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간판' 달기 분주한 재계…실무자들은 사명 창작 고민도
입력 2022.12.01 07:00
    올해도 이어진 재계 개명(改名) 바람
    SK·한화·두산 필두로 친환경 간판 달기
    신선한 조합 찾기도 일, 실무자는 창작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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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재계의 개명(改名) 바람은 올해도 이어졌다. 오너 의지가 담긴 미래 비전이나 친환경을 필두로 한 신사업 키워드가 새로운 사명이 되고 있다. 막대한 비용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르지만 사명 변경만큼 기업 이미지 쇄신에 확실한 전략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많은 전통 사업 기업들이 간판을 바꿔달면서 그럴 듯한 '친환경' 단어 조합 찾기도 쉽지 않다는 실무진 단 웃지 못할 푸념도 나온다.

      SK와 한화가 대표적이다. 범계열사에서 사명 변경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작년 SK종합화학은 '지구의 중심'이란 의미의 SK지오센트릭, SK건설은 SK에코플랜트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한화종합화학도 인류와 지구에 긍정적인 임팩트 투자 이미지를 위해 한화임팩트로 사명을 변경했다.

      모두 기존의 전통 주력 사업 색채를 빼는 대신 친환경 사업을 중심으로 한 ESG 경영 기조를 새 사명에 넣었다.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기업 이름으로 '에너지' '화학' 등을 쓰게 되면 근본적 변화를 꾀하기 힘들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올해 막판에도 개명 러시가 이어졌다. 윤활유 기반사업의 SK루브리컨츠가 내달부터 SK엔무브로 사명을 변경한다. 기존 사업을 직관적으로 표현한 현재 사명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에너지 효율화'란 새로운 정체성을 알리겠다는 설명이다. 전기차용 윤활유와 열관리 등 신규 사업 진출 의지도 담겼다.

      한화그룹도 하반기 사명 변경에 열심이었다. 에스아이티와 한화테크윈 등 과거 삼성으로부터 인수한 계열사들의 새 사명을 잇따라 출허하고 나섰다. 자동화설비기업인 에스아이티는 산업 간 융합에 따른 그린에너지 플랫폼 추진을 위해 한화컨버전스로 간판을 바꿨다.

      한화테크윈도 한화비전이란 상표권을 출원해 변경을 검토 중에 있다. 테크윈이란 사명은 삼성항공산업이 항공기 제작 부문을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뗴어주면서 처음 사용, 2015년 한화 인수 이후에도 줄곧 유지돼 왔다. 추후 항공엔진 사업 분리(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영상보안 사업만이 남자 더이상 테크윈의 이름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사업을 정리하고 새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화 정체성에 맞는 새 이름을 찾는 동시에 삼성 색채를 지우려는 의도로도 풀이된다. 

      두산중공업은 올초 두산에너빌리티로 간판을 바꿨다. 에너빌리티는 에너지와 지속가능성이란 뜻의 영단어를 결합한 조합이다. 중공업의 무거운 이미지를 지운 좋은 선택지라는 평가가 있었다.

      국내 최대 비철금속소재 기업 LS니꼬동제련도 10월 LS MnM으로 변경했다. 기존의 금속(metals) 사업에 소재(materials) 사업을 추가해 성장하겠다는 의지다. KT는 IPTV 사업에 '미디어 포털' 정체성을 위해 올레 tv를 지니 TV로 변경했다. 마켓컬리는 서비스명을 컬리로 변경했다. 기존 식료품 위주에서 새로운 사업 모델인 뷰티컬리를 새롭게 선보이기 위해서다.

      신규 사명엔 기업의 새 정체성이 담긴다. 타깃 확장과 경영 방향성을 새로 제시하기 위한 목적이다. 대체로 오너 의지가 담긴 미래 비전이나 신사업 키워드들이 강조되는 만큼 사업 재편에 이어 세대 교체 포석도 있다. 특히 한화의 경우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 체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차원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다만 사명 변경에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로고와 간판부터 사소하게는 사내에서 사용하는 종이봉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교체해야 하는 탓이다. 기존 인지도 상실과 새로운 사명 홍보 등에 따른 발생 비용들도 감안해야 한다.

      그럴 듯한 사명을 고민하고 상신해야 하는 내부 실무자들의 고민도 이어진다. 이들 사이에선 '이젠 그럴 듯한 단어 조합에도 한계가 있어 창작하기 힘들다'는 웃지 못할 언급도 나온다. 친환경 이미지를 내세울 수 있는 개명 바람이 유행인 만큼 이에 편승은 해야겠는데, 쓸 만한 단어는 이미 몇몇 기업들이 먼저 상표 출원을 내 소유권을 가졌다.

      2020년 초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미국 CES 2020 자리에서 회사의 사명으로 '초연결'이라는 뜻을 담은 'SK하이퍼커넥트'를 제시하기도 했다. 당시 내부에선 '먼저 이름을 흘리면 상표 등록은 어떻게 하느냐' '국문으로 10자(에스케이하이퍼커넥트)나 돼 불편한 점이 많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SK텔레콤은 작년 SK텔레콤과 SK스퀘어로 인적분할됐다.

      한 대기업의 관계자는 "기업 이미지 쇄신에 사명 변경만큼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전략은 없지만 그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하고 한번 바꾸면 오랜 시간 그 정체성을 유지해야 하니 부담도 따른다"며 "실무진들은 이를 충족할 수 있는 그럴 듯한 친환경 단어들을 고심해야 하는데 업계에선 이젠 그럴 듯한 신선한 단어 조합 찾기도 쉽지 않다는 푸념이 나온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