이 고꾸라지며 내년 이후 수익성에 대한 우려가 높다. 반도체와 배터리 및 친환경 사업은 시장 환경에 맞춰 향후 수년간 계획된 투자를 줄이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SK그룹 역시 최종적으로는 시중은행에 기대야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수개월 전만 해도 갑을 다음 '병'쯤이라 자평하던 은행권에선 연말로 접어들며 '갑'에 가까워지고 있단 목소리가 전해진다. 내년 이후 회사채 만기 물량이 사실상 은행의 잠재 영업 대상이 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현재 프리 IPO를 추진하는 SK온 역시 올 들어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통해 단기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파악된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금리 인상 속도가 떨어질 수는 있지만 내년 이후에도 고금리는 유지될 것으로 본다. 큰돈을 마련할 수 있는 곳이 은행으로 좁혀진다는 얘기"라며 "SK그룹 계열 역시 국책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한도가 거의 차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SK온은 현재 모회사의 추가 신용보강 없이는 은행에서 추가 대출이 불가한 상황으로 전해진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