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석용이 남긴 '레거시', 그 무게감 버텨야 하는 LG생활건강
입력 2022.12.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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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서 약 28년간 우승컵만 38개를 들어올린 감독. 전체 우승컵은 49개로,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린 감독. 주인공은 우리가 '해버지' 박지성 때문에 잘 알고 있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다. 그는 1986년부터 2013년까지 맨유의 감독을 맡아 팀의 전성기를 되찾는 것은 물론 리그 전체를 부활시키는 데 앞장섰다.

      퍼거슨은 마지막 시즌에도 맨유를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문제는 그가 떠난 직후부터였다. 리그를 주름 잡던 기세는 단숨에 사라졌다. 10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 대행과 임시감독을 포함, 총 8명의 감독이 교체됐다. 그 사이 팀 성적은 중위권으로 떨어졌다. 2위까지 오를 때도 있었지만 1위와의 격차가 큰 2위였다. 한 사람(퍼거슨)은 30년 가까이 팀을 이끌었는데 그 다음엔 한 사람당 2년도 안돼 감독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퍼거슨은 감독 시절에도 단장, 구단주 위에 있는 '상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존재감이 대단했다. 그만큼 레거시(legacy)도 강력했기에 뒤를 물려 받은 사람은 무게감에 짓눌렸고 맨유 감독 자리는 '독이 든 성배'가 됐다. 지금의 부진 원인을 후임자를 준비하지 않은 퍼거슨에 돌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LG생활건강에도 비슷한 '레거시'가 있다.

      20년 가까이 회사를 이끈 차석용 전 부회장은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린다.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1985년 미국 생활용품 기업 P&G에 입사해 14년 만에 한국P&G 총괄사장에 올랐다. 2001년엔 해태제과 대표이사가 됐고, 이후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에 의해 스카우트 돼 2005년부터 LG생활건강 사장이 됐다.

      차 부회장에 대한 구 전 회장의 신임은 매우 깊었다. 그룹에서 사실상 독자적인 경영을 보장할 정도였다. '차석용 매직', 'M&A 귀재'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최장수 CEO' 타이틀도 얻게 됐다.

      차 부회장이 CEO로 있는 동안 LG생활건강은 코카콜라음료, 더페이스샵, 해태음료, 에버라이프 등등을 차례로 인수하며 외형 확장은 물론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꾀했다. 그 결과 2004년 1조원 정도였던 매출 규모가 지난해엔 8조원으로 늘었고 영업이익 '1조원' 클럽에 들어가기도 했다.

      17년 연속 성장이라는 범접할 수 없는 '레거시'를 기록하면서 주가도 100만원을 돌파하자 시장은 열광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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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부회장의 마무리도 조금은 아쉬운 모양새가 됐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난해 말부터 회사 매출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 의존도가 높다는 지적에 일본과 북미 등으로 눈을 돌렸지만 기대에는 못미쳤다. 차석용 매직도 끝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10월말 주가는 40만원대로 떨어지며 10년전으로 회귀하기도 했다. 안팎의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차 부회장은 2년 이상 남은 임기를 포기하고 퇴임이라는 '용단'을 내렸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LG그룹 계열사 최초의 첫 여성 CEO가 된 이정애 LG생활건강 대표는 공채 출신으로 회사 생활 36년만에 수장을 맡게 됐다. 여러모로 상징성이 있는 선임이긴 하지만 조직을 추스릴 여유도 없이, 몸도 풀지 못한 채 급히 오른 구원투수라 부담감이 만만치 않다.

      위기를 넘기더라도 LG생활건강이 시장이 과거에 기대했던 것 만큼의 성장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표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업계의 트렌드와 판도가 이전과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자칫 전임자의 존재감에 짓눌려 후임자들이 무리한 M&A를 추진하거나, 아예 확장을 멈추지 않을까 하는 상반된 우려들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이에 회사가 독자적인 판단을 하기보단, '뉴LG'를 꾀하고 있는 그룹과 궤를 같이 할 수 있는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조언들도 들린다.